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cret Mission 『S Relief』 시작되는 추적 - 2 -
at 2009-06-22 16:07:09 2 comment

그 누구도 아무런 목적 없이 계획을 짜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가 있던 없든 목표에는 늘 계획이 따라 다닌다.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은 사용 가능한 수단을 모두 사용한다.
이러한 형태의 움직임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조직의 목표 수행이다.
조직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관리자나 종업원들이 서로 강화하거나 신뢰하며,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면서 일정의 계획을 따라 움직인다.
계획이 제시하는 메뉴얼 혹은 계획을 각 개인이 지각하여 판단한 행동방법에 따라 조직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조직의 목표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모든 것이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
기간 내 2차적 보상이 제대로 된다는 전제하에 여기에 두 가지 가정이 있다.
첫째로, 목표가 이상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조직행동론에 의거하여, 목표는 성취 가능해야만 한다. 목표가 이상적이라면 그 목표 달성에는 큰 애로사항이 꽃 핀다.
이상적인 목표는 성취보상의 기대를 최저로 만들고 스트레스를 만든다.
구성원의 의욕이 살아날 리가 없다.
고로, 조직의 목표 수행에 있어서 목표 이상적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둘째로, 계획에 있어서 하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계획에 문제가 있다면 목표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불합리는 그 목표의 경로를 잃어버리게 한다.
수단이 합리적이더라도 계획의 진행에 문제가 있다면 역시 실패한다.
그리고 이것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가 직접 만든 공간 왜곡 결계 너머의 무한서고 최상층의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허니 블론드 머리색을 가진 남자는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를 보며, 그가 짠 시나리오의 실패변수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물론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절대정의에 따라 실패변수는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그에 따라 현재 그의 계획에는 그의 실수로 생기거나 어쩔 수 없이 생긴 실패변수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그가 자의로 만든 실패변수 케이스A, 새로운 기동6과의 존재.
하지만 그는 케이스A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케이스A에 대해 그 활용 가능성까지 점쳐두고 있다. 물론 그들도 프로이기에 그들에 대한 움직임 파악은 현재 제대로 되고 있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역시 그가 자의로 만든 실패변수 케이스B, 성왕교회의 기사 카림과 그 추종자.
하지만 역시 케이스B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예의 그 사건 이후 카림의 움직임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샤하 수녀가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하여 침투인원을 60% 가량 줄였지만 성왕교회의 고위층을 감시하기엔 충분한 숫자가 남아 있다.
다만, 이 실패변수 관리를 위한 관리국 최상부의 여론 보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위협적인 잠재변수로 떠오를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케이스는 그가 신경 쓰지 않는 케이스지만 하나의 실수로 인한 하나의 변수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묘한 또 하나의 잠재적 변수는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어두운 공간을 채우는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들의 무리에 작은 디스플레이가 출현했다.
[보고 드립니다.]
"뭔가요?"
[노리스와 문 와치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위치는 제 3 관리세계, 행성 바이젠입니다. 그 이상의 정보는 없습니다.]
유노는 쓰고 있던 크고 둥근 안경을 벗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이 치명적인 실패변수의 움직임은 그를 신경 쓰이게 했다.
'바이젠…인가'
쉽게 막을 수 있는 실패변수는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위치는 아직까진 괜찮은 곳이었다.
"계속 동태를 확인해주세요."
낯선 작은 디스플레이가 없어지자, 디스플레이의 무리들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잠깐의 안정을 깨듯,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등장했다.
[Y, 수속을 완료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디스플레이 너머로 비치는 서른 중반의 얼굴은 아직까진 그 세월의 흔적을 크게 느낄 수 없었지만 주변에 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잔주름이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나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정말 알 수 있는 것이 맞습니까?]
진호가 그에게 자신의 의중을 담아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유노는 빼낼 수 있었다.
"당신답지 않은 질문이군요. A01"
유노는 다시 안경을 쓰고 바로잡았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확답은 못합니다. 5% 정도의 확률입니다."
[…언제나 애매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실은 0%에 가까이 수렴합니다. 크게 신경 쓰진 마세요."
유노의 말을 들은 진호는 실소에 가까운 숨을 짧게 뱉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에 '실은'이라 말하는 그가 기막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그만이 알고 있었다.
그의 가벼운 거수경례를 신호로 해서 다시 디스플레이는 사라졌다.
유노는 왼팔을 굽혀 손목시계의 시간을 체크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의 위장이 탐욕적이지만 용서받을 수 있는 소리를 냈다.
모든 디스플레이를 종료시키고 유노는 손가락을 튕겨 간단한 술식을 구현했다.
"트랜스포터"
녹색의 마력입자가 그를 감싸 안아 공간에서 그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Secret Mission 『S Relief』 - Phase 1
시작되는 추적 2
시작되는 추적 2
하야테의 연락을 받은 멤버 중 움직일 수 있는 멤버들이 하야테가 지정한 미드칠더의 한 카페에 모여 들었다.
나노하, 페이트, 린포스 츠바이, 긴가, 자피라가 움직였다.
하야테는 미리 빌려둔 독립된 베란다형 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온나~"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그 카페에는 손님 한 명조차 보이지 않았다. 입지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명성이 퍼지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뿌려진 소문을 듣고 카페에 오기엔 이 카페의 이름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주인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곳은 비밀회의를 한다면 최적의 회의장소인 것이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미안할 것은 없다. 오히려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것이다. 그들이 매출액을 올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오지 않은지 오래된 카페에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온 가게의 주인처럼(사실 이건 직유법이라고 해도 될 듯 했다.) 지배인이 직접 뛰어나와 그들에게 주문을 받았다.
