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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 그게 뭘까?
at 2008-11-25 22:12:45 8 comment
근대성
전근대성과 비교될때는 좋은 뜻 같았는데, 요즘에는 거의 만악의 근원처럼 난타당하고 있죠? 이게 이른바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개량하더라도 다시 그것이 새로운 질곡이 되는. 지금은 봉건성을 타파한 근대성이 다시 질곡이 되어 있는 시기죠. 근대성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잘 설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할 수 있는데 까지.
추상적인 시공간, 그리고 주체
근대의 출발은 종교,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붕괴와 함께 시작됩니다. 종교가 무너지자 우리의 삶을 지탱해줄 불변의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시간, 공간,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지각의 형식으로 지니고 있는 '주체'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동일한 불변의 기준이 되고, '나'는 추상적이고 고정된 주체성이 됩니다. 즉 각각 다른 권재원, 송대헌이 아니라 '인간주체'라는 안정된 기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계량성(합리성)
고정된 시공간, 그리고 주체는 측정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탁월하게 사용가치 대신 교환가치가 전면에 등장하는 현상으로 기술했습니다. 화폐는 이 모든것들을 측정하는 고정된 기준이 됩니다. 사실 근대 초기 사람들은 이것을 환영했습니다. 이른바 "합리화"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동일 기준에 의해 측정함으로써 인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계산 가능하다는 것은 법칙화 하고 통제 가능하다는 것.....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고통을 안겨 주었으니
동일성(질의 소멸)
그 고통은 바로 동일성입니다. 근대의 과학과 문명은 법칙에 기반합니다.법칙은 수학에 근거하고 이는 수치화 가능함을 근거하고, 수치화가 가능하다 함은 각각의 개체가 단지 양적 차이만 있는 것으로 즉 질적 차이가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과 네개 이렇게 말할때 이 사과, 저 사과는 의미 없습니다. 혹은 사람 두명 그럴때 권재원, 송대헌은 의미 없습니다. 이게 좀 더 나아가면 인력감축 20%, 교사증원 240명이라든지....그럼 이때 바로 추상화된 주체가 상정됩니다. 교사증원 240명 이럴때는 권재원도 송대헌도 아닌 보편적인 교사의 속성을 가진 추상적인 교사가 계산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추상적 교사의 속성에서 벗어나는 교사가 있다면? 이것은 위협이 되므로 강제로 동일화 시켜야 합니다. 원래 동일성은 개념과 그 개념이 대표하는 사물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교사라는 개념과 실제 존재하는 교사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일치하지 않으면? 모조리 일치시키려는 압력이 작용합니다. 이게 근대 조직의 핵심인 관료제의 힘, 체계의 힘입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중에 누구보다도 더 영웅대접 받아야 할 안정환이 한번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수난을 겪는 이유도 "축구선수"라는 추상적 개념의 속성을 너무 많이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자본론'에 보면 "오늘날 인간은 모두 동일한 노동력으로 계산된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서 "1000만 노동자 총단결로 노동악법 철폐하자!" 같은 구호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며, 근대성에 오히려 포섭된 구호가 되는 것입니다. 1000만명이 모두 동일한 노동력이 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판타지입니다. 근대사상은 이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적대적인것으로 파악합니다. 그게 바로 변증법에서 자주 말하는 "모순자"입니다.
분절, 그리고 코드화
이건 앞의 내용에서 저절로 파생되어 나옵니다. 모든 존재가 동일화되기 위해서는 되도록 잘게 갈라져야 합니다. 사과와 배는 다른 사물이지만 자꾸자꾸 잘라서 원자가 되면 똑 같아집니다. 근대사회는 인간도 그렇게 만듭니다. 그래서 만들어낸 존재가 바로 "개별 노동자"입니다. 토지,일체의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개별 노동자!". 이는 마치 숫자 하나, 혹은 집합의 원소 하나와 같습니다. 이렇게 분절된 개별주체는 이미 만들어진 체계의 법칙에 따라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배치되면 거기에 맞춰 주체가 조작됩니다. 그걸 코드화라고 합니다.
반복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일체의 개성이 박탈된 한낱 개별노동자가 거대한 체계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당연히 그것은 법칙의 반복입니다. 이 반복이야 말로 근대성의 가장 사악한 귀결입니다. 항상 정해진,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그 과정 속에 본인의 사유하는 능력마저 그렇게 코드화 되는 것... 이제 오늘=내일=모레...
이 속에서 인간성은 파괴되고, 자신이 인간임도 잊어버립니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가 처음 발견한 근대산업사회의 소외, 물상화, 혹은 아도르노나 루카치가 말한 사물화입니다.
그럼 요약하면 뭐가 될까요?
합리적 계산과 법칙의 힘(도구적 이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인간이 오히려 그 노예가 되어 개성을 박탈당하고 동일한 노동력으로 계산되어 각종 기계에 편입되어 법칙에 따라 동일한 일을 반복하는 삶,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주체를 재편하는 각종 체계가 정밀하게 작동하는 세상. 대략 이런게 근대성이 되겠습니다.
아직도 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에 책을 쓸 수는 없어서 요 정도 해 둡니다.
이글루스 가든 - 맑스공부하기



2008-11-25 22:53 #
기계를 가지고 노는 인간이란 참 인간다운데 반해서...
기계에 휘둘리고 체제에 휘둘리는 인간이란 불쌍한 존재.
그래도 이명박 뽑은 놈들은 용서가 안되!!(동문서답. 사오정 입니다;;)
노동자와 고용주, 애국자와 매국노, 피 지배자와 지배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2008-11-26 08:17 #
2008-11-26 10:34 #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근대성은 인간이 자연의 법칙과 흐름에 역행해 가는
과정이라고 혹은 역행해 가는 과정에 가속도가 붙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성을 사용해 이것저것 발전을 이룩해 나가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행복함을 더 느끼고 있나요?
전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데에는 도움을 얻었지만 기계와 돈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소외를 느끼고 상대적 박탈감에 행복보다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자원의 고갈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파괴는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넘어서 인간 생존 자체를 위혐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쩝!!!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것 같지만..
자연과 정반대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아니 질주하는 인간! 근대성의 역사가
저는 두렵기만 합니다. 누가 좀 멈춰줬으면 한다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
2008-11-26 12:43 #
2008-11-26 15:31 #
2008-11-26 16:31 #
2008-12-06 17:31 #
2008-12-06 17: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