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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box 09. 가족사진
at 2006-03-21 01:26:41 1 comment
-- 98년에 썼던 단편모음집인 Fantasy Box 중에서. 가장 짧은 단편 하나만 타이핑 해서 올려봅니다. 원본은 물론 노트에 손글씨입니다.
fantasy box 09.
가족사진
네, 그렇습니다. 저는 사진사입니다. 그것도 가족사진 전문이었지요.
아시다시피 사진이 발명된 초기에는 사진을 찍히면 영혼이 빼앗긴다 해서 많이들 두려워했지요. 미신이라고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어느 한 순간의 영상이 얼어붙은 듯이 종이 한 장 위에 옮겨온다는 것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특히 몇십 년이 지난 후, 젊었던 자신이 사진 위에 남아있는 것을 본다면 누군들 거짓말 같은 삶을 살았다고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긴 잠을 잔 것 같다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현대의 부활한 마술입니다.
하지만 가족사진이라면 문제가 틀립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가족사진은 마치 오래된 망령같은 우울함이 있습니다. 포켓의 마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것은 금지된 열쇠…. 하나하나 살아서 붙박힌 생생한 비극과 저주의 주문.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결코 없어지지 않는 핏줄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아, 여기 한 장의 가족사진이 있군요. 좀 오래 되었지만 제 최초의 가족사진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사는 어느 부유한 사업가 집안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찍은 것이지요. 부친과 모친, 부친의 여동생, 네명의 아들과 두 딸, 며느리 하나, 사위 하나, 두 손자와 세 손녀, 모두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모두들 닮은 얼굴로 찍혀 있습니다.
부친은 사진의 정중앙에, 가족 중 유일하게 의자에 앉은 채 풍채가 당당한 모습입니다. 프록코트를 포함해 당시 최고의 정장 차림이며 손때 묻은 파이프를 물고 있습니다.
그는 완고하고 고집 센 노인입니다. 가족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권위적인 성격이며 자신이 무슨 일에서나 주축이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습니다. 여자보다도 허영심 많고 무척이나 강해보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건강은 - 그가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 무엇보다 즐겼으나 바로 그 부친에게서 나쁜 병의 가능성도 물려받은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15년 후 폐암으로 죽습니다.
모친은 부친 바로 뒤에 서 있습니다만 어떤 신체적 접촉도 보이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 채입니다. 부친과 달리 그녀는 수수한 차림입니다. 평생을 걸쳐 서서히 굳어져 온 듯한 그 엄격한 얼굴은 카메라 앞에서도 풀리지 않은 듯 합니다.
부친의 바람기에 평생 속앓이를 하며 살아온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라면 인정머리조차 없이 가혹했습니다. 대신 관심을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쏟았지만 둘은 어려서 죽고 남은 여섯도 점차 자라면서 그녀의 엄격하기만 한 훈육방식에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도 꼿꼿하게 서서 눈물조차 보이지 않은 그녀였으나 누구도 찾지 않는 빈 집에서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친의 뒷편에 모친과 함께 서 있는 것은 그의 여동생입니다. 부친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살짝 손을 댄 채인 그녀는 수녀복 차림입니다. 부친의 여동생이라기보다는 모친의 여동생이라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엄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오빠를 존경은 하되 애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외에도 그녀는 사랑이 아닌 신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에 대한 복종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에서 그녀의 올케와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약혼자에게 버림받고 남자에 대한 복수심에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그리도 부르짖던 신의 낙원을 임종의 순간에 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친 곁에 움츠리듯 서 있는 것은 부부의 막내딸입니다. 그러나 벌어진 눈 사이와 다물지 못하는 입, 멍한 표정은 그녀가 정상적인 소녀가 아니란 것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겁먹은 듯 하면서도 어머니 옷자락에 늘어진 장식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녀는 후에 다운증후군이라 알려진 선천적 장애를 타고 났습니다.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지만 모친은 그녀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모친을 알아보고 따랐으나 항상 냉정한 반응에 부딪혀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래 살았지만 그 죽음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얼굴도, 몸집도 비슷한 연년생입니다. 군복을 입은 그들은 큰아들의 아름다운 아내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습니다. 둘 다 이 가족사진에서 눈에 띄게 밝은 얼굴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뒷편에서 형수와 손을 맞잡고 있으며 큰 아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 웃으며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형제들 중 가장 우애가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군에도 나란히 입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과 형수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큰 아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그 두 사람이 아는 사이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두 형제는 전장에 나갔고 1년 후 둘째 아들 혼자만 돌아왔습니다. 그들 동료들의 조심스러운 발언으로는 '둘 중 누가 먼저 총질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전장을 떠돌아다녔고, 큰 아들의 아내는 친정에 돌아간 후 재혼했습니다.