"간단하게 먹을까?"
"그라는게 좋은 것 같데이. 여기 모카커피 5잔이랑 간단한 과자 한 접시만 주세요."
"에―― 하야테 씨. 전 아메리.."
"뭐?"
"아, 아니에요."
하야테의 눈빛에 긴가는 압도당했다.
반박이 불가능했다. 모카커피를 안마시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문을 받고 새 신을 신은 사람처럼 폴짝폴짝 뛰는 지배인을 뒤로 하고 하야테는 목을 가다듬고 테이블 위로 잉크로 직접 쓴 편지를 보여줬다.
- from verossa to hayate
"빠르네."
"롯사가 조사에 착수하고 10분 뒤에 바로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카드라"
"그래서 내용은?"
나노하가 몹시 궁금한 듯 하야테에게 바로 질문했다.
"지, 진정하세요, 나노하 씨"
"그래. 급해서 좋을 것 없다."
아까 전에 크로노의 집에서 겪은 일 때문인지 마음속이 어수선한 나노하는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그 일을 겪은 페이트만이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알긋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수상해 보이는 남녀가 차원정보국 건물에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칸기다."
"그들이 수상한지 어떤지는 어떻게 안 겁니까? 주인 하야테"
"차원정보국원은 원래 밖을 나갈 때는 제복을 입어야 한데이. 우선, 제복을 입지 안카는 것과 주변을 신경 쓰며 움직인 것, 그리고 공원을 지나면서 얼굴분장을 했가꼬 얼굴이 변한 것을 봐선 요원인 것 같다켔다."
하지만 석연치는 않았다.
그것은 도저히 요원이 할 행동이 아니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나무로 둘러싸였다 할지라도 공원에서 분장을 한다면 그건 요원 자격이 없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하야테는 이 점을 주목했다. 유노라면 도저히 하지 않을 짓을 역으로 찌르는 수법을 사용하여 하게 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었다.
어느새 커피와 과자가 테이블에 놓여졌다.
지배인의 얼굴에는 아직도 화색이 크게 맴돌고 있었다.
어쨌거나 여기까지의 내용은 베롯사에게 조사하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베롯사가 조사한 것은 아그리 터너의 행적. 그런 행동이라면 평범한 차원정보국의 요원에게도 지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다음 내용이 중요했다.
"그래서 분장을 한 채로 공항에 간 뒤로 어떻게 됐어?"
페이트가 하야테에게 묻자, 하야테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성과의 미소였다.
"수속을 밟고 제 106 관리 세계로 갔다고 카더라"
"제 106 관리 세계!!"
'제 106 관리 세계'
등록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신생 등록 관리 세계라는 점에서 그 존재는 관리국에겐 중요하지 않은 곳이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나노하 일행과 차원정보국 간에 상당한 관계가 얽혀있는 곳이다.
통칭 '아그리 박사'라고 하는 인물을 둘러싼 의혹. 마침 그 제 106 관리 세계를 향해 차원정보국이 움직인 것이다.
"주 하야테, 그들이 그곳을 향해 간다면…."
자피라가 커피를 마시며 말을 꺼냈다.
그는 어디서 준비했는지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그리 박사가 차원정보국과 관련이 있는 아그리 터너라고 가정하면… 제 106 관리 세계에 있는 그와의 접촉의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요."
자피라는 그가 전에 말했던 아그리 박사와 아그리 터너의 동일인물 가정을 산정하고 이야기를 풀었다.
긴가는 자피라의 펜을 빼앗아 종이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니면, 그들 중 누군가가 아그리 터너일 가능성도 있어요. 환경부든 관측지정 세계 관측국이든 어떤 아그리 터너도 현재까진 본국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야테, 그 사람의 맨 처음 얼굴이 어떤지 롯사가 가르쳐줬어?"
"아니, 롯사도 제대로 얼굴은 보지 못했데이. 단지 인상이 바뀌어서 분장을 했다고 생각한기다."
"그렇다면, 긴가가 제시한 가능성도 생각해볼만 하겠네."
어느 쪽이든 제 106 관리 세계로 향하는 차원정보국의 움직임은 수상했다.
물론 그들과 아그리 박사 사이에 관계가 없고, 평범한 임무차 갈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은 스스로 그런 가능성을 상정하기 싫은 것일지도 몰랐다.
유노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친구였다. 소중한 친구를 위한다면 보통은 그들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상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유노는 이미 그들의 눈앞에서 어둠 속에서 살인을 하는 자의 지휘관처럼 행동했다. 아니, 이미 그는 지휘관이었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완전히 부정할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심은 하겠지만 그 진의를 알 턱은 없다.
소위 탐정이나 경찰이라면 몰라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으로 본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유노가 그들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상정할 수 없었다.
차원정보국이 제 106 관리 세계로 가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일단 그들을 쫓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데이"
"나랑 페이트가 같이 갈게!"
"에? 나노하, 네가 굳이 안 가도 괘안…"
"괜찮아!"
"괘안킨 뭐가 괘안나? 너는 좀 쉬어야 안카나."
