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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억시니
at 2005-11-20 04:38:27 1 comment
두억시니
아이는 무릎이 다 해진 바지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까마귀가 목이 다 쉬어 가옥가옥 짖도록 엎어진 아이 어미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풀어헤쳐진 검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때가 거뭇거뭇 낀 목줄기는 이미 말라 굳은 검은 핏덩어리가 엉겼고 몸에는 벌레가 굼실굼실 끓고 있었다. 마을을 짓밟고 간 도적떼는 이미 재물을 챙겨 멀리 달아났을 텐데도 관군은 누구 한 사람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울음을 들어줄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마치 그리하면 눈도 못 감고 죽은 제 어미가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양 섧게 울고 또 울었다. 며칠 피죽 한모금 못 먹어 눈에서는 물도 떨어지지 않는데 목구멍만 끅끅거리며 딸꾹질마냥 가여운 소리를 냈다.
" 어매야, 어매. 어매애. "
눈앞이 흐릿했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떴다. 죽은 어미의 시신이 꿈틀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시체에 들러붙어 있던 벌레 떼가 무어에 놀란 듯 썰물처럼 쏴아아 도망쳐나가는 것도 보았다. 시신의 몸 속을 비집고 새까만 것이 꿈찔꿈찔 기어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물러날 기력도 없이 그저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누렇게 뜬 피부를 찢고 나온 건 한마리 새였다. 부리가 뾰족 휘어진 이상한 새였다. 그 새는 부리를 한번 벌리고 울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이는 흙바닥을 움켜쥐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돌을 잡아 마구 던졌다. 용케 그중 하나가 새의 날갯죽지를 맞추려는 듯 강퍅스럽게 날아갔다.
그러나 순간 희멀건한 팔 하나가 그 돌을 쳐냈다. 웃는 소리가 났다. 사람의 웃음이었다. 아이는 입을 벌렸다. 새는 어느덧 사람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아니, 사람이라기에는 기이한 꼴이다. 짐승 거죽처럼 얼룩덜룩한 색의 머리털은 풀어헤치고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이 벌거벗었는데, 땅에서 한 자 쯤 떨어진 곳에 떠 있는 발은 솔개의 그것처럼 마디지고 갈라져 날카로운 발톱이 앞뒤로 비져나와 있고, 가슴 앞에 팔짱 낀 팔은 살쾡이의 그것처럼 털로 뒤덮인 채 품 속으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털 속에도 발톱이 도사리고 있음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남자의 몸은 희었다. 눈 역시 범처럼 찢어져 날이 서 있었는데 그런 낯으로 히죽 웃고 있었다.
아이는 놀랐다.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목구멍에서 벌벌 떨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 누구냐! 사람이면 이름을 대고 귀신이면 물럿거라! "
희한하고 무서운 것을 보면 이리 외치라고 어른들은 일렀다. 그러나 그 어른들은 지금 하나도 없다. 모두 죽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금수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눈을 이지러뜨렸다.
" 나? 나는 산것도 귀신도 아니지라. "
" 그, 그럼 대체 뭐냐! "
대꾸도 없이 남자는 땅으로 내려왔다. 새를 닮은 그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아이의 어미 시체 위에 몸을 숙여 들여다봤다. 혀를 찬다.
" 날 낳은 게 어떤 몸인가 했더니 이거였군. "
" 어매를 만지지 마! "
아이는 쥐어짜듯 외쳤으나 남자는 새가, 아니, 자신이 찢고 나온 시신의 복부를 유심히 볼 뿐이었다. 아이는 남자를 향해 주먹질을 했으나 기운없는 팔은 남자를 스치지도 못했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 무섭지도 않나? 감히 내 모습을 보고도 덤비다니 목숨 아깝은 줄 모르는 모양이재. "
" 시, 시끄러워! 저리 비켜! 네가 뭔지 알 게 뭐야. "
찔끔찔끔 오줌이라도 지릴 지경이었지만 아이는 버티고 서서 삿대질을 했다. 남자는 그런 아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는 양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 나는 억울하게 죽은 아낙들의 태에서 혼을 먹고 태어나는 자. 산것도 죽은것도 아닌 채 피와 비명과 쇳소리를 좋아하는 이승의 불. 돗가비라고 부르는 이도 있지. "
아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재를 타서 더러워진 얼굴이 역력히 두려운 빛을 띠었다.
" 두억시니...! "
남자는 기쁘다는 듯 허공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한바퀴 돌더니 장난삼듯 아이의 볼을 손톱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손은 빽빽하게 털로 뒤덮여 있었다.
" 잘 알고 있네그려. 그게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라. 저 죽은 여인이 원혼으로 나를 낳았재라. 세상이 티끌로 시끄럽울 때 우리가 태어나는 게지. 잡아먹을 게 많거든. "
소름이 끼쳤다. 차게 식은 땀이 이마에 맺히는 게 느껴졌다. 아이는 더듬거렸다.
" 나도... 잡아먹으려고? "
" 우짜쓰까. "
두억시니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빙글거렸다. 그러나 아이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까무룩하니 땅이 가까워졌다.