큰 아들의 발치에는 두 아이들이 앉아있습니다. 그의 아들과 딸입니다. 여동생인 딸은 예쁜 옷이 구겨지든 말든 상관없는 듯 주저앉아 멍한 얼굴에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곁의 오빠는 어리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출중한 외모입니다. 그런데도 정면을 보지 않고 고개를 틀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삼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큰 아들의 아내도 이 두 아이들에 대해서는 남편의 아이들이 확실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딸아이는 소리없는 유전을 이어받아 자기 고모처럼 다운증후군이었습니다. 큰 아들의 아내가 재혼하며 딸을 데리고 갔으나 자기 고모와 달리 이 아이는 십오세가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눈치 빨랐던 아들은 어른들 중 그 누구도 몰랐던, 자기 어머니와 삼촌의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깊이 상처입어 여자 불신증에 걸린 그는, 성장한 후 자신의 외모를 미끼로 하나하나 여자를 꼬여 파멸시켜 나갔습니다. 결혼도, 진정한 사랑도, 단란한 가정도 모르고 바닥으로 치닫던 그는 결국 약물중독으로 수용소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사진 오른쪽에는 큰 딸과 그 남편이 서 있습니다. 우아한 용모의 큰 딸은 약간 불안한 듯한 얼굴로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손가락에 칭칭 휘감고 잡아뜯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염을 양옆으로 갈라붙인 멋쟁이인 남편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그녀에게 찰싹 붙어 얼싸안고 있습니다.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불운한 자매 - 다운증후군으로 평생 고통받은 - 와는 달리, 남자 형제들 한가운데 태어난 큰 딸은 그만큼 모친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순한 그녀는 말썽꾸러기 형제들 몫까지 대신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모친과 수녀인 고모의 억압 속에서 그녀는 허영심으로 욕구를 분출했습니다. 부친처럼 그녀는 보석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 몫의 재산을 탐내 정열적이고 바람끼 많은 남편이 들러붙었던 것이죠. 사랑 대신 보석의 빛을 쫓던 그녀는 결국 파산해 버리고, 남편은 금세 다른 여자에게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큰 딸과 남편 앞에는 그들의 쌍둥이 남매가 보입니다. 둘 다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쌍둥이라도 몹시 달랐습니다. 딸은 두터운 백과사전을 꼭 끌어안고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듯한 딱딱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데 비해, 아들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운 채 자랑스럽게 사냥용 나이프를 치켜들고 있습니다.
큰 딸의 남편은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주장을 고집세게 밀어붙이거나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버릇을 가르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 탓에 딸아이는 할머니의 꽉 막힌 규율 속에서, 아들아이는 무가치의 자유분방함 속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기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쌍한 백치 고모를 다루는 방식에 의문을 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동정심에서 비롯됐든, 경멸에서 비롯됐든 알 수 없지만, 그 소녀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신의 고모를 안락사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그녀의 남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무절제하게 자신이 좋을 대로 고집만 부리며 자라났지요. 네살 때부터 칼과 총, 사냥의 즐거움에 눈 뜬 이 천진한 어린 천사는 그 천진함 그대로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누이의 범죄보다 십년 앞서 사형당했습니다.