"정말이야. 괜찮아, 하야테"
나노하의 의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여려도 강한 나노하를 하야테는 늘 봐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에게 무리를 시킬 순 없었다. J.S 사건에서 폭주한 비비오와 콰트로를 저지하기 위해 무리한 결과로 생긴 링크코어의 손상 문제가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SA와의 전투에서 다시 한번 블래스터3를 발동한 나노하였다.
몸 상태가 정상일리 만무한 그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야테에겐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노하를 막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페이트, 나랑 같이 가줄 거지?"
"물론이야, 나노하"
"……알긋다. 공항에 가면 롯사가 있을기다. 거기서 티켓을 받으면 될 거야"
"아, 그 전에 잠시만"
페이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잠깐 동안 울리다가 전화가 연결됐다.
"응, 나야. 응. 이번에 그쪽으로 가려는데, 응. 알았어. 거기로 가면 되는 거야?"
"누굴까요?"
린포스 츠바이가 궁금한 듯 핸드폰 근처로 날아갔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응, 알았어. 응."
"혹시 전에 말했던…?"
"응, 제 106 관리 세계에 사는 친구야. 미리 연락을 해뒀으니까 가면 만날 수 있겠지."
"아무튼 조심해야 한데이. 우리가 아무리 몰래 움직이고 있어도 유노라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데이."
"알고 있어. 가자, 나노하!"
"응!"
나노하와 페이트가 먼저 카페의 문을 나섰다.
카페 지배인이 활짝 웃으면서 그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하야테는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렸다.
오랜 비 뒤에 내리는 눈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제 106 관리 세계.
한 개의 항성과 한 개의 행성과 소행성군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곳에 있는 유일한 행성 카렐리야에는 왕권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의 통일 국가인 동명의 국가가 근 300여 년 동안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4년 전 신규로 관리국에 가입했는데, 가입 이유는 선진 과학 및 마도기술의 교류였다.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마도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카렐리야는 주변 소행성군으로부터 행성의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었다. 우주공간에는 기초적인 수준의 소수의 차원함대가 있었지만 그 화력도 기동성도 현저히 뒤떨어져 있었다.
20여 년 전 관리국에게 발견되어 제 95 관리 외 세계로 분류되던 카렐리야는 지속적인 관리국의 가입 제안을 꺼려왔지만 결국 소행성의 침입에 지친 카렐리야는 제 95 관리 외 세계라는 이름을 버리고 제 106 관리 세계로 편입했다.
하지만 소행성 방어기술을 제외한 관리국의 기술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가입 제안 거부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관리국의 일원으로서의 기술혜택을 완벽하게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직도 지상 활주로를 주로 사용하는 공항의 모습은 그를 반증하는 것 중 하나였다.
본국에서 날아온 최신예 여객선은 출고된 후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아직도 반짝반짝한 랜딩기어를 펼쳐 지상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무중력 랜딩 시스템이 어울릴 법한 기체에 달린 랜딩기어는 카렐리야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기체에서 내린 진호와 엘렉트라는 수속을 마치고 짐을 챙겼다.
"저기요, 이건 뭐죠?"
짐을 뒤적거리던 엘렉트라가 자기가 넣은 적이 없는 이상한 모포를 보고 진호에게 물었다.
"용도는 나중에 말해주지. 갈 길이 머니 서두르자고"
진호가 공항의 후문 쪽으로 걸어가자, 엘렉트라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A01, 택시는 저쪽이라고요. 서두른다고 해도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되죠."
"무슨 소리지? 난 택시를 타고 간다는 말은 한 번도 안했는데?"
"에엣――? 하지만, 방금 갈 길이 멀다고… 설마.."
"어서 따라오기나 해"
앞으로의 전개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걷다, walk, 步るく, gehen, гулЯть 등 그녀가 배웠던 여러 가지 언어들이 떠올랐다. 어쨌든 모든 뜻은 하나, 걷는 것이었다.
갈 길이 먼데 걸어가야 하는 현실은 그녀를 좌절케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진호의 뒤를 따라 저벅저벅 걷고 있었다.
다행히 날은 적당히 선선하여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사람이 걷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지만 대체로 두 가지로 의미가 나뉜다.
'목적을 향해 걸어간다.', '목적 없이 걸어간다.'
목적이 있는 걸음은 처음에는 무겁지만 나중에는 가벼워진다. 그렇다면 목적이 없는 걸음은 그 반대일까?
그건 아니다. 목적이 없는 걸음은 언제라도 그 걸음을 멈출 수 있다. 언제라도 가볍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이 없는 걸음을 멈추면 길을 잃고 만다.
지금은 무겁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이 걸음은 후반에 다가갈수록 가벼워질 것이다.
그들은 공항에서 멀어져 어느새 인적이 드문 초원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집과 그 집에서 기르는 것으로 보이는 가축들이 역시 초원의 자리를 하나씩 맡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듬성듬성 난 풀들을 스쳐 지나갔다.
"절경이네요."
"그렇군."
"야―――호――――"
엘렉트라의 목소리가 초원의 구석구석에 퍼져 나갔다.
산은 없었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리는 없었지만 그녀가 잠깐 잃어버린 안식이 되돌아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보니, 고향이 생각나는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가던 길 가자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 그의 말을 엘렉트라는 확실하게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했다.
비단 그녀 뿐 만 아니라 그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도 대부분 그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그의 혼잣말은 그녀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언덕을 넘어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초원에 들어서자, 엘렉트라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진호 씨는 고향이 어디세요?"
"알아서 뭐하려고"
"그냥 알고 싶어서요. 나빠요?"