아이는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둑발이 내려 별이 끔벅거리고 있다. 며칠 내 맡아온 시체 냄새와 썩은 퀴퀴한 냄새가 여전히 코끝에 감도는 걸 보니 꿈은 아니다. 아직도 관군은 오지 않았다. 아무도 도적떼에게 짓밟힌 촌마을 따위는 상관도 없었고 또한 아무도 저 다정한 사람들의 얼굴을 한 시체들을 묻어주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의 지저분한 얼굴에 맑은 눈물이 흘렀다. 수라장은 이곳이다. 두억시니가 춤추며 나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 살아있었네. "
아이가 눈을 뜬 기척을 알아채자 흰 금수 남자는 말했다. 그자는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지도 않고 있었나보다. 아이는 잠시 누워있다가 눈물을 흘리는 채로 몸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푸르스름한 둥근 빛이 반딧불처럼 희부옇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 저건 뭐지? "
" 돗가비불. 죽어도 눈감지 못한 혼이 불이 된 게지. 나처럼 두억시니를 낳지도 못한 서럽은 한이 저리 덥지도 않은 불을 피우는지라. "
들은 적이 있다. 두억시니는 혼을 먹고 시체 냄새를 맡고 태어나 평생 인간 곁에 붙어 그 정기를 빨아먹고 산다고. 바람과 구름과 번개를 다스릴 줄 아나 그 근원이래봐야 썩은 시체인 탓에 평생 그 노릇 면치 못하는 천하디 천한 돗가비일 뿐이라고. 두억시니가 울면 죽는 사람이 나온다고도 하고, 이태에 한번씩 무덤을 파헤쳐 썩은살과 해골에 고인 물로 연명한다고도 했다. 어느 쪽이든 두억시니는 요물이다. 아이는 가물가물한 눈으로 흰 남자를 보았다.
" 나도... 잡아먹을 거야? "
" 어린애는 연하고 보들보들해서 먹기 좋지. 세상 독기를 쐬지 않은 어린것일수록 감칠맛이 난다재. "
침 도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무 몸이 지쳐서 그저 한없이 자고만 싶다. 깊이 잠들 수만 있다면 그 후에 이 두억시니가 먹어치우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 꼬마둥이 하나 먹는 거야 일도 아니재. 하모, 그런데 널 먹어치우면 또 배가 고파질 것이고 그때마다 먹잇감을 찾는 건 번거롭지. 게다가 너와 나는 같은 태에서 났으니 인연도 깊고. "
자꾸 눈앞이 가물거린다. 남자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도로 멀어진다. 두억시니는 한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잡고 그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데 한참만에 두억시니가 중얼거렸다.
" 그러니 널 살려두고 네게 붙어 기운을 빨아먹으며 지내야겠다. "
두억시니는 갈고리처럼 굽고 뾰족한 손톱으로 자신의 팔뚝을 그었다. 금세 검붉은 피가 뚝뚝 돋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아이의 뒷머리를 움켜쥔 채 두억시니는 그 피흐르는 팔뚝을 아이의 입에 억지로 갖다댔다. 비리고 뜨시고 액체가 몇 방울 역하게 아이의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만족한 듯 웃었다.
" 꼬마둥이, 말 잘 듣는군. 많이 마시고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면 너도 팔팔하게 제법 기운이 날 테니. 그리고 앞으로는 나와 함께 사는 거라. "
눈앞이 점점 더 흐려져간다. 독을 삼킨 듯 목구멍이 뜨겁고 숨이 차는데도 두억시니는 아이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 혼도 내가 먹어줄 테니 걱정할 것 없어. "
저승사자가 데려가기 전에 아이를 먼저 낚아챈 것은 두억시니의 발톱이었다.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두억시니가 물었다.
" 네 이름은 뭐냐, 꼬마둥이? "
" 나는... 마루. "
"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겠지라? 자, 너는 날 뭐라고 부를 테냐, 꼬마둥이? "
내려다보는 그 가느다란 눈도, 어깨 뒤에 펄럭이는 삼색털도 영락없는 살쾡이다. 삵이라고 부르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으나 아이의 눈은 밤하늘에 붙박혀 있었다. 멀리서 동녘이 희부옇게 터오며 아침이 오려는 듯하다. 아이의 입술이 오물거리며 움직였다.
" 볕... 볕바리.... "
그와 함께 아이는 눈을 감았다. 인간의 이름을 받은 두억시니가 큰 소리로 웃는 게 들렸다. 평생 들러붙어 목숨을 쪽쪽 빨아가겠지. 그러나 마루는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배에게 들은 적이 있다. 두억시니에게 소금을 먹이면 죽는다 했으렷다. 그러니 지금은 그를, 볕을 의지하여 이곳에서 살아나가야겠다. 두억시니가 어미의 시체를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게걸스럽게 으적으적 우둑우둑 거죽과 살을 벗겨먹고 연한 뼈를 쪽쪽 빨며 깨물어 뜯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어미가 머리칼과 손톱만 남기고 먹혀 없어지는 것을 그저 멀거니 보고 듣고 있었다. 수라장은 이곳에 있었다.
[2005. 10. 17.]
-- 뭔가 쓰고 싶어져서 생각나는 대로 끄적끄적.
-- 마지막에는 꼬마둥이 나와 함께 사는 거라우 하고 북한 사투리 버전 두억시니 군이 될 뻔했다는 비화.
-- 제대로 된 단편으로 끝맺고 싶었는데 쉽지 않군요. 옴니버스 시리즈로 나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할일: 꼴리는 대로 써 보자!




2005-11-20 05:51 #
어서 더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