사진 한쪽 구석에, 가족들과 약간 떨어져 서 있는 젊은이는 넷째, 즉 막내아들입니다. 그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옷이 수수함에도 불구하고 턱을 쳐든 채 젊은이다운 매서운 패기에 눈빛을 번득이고 있습니다. 그의 창백해 보이는 얼굴과 고운 손은 그가 학자 타입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앞에 세우고 있는 어린 소녀는 그의 형인 둘째 아들의 딸입니다. 아주 예쁘장한데도 표정이 없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막내는 행동적인 이상주의자였습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던 넷째 아들은 맑시즘에 심취해 부르주아인 자기 가족들, 특히 부친을 경멸하게 된 겁니다. 가족들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할수록 그의 결심은 굳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넷째 아들은 가족 내 소외된 자들 - 즉 자신의 백치 여동생과 그 병을 물려받은 조카딸, 자신의 형인 무능력한 셋째 아들 - 을 돌보고 애정을 쏟게 됩니다. 물론 둘째 형의 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큰 아들이 결혼할 즈음 잠시 종적을 감췄던 둘째 아들은 갓난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가족들은 여배우의 딸, 그것도 혼외로 태어난 이 아이를 외면했고 이 소녀는 집안 구석에서 하인들의 동정과 이 막내 삼촌의 관심 덕으로 근근히 자라났습니다. 후에 이 둘은 집을 나가 넷째 아들은 지하 운동에 투신했고, 둘째 아들의 딸은 역시 여배우가 되었지요. 마피아의 정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결국은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네? 아들 한 명의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고요? 바로 여기 있지 않습니까. 가족사진을 찍는 자리에조차 소외되어 사진사 노릇을 해야 했던 셋째 아들이. 그렇게 사진 한 장을 제 손에 남기고는 추억도, 회한도 가족들과 함께 흩어져 갔습니다. 그러기에 알고 있는 이들은 결코 자신의 가족사진은 찍지 않기 마련입니다.
… 당신의 가족사진에는 무엇이 찍혀 있습니까?
[1998. 06. 29. AM 03:43.]
-- 1998 년에 썼던 단편 모음 Fantasy Box 에서 가장 짧은 것을 한 편.
가족사진
네, 그렇습니다. 저는 사진사입니다. 그것도 가족사진 전문이었지요.
아시다시피 사진이 발명된 초기에는 사진을 찍히면 영혼이 빼앗긴다 해서 많이들 두려워했지요. 미신이라고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어느 한 순간의 영상이 얼어붙은 듯이 종이 한 장 위에 옮겨온다는 것은 신기하지 않습니까? 특히 몇십 년이 지난 후, 젊었던 자신이 사진 위에 남아있는 것을 본다면 누군들 거짓말 같은 삶을 살았다고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긴 잠을 잔 것 같다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현대의 부활한 마술입니다.
하지만 가족사진이라면 문제가 틀립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가족사진은 마치 오래된 망령같은 우울함이 있습니다. 포켓의 마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것은 금지된 열쇠…. 하나하나 살아서 붙박힌 생생한 비극과 저주의 주문.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결코 없어지지 않는 핏줄의 역사를 증거합니다.
아, 여기 한 장의 가족사진이 있군요. 좀 오래 되었지만 제 최초의 가족사진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사는 어느 부유한 사업가 집안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찍은 것이지요. 부친과 모친, 부친의 여동생, 네명의 아들과 두 딸, 며느리 하나, 사위 하나, 두 손자와 세 손녀, 모두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모두들 닮은 얼굴로 찍혀 있습니다.
부친은 사진의 정중앙에, 가족 중 유일하게 의자에 앉은 채 풍채가 당당한 모습입니다. 프록코트를 포함해 당시 최고의 정장 차림이며 손때 묻은 파이프를 물고 있습니다.
그는 완고하고 고집 센 노인입니다. 가족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권위적인 성격이며 자신이 무슨 일에서나 주축이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습니다. 여자보다도 허영심 많고 무척이나 강해보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건강은 - 그가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 무엇보다 즐겼으나 바로 그 부친에게서 나쁜 병의 가능성도 물려받은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15년 후 폐암으로 죽습니다.