"나에 대한 정보는 너희에게도 극비사항인 것이 많아. 내 존재자체도 기밀인데 말이지. 실제로 내 존재를 아는 사람도 극소수인데다가 내가 게리라는 사실은 9명밖에 모르잖아"
"그거랑 뭔 상관이에요? 좀 알려 주세요~ 네?"
"알아봐야 재미도 없어.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도 알 필요 없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렉트라에게 말하는 그였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도저히 물어볼 수 없는 분위기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네?"
"고향 이야기 정도면 할 수 있겠지."
그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어느새 자신의 무릎까지 올라와 있는 풀을 손으로 한 움큼 뜯었다.
그리곤 다시 손을 폈다.
뜯어진 풀들이 바람에 실려 하늘로 날아갔다.
"이 나이가 되서도 고향을 잊을 수 없군. 거기도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그는 다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 47 관리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나?"
"네. 20년 전 쯤에 차원진으로 인하여 완전 소멸됐다는 그 차원 말이군요."
"그래, 그 차원진의 원인은 잘 알려지다시피 관리국의 아르크 앙시엘로 인한 차원진. 그로 인해 난 고향을 잃고 말았지"
아직도 그의 눈에는 당시의 모습이 선했다.
마지막 탈출기를 탄 어린 시절의 선우진호가 그 창 너머로 본 차원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자신의 고향의 모습.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우리 고향은 커렌트 에어라는 바람이 많은 평범한 작은 행성이었네. 주 수입원은 막대한 풍력에너지로 얻은 전력과 건조식품, 농수산물이었다. 나도 어릴 적엔 어머니를 도와 건조식품을 만들었었지"
"지극히 평범한 행성이었네요."
"기술문명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극히 일부였지만 사람들은 행복했었다. 천성이 지극히 착한 사람들이었거든.. 그런데…"
그의 머릿속에 다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심도시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도심의 중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TV에 고정되었다.
화면에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앵커와 관리국의 함선과 적의 함선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화면이 흘러 나왔다.
어린 진호, 아니 비단 어리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에겐 충격이었다.
물론 직접 겪는 전쟁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싸운다는 것 자체가 커렌트 에어 행성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조각난 함선들과 중간 중간 차원공간상에 떠다니는 각 국의 군인들의 시체.
커렌트 에어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모습은 앵커에 의해 시시각각 보도되었다.
당시의 기억은 그도 잘 나지 않았지만 그가 기억하는 것은 그 앵커가 절망적인 말투로 말했다는 것과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곳은 제 47 관리 세계 근처의 차원공간이라고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그때였지. 갑자기 주변에서 비상 대피령이 떨어지더군. 그러더니 군인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차량에 태워서 어디론가 가는 거야. 물론 나도 군인에게 끌려가 차량에 태워지고 어디론가 향했지. 내 마을에 있던 우리 부모님이나 내 형제, 이웃들의 행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나는 경황도 알지 못하고 탈출기에 억지로 태워졌지"
커렌트 에어의 군인들의 대처는 신속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전쟁에 참전하던 관리국 소속 기함이 보낸 무책임한 문서 두 장으로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한 장의 내용은 불안감을 가져다 줬다.
'아르크 앙시엘을 발사한다. 적 함선의 파편이 낙하할지도 모르니 주의하라'
2분 뒤 도착한 다른 한 장의 내용은 절망을 넘은 공포를 가져다 줬다.
'차원진이 발생했다. 그 곳에서 대피하라'
두 장의 문서로 전해진 절망을 넘은 공포는 그들에게 최후의 수단을 강요했다.
"고향에서 도망쳐 안전한 곳으로 정착하고 1년 후, 우연히 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지. 당시 관리국은 적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무리하게 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불완전한 아르크 앙시엘을 경솔하게도 대함 병기로 사용해버렸다. 지금도 차원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병기인데 그 때면 어떻게 될지는 안 말해도 알겠지?"
"차원진… 그럼, 그 때부터 이겠군요?"
"아아, 내 안에서 관리국에 대한 증오가 꿈틀거렸지"
진호가 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유난히 구름이 많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 하늘이었다.
"난 그래서 그 때부터 생각했지. 관리국 따윈 이 차원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고 말이야"
"그렇군요."
"역시, 재미없는 이야기였다."
헛기침을 하며 진호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제법 긴 시간동안 걸어온 것 같았지만 아직도 그들은 광활한 초원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럼 이제 저에 대해서 말할 차례네요?"
"뭐?"
"give & take는 당연한 거잖아요?"
"필요 없네. 자네에 대한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에이―― 빼지 말고요."
"진짜라니까"
"도대체 뭘 아는 거예요?"
"Y가 자네를 다리 밑에서 주워서 요원으로 만들었다는 것까지 난 다 알고 있지"
"역시 모르잖아요!"
진호와 엘렉트라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초원이 끝나고 큰 나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가 보이자, 그는 멈칫했다.
"여기서부터는 그 모포를 두르고 가도록 하게"
"네? 네.."
엘렉트라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모포를 꺼냈다.
투박한 색을 가진 평범한 모포였다.
진호의 말대로 먼저 가방을 다시 멘다음 모포를 둘렀다. 전신을 두를 만큼 상당히 큰 모포였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모포를 덮자, 답답함과 약간의 더위를 느꼈다.
"앞으로 갈 곳의 사방 10km에는 감시카메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그건 일종의 광학미채 역할을 하는 모포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럼, 진호 씨는 왜 안 둘러요?"
"난 상관없으니까"
진호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빠진 물건이 있는지 체크했다.
빠짐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는 다시 가방을 멨다.
"도대체 어딜 가 길래 감시카메라 때문에 이런 것까지 둘러야 하는 거죠?"
"가서 말해주지. 지금은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해.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어졌어"
시간을 본 진호는 엘렉트라를 재촉했다.
대충 채비를 마친 진호와 엘렉트라는 빠른 걸음으로 숲 안으로 들어섰다.
하야테의 힘으로 나노하와 페이트는 각 상관으로부터 유급휴가를 받았다.
공항으로 가서 베롯사에게 티켓을 전해 받은 뒤 2시간 후, 그녀들도 제 106 관리 세계에 도착했다.
지상 활주로에서 느낀 날씨는 선선했고 구름도 많았다.
무중력 랜딩 시스템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느껴졌다.
"왠지 지구에 온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러게"
이곳의 과학문명은 일부분을 제외하면 딱 제 97 관리 외 세계의 20세기 후반정도의 문명이었다.
디스플레이가 아닌 박스로 된 TV, 어쩐지 자신들이 가진 것보단 큰 핸드폰과 인테리어 방식 등 대부분의 것들이 비슷했다.
그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도 지구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들에겐 왠지 고향의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페이트가 먼저 공항을 빠져 나와 미드칠더에서 미리 연락해둔 친구와의 접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미츄린스키 거리 25번지 3동이라. 3동.. 음…'
공항 근처가 미츄린스키 거리 25번지라는 것은 친구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3동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3'에 대한 거부를 가진 마을인 것처럼 근처에는 '3'이라는 숫자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번호로 보이는 것에도, 간판에도 '3'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3이라는 숫자는 존재하긴 하지만 페이트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3동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페이트는 거리에선 조금 동떨어진 옥상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이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을 발견했다.
문득, 친구의 직업을 생각해낸 그녀는 건물에 다가가 주소를 확인했다.
건물에는 카렐리야의 고유어로 쓰인 글자가 적혀있었다.
мичуринский Волонтер Центра 25/3
그녀는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지만 25/3이라 적혀있는 것을 봐서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찾아낸 페이트는 바로 공항으로 가 나노하를 데려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나무로 된 복도와 벽,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낡은 건물이었다.
"Кто там?(거기 누구세요?)"
인기척을 느꼈는지 위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렐리야의 고유어였다. 아직까지 제 106 관리 세계에는 관리국의 통합언어 통역기가 적용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때문에 당연히 알아들을 턱이 없는 나노하와 페이트는 직감으로 알아듣고 그냥 자신들의 말로 응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기… 라리사 류리크라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Лариса?(라리사?)"
"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녀들의 말을 듣고는 조용해졌다.
잠시 후 윗층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들에게 익숙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 내려왔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라리사!"
능숙하게 관리국의 공용어를 구사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은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평범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몇 방울 맺혀있는 모습이었다.
라리사는 내려오자마자, 그녀들에게 반가운 듯 포옹을 했다.
"미안해, 지금 아이들이랑 야외 놀이를 하는 시간이라서 잠깐 잊어버렸어"
"헤에―― 역시 라리사야. 장래의 전 차원적인 사회봉사자!"
"에이, 나노하. 부끄럽잖아…"
"하하하"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악한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고귀함마저 느껴지는 회색의 눈동자와 백색의 피부. 그런 천사 같은 사람이 돌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히 치유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천사였다.
적당히 잡담을 끝내고 나노하와 페이트는 1층의 접대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라리사가 마실 것을 가져오고 뒤이어 앉았다.
"그래, 지금은 여기서 일하는 거야?"
"응. 시설은 좋지 않지만 여기 아이들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 주인 아줌마가 말씀하셔서 이 건물이 철거되기 전까지 4개월 간 여기에 있기로 했어"
"철거 된다고?"
"응, 재개발이래나 뭐라나… 그래서 그동안 아이들을 다른 봉사 센터로 보내거나 새로운 가정을 찾아서 거기에 새로 입양시킬 때까진 내가 있는 거야"
"헤에―― 역시 라리사는 대단하다."
"생명은 소중한 거야. 어린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몰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선 안 돼!"
그녀의 말에 나노하와 페이트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들의 머릿속에서 자신들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관리국에 대항하는 세력을 뿌리 뽑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 명령을 서슴지 않는 그를…
과거의 그도 지금의 라리사처럼 예전에는 상냥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친구였다.
그녀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그녀들 나름의 정의를 가지게 한 친구였다.
물론 지금은 전혀 달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명령에 따라 생명이 꺼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속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 떨림을 멈추기 위한 조사야.' 라고 되뇌며 나노하는 라리사에게 본론을 꺼냈다.
"저기, 라리사. 전화로 들었으면 알겠지만… 우린 이곳의 영웅인 아그리 박사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은 것이 있어. 물론 시공관리국 국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거야."
"그래, 그건 전화로 들었지."
"그래서 말인데, 아그리 박사와 관련된 시설에는 어떤 것이 있어?"
차를 내려놓은 라리사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생각하는 표정을 짓던 라리사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장을 뒤적거렸다.
책장은 청소를 한 지 조금은 된 듯 그녀가 손을 댈 때마다 소량의 먼지가 날렸다.
"찾았다."