모친은 부친 바로 뒤에 서 있습니다만 어떤 신체적 접촉도 보이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 채입니다. 부친과 달리 그녀는 수수한 차림입니다. 평생을 걸쳐 서서히 굳어져 온 듯한 그 엄격한 얼굴은 카메라 앞에서도 풀리지 않은 듯 합니다.
부친의 바람기에 평생 속앓이를 하며 살아온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라면 인정머리조차 없이 가혹했습니다. 대신 관심을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쏟았지만 둘은 어려서 죽고 남은 여섯도 점차 자라면서 그녀의 엄격하기만 한 훈육방식에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도 꼿꼿하게 서서 눈물조차 보이지 않은 그녀였으나 누구도 찾지 않는 빈 집에서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친의 뒷편에 모친과 함께 서 있는 것은 그의 여동생입니다. 부친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살짝 손을 댄 채인 그녀는 수녀복 차림입니다. 부친의 여동생이라기보다는 모친의 여동생이라는 편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엄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오빠를 존경은 하되 애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외에도 그녀는 사랑이 아닌 신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에 대한 복종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에서 그녀의 올케와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약혼자에게 버림받고 남자에 대한 복수심에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그리도 부르짖던 신의 낙원을 임종의 순간에 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친 곁에 움츠리듯 서 있는 것은 부부의 막내딸입니다. 그러나 벌어진 눈 사이와 다물지 못하는 입, 멍한 표정은 그녀가 정상적인 소녀가 아니란 것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겁먹은 듯 하면서도 어머니 옷자락에 늘어진 장식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녀는 후에 다운증후군이라 알려진 선천적 장애를 타고 났습니다.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지만 모친은 그녀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모친을 알아보고 따랐으나 항상 냉정한 반응에 부딪혀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래 살았지만 그 죽음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얼굴도, 몸집도 비슷한 연년생입니다. 군복을 입은 그들은 큰아들의 아름다운 아내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습니다. 둘 다 이 가족사진에서 눈에 띄게 밝은 얼굴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뒷편에서 형수와 손을 맞잡고 있으며 큰 아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 웃으며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형제들 중 가장 우애가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군에도 나란히 입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과 형수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큰 아들이 결혼하기 전부터 그 두 사람이 아는 사이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은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두 형제는 전장에 나갔고 1년 후 둘째 아들 혼자만 돌아왔습니다. 그들 동료들의 조심스러운 발언으로는 '둘 중 누가 먼저 총질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둘째 아들은 집을 나가 전장을 떠돌아다녔고, 큰 아들의 아내는 친정에 돌아간 후 재혼했습니다.
큰 아들의 발치에는 두 아이들이 앉아있습니다. 그의 아들과 딸입니다. 여동생인 딸은 예쁜 옷이 구겨지든 말든 상관없는 듯 주저앉아 멍한 얼굴에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곁의 오빠는 어리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출중한 외모입니다. 그런데도 정면을 보지 않고 고개를 틀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삼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큰 아들의 아내도 이 두 아이들에 대해서는 남편의 아이들이 확실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딸아이는 소리없는 유전을 이어받아 자기 고모처럼 다운증후군이었습니다. 큰 아들의 아내가 재혼하며 딸을 데리고 갔으나 자기 고모와 달리 이 아이는 십오세가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눈치 빨랐던 아들은 어른들 중 그 누구도 몰랐던, 자기 어머니와 삼촌의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깊이 상처입어 여자 불신증에 걸린 그는, 성장한 후 자신의 외모를 미끼로 하나하나 여자를 꼬여 파멸시켜 나갔습니다. 결혼도, 진정한 사랑도, 단란한 가정도 모르고 바닥으로 치닫던 그는 결국 약물중독으로 수용소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사진 오른쪽에는 큰 딸과 그 남편이 서 있습니다. 우아한 용모의 큰 딸은 약간 불안한 듯한 얼굴로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를 손가락에 칭칭 휘감고 잡아뜯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염을 양옆으로 갈라붙인 멋쟁이인 남편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그녀에게 찰싹 붙어 얼싸안고 있습니다.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불운한 자매 - 다운증후군으로 평생 고통받은 - 와는 달리, 남자 형제들 한가운데 태어난 큰 딸은 그만큼 모친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순한 그녀는 말썽꾸러기 형제들 몫까지 대신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모친과 수녀인 고모의 억압 속에서 그녀는 허영심으로 욕구를 분출했습니다. 부친처럼 그녀는 보석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 몫의 재산을 탐내 정열적이고 바람끼 많은 남편이 들러붙었던 것이죠. 사랑 대신 보석의 빛을 쫓던 그녀는 결국 파산해 버리고, 남편은 금세 다른 여자에게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큰 딸과 남편 앞에는 그들의 쌍둥이 남매가 보입니다. 둘 다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쌍둥이라도 몹시 달랐습니다. 딸은 두터운 백과사전을 꼭 끌어안고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듯한 딱딱한 표정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데 비해, 아들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운 채 자랑스럽게 사냥용 나이프를 치켜들고 있습니다.