라리사는 커다란 책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았다.
라리사가 찾은 책은 카렐리야의 전도였다.
1:1000000으로 만들어진 전도는 각 페이지마다 카렐리야의 전 지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 방대한 양만큼 책의 두께도 상당했다.
"아그리 박사님과 관련된 시설은 하나 밖에 없어. 박사님의 연구소지. 위치는.. 여기다! 벨로모르스크로부터 남쪽으로 15km, 그러니까 미츄린스키 공항에선 아마 20km 정도 떨어진 지점일거야"
라리사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에는 'Д-р agrry в лаборатория(아그리 박사의 연구소)'라는 명칭이 쓰여 있었다.
"그래?"
"박사님의 연구소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워. 박사님의 개인적 부탁으로 경호세력은 모두 연구실에서 15km 이상은 떨어져 있지만 감시카메라는 존재할 거야"
"라리사, 꽤 자세하게 알고 있네?"
"에? 에― 그게.. 이런 건 여기선 상식 수준이니까…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고"
"그렇구나."
라리사는 페이트의 질문에 조금 더듬듯이 이야기했지만 나노하와 페이트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남겨두지 않았다.
위치를 알았으면 이제는 조사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그 목전을 앞에 두고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가자, 나노하"
"……."
"나노하, 가자니까"
"저기, 라리사"
나노하는 소파에서 가만히 앉아 라리사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야? 나노하"
"라리사, 너… 우리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거구나?"
나노하는 차분한 목소리로 라리사에게 질문했다.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녀의 말로 인해 생긴 잠깐의 적막 이후, 라리사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노하"
나노하는 한 숨을 쉬며 라리사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나노하의 시점에서 약간의 긴장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네가 알려준 정보는, 우리가 그 시설에 몰래 다가가는 것을 전제로 두고 있어. 근데 우린 아그리 박사와 관련 시설이 어떤 것이 있는지만 물었을 뿐이야. 라리사 너.."
"설마, 라리사!"
시설에 대해서만 물어본다면 적당히 그 이름과 위치만 알려줘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리사는 그녀들에게 기지의 간단한 경호상태와 감시카메라의 배치까지 알려준 것이다. 이를 나노하는 이상하게 여겼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뜻하지 않게 라리사는 정곡을 찔렸다.
라리사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몇 방울 생겨나 흘러 내렸다.
이미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능력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음을 느낀 라리사는 결국 입을 열었다.
"사실… 3개월 전 쯤에 우연히 공항 뒷길에서 아그리 박사님이 무언가 하는 것을 보고 말았어. 몰래 훔쳐봤는데…"
"그런데?"
"그의 옆에서 자고 있던 노숙자가 갑자기 불에 휩싸인 거야…."
그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앞 뒤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상황은 누가 봐도 아그리 박사가 노숙자에게 불을 지른 것이었다.
잔인한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말을 가다듬은 라리사는 말의 흐림을 제거했다.
"그래서 난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어. 그래서 너희들이 그에 대해서 조사한다고 하니까 그거인가 싶었어."
"그렇구나."
라리사의 말을 들은 나노하와 페이트는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야 여러 가지 정보를 토대로 아그리 박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치의 의심도 있을 리가 없었던 카렐리야의 영웅인 아그리 박사에게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라 그녀들은 생각했다.
더욱이,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리는 없었으므로 라리사는 혼자 크게 심적인 혼란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리사는 그녀들에게 걱정이 섞인 말로 당부하듯 말했다.
"저기, 그래도 정말 조사만 하고 와야 하는 거 알지? 괜히 일을 크게 만들다간 너희들이 위험할 거야. 어쨌든 그는 이곳에서 추앙받는 영웅이니까"
"걱정 마! 라리사!"
"맞아"
라리사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노하와 페이트는 강한 모습으로 응답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강해서 오히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불안감을 라리사에게 표출했다.
그를 느낀 라리사는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이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봉사센터를 떠났다.
건물에서 멀어져 가는 그녀들에게 라리사와 아이들이 인사를 전했다.
그에 화답하듯 나노하와 페이트는 팔을 흔들어 보인 후, 빠르게 뛰어갔다.
그녀들을 배웅하고자, 구름 속에 숨어있던 카렐리야를 비추는 유일한 항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 짤막한 빛을 선사했다.
지도를 찍은 사진을 가지고 미츄린스키 거리의 외곽으로 나온 나노하와 페이트는 최종 점검을 시작했다.
디바이스와 소형 카메라, 녹취기 등을 준비한 후, 다시 한번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했다.
숲이 둘러싼 지형의 가운데에 연구소가 위치한 것으로 험난한 지역은 그다지 없지만 광활한 숲이 가장 큰 변수였다.
이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선 날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연구소까지 빠르게 가려면… 날아가는 수밖에는 없겠네."
"이곳의 마력감지 상태는 어떤지 알아봤어?"
"응, 하야테가 방금 전해줬어. 아직 마력감지에 대한 기술은 미비한 수준이라 눈에 띌 만한 큰 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모르는 모양이야"
"역시"
하야테의 정보와 아까 전 라리사에게 들은 그 일을 종합하여 이곳은 마력감지가 미비하다는 예상을 한 페이트의 생각은 적중했다. 마력감지가 미비한 지역이라면 그 행동범위가 한층 넓어질 수 있었다.
그녀들에겐 예상치 못할 전투변수를 감안할 때, 좋은 조건이었다.
"어쨌든, 라리사에게 들은 정보대로라면, 아그리 박사는 단순한 과학자는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그가 아그리 터너라는 이야기야?"
"응, 그리고… 그 아그리 터너가 게리일 가능성이 높아진 거야."
긴장감이 더해졌다. 만약 아그리 박사의 정체가 게리라면 그녀들로서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행동에 임해야 했다.
상대는 대마도사 칭호를 받았던 관리국 전체를 뒤흔든 S급 범죄자.
제일 스칼리엣티와 같은 배후형 같은 범죄가가 아닌 프레시아와 같은 실전형 범죄자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최소 적의 전력은 2명에서 최대 3명. 전투가 일어난다면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은 당연했다.
"좋아, 레이징 하트!"
[Stand by ready]
"레이징 하트 셋업!"
"바르딧슈!"
[Get set]
"바르딧슈 어썰트 셋업!"
[Set up]
관리국이 자랑하는 두 명의 에이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빛의 에이스 오브 에이스와 노란빛의 검은 사신이 내뿜는 빛은 강렬했다.
셋업과 동시에 그녀들은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전속으로 날아갔다.
숲의 거의 끝에 다다른 진호와 엘렉트라는 잠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주변은 숲의 끝을 알려주는 듯 덩치가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그들도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영양분과 물을 먹고 있는 것이다.
목을 축이고 난 뒤, 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건 몰랐던 이야기로군…"
"그렇죠? 그러니까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마시라구요."
"뭐, 그건 그거고… 어쨌든 출발하지. 이제는 시야에도 보이는 곳까지 온 것 같으니까"
"시야에 보여요?"
엘렉트라는 출구 쪽을 유심히 살펴봤다.
저 멀리에 있는 회색의 높은 구조물이 그녀의 시야에 살짝 들어왔다.
"저건가요?"
"저게 바로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곳의 왕족들은 '모즈그'라고 하더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목적지에 거의 당도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걷기도 전에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엘렉트라의 기분은 완전히 개운해지지 않았다. 자신을 감싸는 이질감은 밖에서 들어오는 좋은 기분을 차단하는 것 같았다.
모포를 벗으려고 하자, 진호가 저지했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이었다.
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엘렉트라는 진호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숲을 빠져나오자, 다시 바람이 부는 초원이 나타났다. 전에도 맡아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풀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자극했다.
어느새 구름은 더욱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진호에게 있어서 그것은 희소식은 아니었다.
그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냄새의 종류는 달라졌다. 단순한 풀냄새가 아니었다.
"진호 씨, 이 냄새는 뭐죠? 뭔가 다른데요."
"슬슬 다왔다는 증거다. 이 냄새는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의 냄새지."
"그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이 식물이 내뿜는 냄새는 각종 해충과 바이러스를 막는 일종의 천연 살균 장치라고 할 수 있지. 이곳에선 어떠한 균도 있을 수 없어. 그래서 이곳에 연구소를 지은 거야"
식물의 냄새가 더욱 강하게 진동했다.
좋은 고급향수의 냄새가 과하면 기분 나쁜 냄새로 느껴지듯, 이 식물이 내뿜는 냄새도 비슷한 작용을 했다.
한 가지 다르다면 식물이 내뿜는 냄새 자체도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쾨쾨한 냄새를 먹으며 그들의 시야 속에서 높은 구조물은 점점 자라고 있었다.
점차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건물 자체는 매우 낮아보였다. 기껏해야 2층, 아니 2층도 안 되는 크기였다.
건물 위에 달린 길이에 비해 얇은 구조물의 위에는 작은 레이더 서너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좌측에는 유리로 된 돔 모양의 천장이 설치된 건물이 있었고 그를 있는 통로를 따라 우측에는 평범한 회색 건물이 있었다.
1, 2분을 더 걷고, 드디어 모즈그의 앞에 그들이 도착했다.
진호가 문을 여는 사이에 엘렉트라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봤다.
모즈그가 있는 곳은 그야말로 주변을 둘러싼 숲 한 가운데 있는 초원의 중심이었다.
위치 자체는 중요시설로서는 그저 그런 위치였지만 아직도 풍겨오는 이 쾨쾨한 냄새를 생각하면 최적의 위치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문이 열리자, 진호는 문을 열어둔 채로 고정시켰다.
"엘렉트라, 모포를 벗고 무전기를 꺼내서 장비해라. 모포는 다시 챙기고"
"드디어 이 모포에서 해방되네요."
모포를 벗은 엘렉트라의 표정은 살아있었다. 자신을 감싸던 이질감이 없어지니 한결 나았다. 자유, 해방… 거창하지만 잠깐이나마 그녀가 느낀 것들이었다.
"무전기를 장비했으면 건물 위로 올라가서 내 지시를 기다려라. 단, 아직 마법은 쓰면 안 돼"
"네"
엘렉트라가 위로 올라가는 사이에 진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그가 최근에 떠난 뒤의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안에 있는 간이 테이블을 손으로 닦아내자, 작은 먼지들이 묻어 나왔다.
1층에 있는 부엌을 지나, 옆에 있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만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 한 층 내려갈 때마다 점점 어두워졌다.
계단 중간 부분에 설치된 조명등들이 켜지지 않았다.
"하아… 또 고쳐야 되나"
조명등은 지하 4층까지 내려가서야 제대로 작동했다.