큰 딸의 남편은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주장을 고집세게 밀어붙이거나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버릇을 가르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 탓에 딸아이는 할머니의 꽉 막힌 규율 속에서, 아들아이는 무가치의 자유분방함 속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기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쌍한 백치 고모를 다루는 방식에 의문을 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동정심에서 비롯됐든, 경멸에서 비롯됐든 알 수 없지만, 그 소녀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신의 고모를 안락사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 그녀의 남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무절제하게 자신이 좋을 대로 고집만 부리며 자라났지요. 네살 때부터 칼과 총, 사냥의 즐거움에 눈 뜬 이 천진한 어린 천사는 그 천진함 그대로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누이의 범죄보다 십년 앞서 사형당했습니다.
사진 한쪽 구석에, 가족들과 약간 떨어져 서 있는 젊은이는 넷째, 즉 막내아들입니다. 그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옷이 수수함에도 불구하고 턱을 쳐든 채 젊은이다운 매서운 패기에 눈빛을 번득이고 있습니다. 그의 창백해 보이는 얼굴과 고운 손은 그가 학자 타입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앞에 세우고 있는 어린 소녀는 그의 형인 둘째 아들의 딸입니다. 아주 예쁘장한데도 표정이 없습니다.
어느 집에서나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막내는 행동적인 이상주의자였습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던 넷째 아들은 맑시즘에 심취해 부르주아인 자기 가족들, 특히 부친을 경멸하게 된 겁니다. 가족들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할수록 그의 결심은 굳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넷째 아들은 가족 내 소외된 자들 - 즉 자신의 백치 여동생과 그 병을 물려받은 조카딸, 자신의 형인 무능력한 셋째 아들 - 을 돌보고 애정을 쏟게 됩니다. 물론 둘째 형의 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큰 아들이 결혼할 즈음 잠시 종적을 감췄던 둘째 아들은 갓난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가족들은 여배우의 딸, 그것도 혼외로 태어난 이 아이를 외면했고 이 소녀는 집안 구석에서 하인들의 동정과 이 막내 삼촌의 관심 덕으로 근근히 자라났습니다. 후에 이 둘은 집을 나가 넷째 아들은 지하 운동에 투신했고, 둘째 아들의 딸은 역시 여배우가 되었지요. 마피아의 정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결국은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네? 아들 한 명의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고요? 바로 여기 있지 않습니까. 가족사진을 찍는 자리에조차 소외되어 사진사 노릇을 해야 했던 셋째 아들이. 그렇게 사진 한 장을 제 손에 남기고는 추억도, 회한도 가족들과 함께 흩어져 갔습니다. 그러기에 알고 있는 이들은 결코 자신의 가족사진은 찍지 않기 마련입니다.
… 당신의 가족사진에는 무엇이 찍혀 있습니까?
[1998. 06. 29. AM 03:43.]
-- 1998 년에 썼던 단편 모음 Fantasy Box 에서 가장 짧은 것을 한 편.
할일: 꼴리는 대로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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