조명등들이 그가 내려갈 때마다 그를 감지하여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조명등이 총 10개가 켜지고, 드디어 보이지 않던 입구가 드러났다.
B15라고 쓰인 입구 앞에 서자, 붉은 등이 들어왔다.
언제나 섬뜩한 붉은 등이라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두 개의 인식 장치에 각각 손과 눈을 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B15라는 문자가 갈라지며 문이 열렸다.
다행히도 내부의 조명은 완전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수리비는 위쪽 조명등 4개분의 값이면 충분했다.
이번에도 진호는 문을 열린 채로 고정시켜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있는 5개의 유리관에는 모즈그의 동력을 제공하는 마력에너지가 순환하고 있었다.
유리관을 지나자, 각종 실험용 장치와 기계, 탁자, 그리고 22인치 정도의 모니터 3개가 달린 벽에 붙은 컴퓨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앞에 진호가 서자, 컴퓨터의 전원이 자동으로 켜졌다.
이윽고, 제복을 입은 한 남자의 얼굴이 중앙 모니터에 나타났다.
"3개월 만입니다. 아그리 박사님"
"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박사님이 제공한 기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하"
모니터에 비친 남자는 진호와 친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호를 아그리 박사님이라 부르며, 그는 진호를 정중히 대했다.
"오늘도 그 전처럼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좀 특수한 마력발전기를 가동시킬 겁니다. 늘 쓰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마력이 방출될 테니, 이 점 숙지해주세요. 기한은 대충 3일 정도 걸릴 겁니다."
"이번엔 꽤 늦겠군요. 뭐, 박사님께 충분히 연구할 환경과 시간을 주고 고급기술을 받는 저희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겠죠."
"아무튼 그리 알고 준비해주세요. 마법 술식은 C-05-CM5, 결계식입니다."
"예스티 세르!"
모니터가 꺼지자, 진호는 엘렉트라에게 무전을 걸었다.
[엘렉트라, 디바이스를 셋업해서 반응 위장 결계를 치고 이쪽으로 내려와라 문은 열어 놨다."
"네? 결계요?"
[잔말 말고 해]
"네, 네"
갑자기 결계를 치라는 말에 엘렉트라는 의아했지만, 그녀는 귀에 찬 귀걸이 형식을 한 핍스 가더를 떼어냈다.
[OK, set up]
순간의 빛이 발현된 후, SA 특유의 배리어 재킷이 드러났다.
그리고 바로 노란색 마법진이 그려지며 술식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핍스 가더, C모드 후 반응 위장 결계입니다!"
[Ok, master. C mode activity]
핍스 가더의 끝 부분에 달린 두 개의 부속 인텔리 디바이스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 5개로 분리됐다.
5개로 분리된 각 부품들은 모즈그의 4방에 떨어지고, 남은 중심부품이 천장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Reaction camouflage circle]
나눠진 5개의 부품들을 사이로 반구 형태의 넓고 투명한 결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모즈그 위에 떠 있는 중앙부품에서 노란 마력입자가 결계를 타고 흘러내리듯 뿜어져 나왔다.
결계가 완성되자, 엘렉트라 역시 지하 15층에 있는 연구실로 내려왔다.
"결계는 다 쳤나?"
"네, 근데 왜 결계를 치라고 한 거죠?"
"지금부터 내가 할 실험을 감추기 위해서지."
"실험이요?"
진호의 손에는 어떤 용액이 담긴 플라스크가 들려있었고 탁자에는 녹색의 에메랄드로 장식된 목걸이 형태를 가진 그의 디바이스와 각종 용액들이 담긴 용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진호는 사진 몇 장을 그녀에게 주며 말했다.
"엘렉트라, 저쪽 통로로 가면 계단이 하나 나오는데 쭉 올라가면 아까 봤던 유리로 된 정원이 나올 거야. 거기서 이 녀석들을 하나씩 가져왔으면 하는군."
"뭐에요? 이게. 또 식물?"
밖에서 별별 식물이란 식물은 죄다 보고 온 터라 그녀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보통 식물이 아니야. 특별하고 특별한 나의 보물들이지"
진호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일에 전념했다. 그 미소의 진의를 모른 채 엘렉트라는 정원으로 향했다.
선우진호의 실험은 계속됐다.
결계와 건물의 비호 아래서 숨겨야만 하는 그의 실험은 지하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점점 그를 향해 다가오는 존재를 모른 채.
-------------------------------------------------------------------------------------------------------
한 편마다 30kb 초중반을 채우려니 힘들어요(...)
다 쓰면 또 교정작업 해야하고 으헣헣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음 편은 언제 다 쓸까요. 룰루~
- 막간 작가의 막장 설정 공개
제 106 관리 세계 소속 행성 카렐리야의 배경
- 본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어를 러시아어를 쓰고 있습니다. 카렐리야는 러시아와 핀란드의 접경지역 근처에 있는 지방 행정 기구인 카렐리야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Карелия)을 모델로 만든 것이죠. 물론 기후도 비슷하게 설정해뒀습니다. 다만, 계절상 봄과 여름의 사이이라는 점을 적용하여 적당히 선선한 정도로 만든 상황이죠.
물론 실제로 카렐리야는 입헌군주제 국가도 아니고 독립된 국가도 아니랍니다. ~_~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스 리리컬 동맹단 가든지부
할일: 팬픽(SideStory)




2009-06-24 12:52 #
2009-06-24 22:52 #
뭐 어느모 국가는 국방부 장관이 여성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