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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 du 감상
at 2006-01-23 01:03:47 0 comment
하일트가 엘리자베트 뮤지컬에 낚이게 된 계기는 두 번째 트랙에 실린 곡 Wie du 였다. 이런 뮤지컬이 있다는 것은 음반점을 왔다갔다 하며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한국의 명성황후라든가 독일 퓌쎈에서 쫄딱 망한 첫 번째 루트비히 뮤지컬의 기억 때문에 "하이고 왕족 갖고 만든 뮤지컬이 퍽이나 들을만 하겠다"라는 선입견으로 영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목빼고 기다리던 삼총사 독일어판 하일라이트 씨디가 음반점에 풀려 지갑을 꺼내던 와중에 마침 이글루에서 d 님이 이 뮤지컬을 언급하셨던 게 기억이 났고 '한국에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면 한 번 들어볼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데다 결정적으로 삼총사 덕택에 익숙한 이름이 된 우베와 피아가 출연했기에 시험삼아 에쏀 하일라이트 판을 재생시켰다.
첫 트랙 프롤로그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주인공 엘리자베트는 등장하지도 않고 루케니가 시끄럽게 구는데 카스텐 레퍼 루케니의 새된 목소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영 취향이 아니다.(사실 난 십주년 기념 콘서트 음반에서 다른 루케니들을 접해보기 전까지 모든 루케니 등장 부분을 싫어했다;;) 우베 크뢰거가 죽음의 노래를 부르던 장면에서도 라이브로 들었을 때만큼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투덜거렸고.(당연하지, 그럼 뭘 바랬냐)
하지만 프롤로그가 끝나고 바로 그 다음 곡 Wie du로 이어진 후 오오, 이거 그럴싸한데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소녀 엘리자베트의 철모르고 순진하되 아직은 치명적으로 절실하지는 않은 자유에 대한 소망과 딸이 뭐라든 건성으로 대꾸하며 자기 재미에만 몰두하는 아버지 막스의 엇갈리는 동상이몽, 그런데도 두 목소리는 불협화음을 피하며 묘하게 노래를 이루어낸다. 맞아, 진짜 막스도 아마 이랬을거야. 그 후로 이어지는 곡들은 더 들을 것도 없었다. Wie du가 끝나자마자 삼총사와 엘리자베트 씨디를 챙겨 계산대로 가서 계산.
그 뒤로 줄곧 Wie du는 하일트가 엘리자베트에서 가장 즐겨듣는 곡들 중 하나다. 에쎈 하일라이트 버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 몸이 춤추실 때지만 두 번째로 좋은 곡을 꼽으라면 Wie du와 그림자, 제가 당신의 거울이라면 사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리고 쿤사마와 Levay 콤비의 개성을 보여주기에는 Wie du가 다른 곡들보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쿤사마와 Levay 콤비 특유의 "각자 딴소리 하는 인간들 모아다 곡 만들기" 신공이 절정에 다다른 건 모차르트 쪽이지만(모차르트에 익숙해지면 레 미제라블의 One day more가 지나치게 정적으로 들릴 정도다;;) 캐릭터들에게 엇갈리는 딴소리를 시키며 성격을 묘사해내는 기술은 이미 Wie du에서 낌새가 보인다.
그리고 이런 곡들을 즐겨듣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래 자체가 캐릭터간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배우들이 자신만의 해석과 연기를 펼쳐보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까지 들어본 Wie du의 엘리자베트들은 에쎈 버전의 피아와 빈 라이브 버전의 마야, 그리고 빈 초연 하일라이트 버전의 피아인데 세 엘리자베트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에쎈 버전의 피아 엘리자베트는 따분한 집안에 짜증을 느끼고 아버지처럼 마음대로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하다. 비록 오늘은 손님이 오시기 때문에 안되지만 평소의 그녀는 동생들과 뛰어다닐 수 있고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다. 이집트, 스페인, 카트만두 등 이국땅의 이름들을 읊어보지만 정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하는 진지한 소리는 아니다.
반면 마야 엘리자베트는 반항기의 청소년이다. 오늘 따분한 손님이 오기 때문에 짜증이 난 게 아니라 집구석 자체에서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어하는 것 같다. "이집트, 스페인, 혹은 카트만두"라고 외칠 때의 그녀는 "제발, 여기만 아니면 어디든 좋아, 벗어나게 해줘요"라고 절규하는 듯 하다. 피아와 마야의 차이가 특히 극명하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막스가 "가족 모임 따윈 역병만큼 질색이다"라고 말하고 엘리자베트가 "나도 그래요"라고 응답하는 대목이다. 이 대답을 하며 피아의 엘리자베트는 키득거리며 웃는다. "아빠도 그렇죠? 나도 그래요"라는 공범과도 같은 웃음이다. 반면 여기서 마야는 소리를 지른다. "아빠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구요" 이게 마야의 엘리자베트가 전달하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건 피아 쪽이다. 씨씨가 빈의 궁정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괴로워했던 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고향집에서 살다 엄격한 빈으로 옮겨갔기 때문인데 마야의 엘리자베트를 듣고 있자면 마치 바이에른 고향집도 이미 씨씨의 감옥인 것 같아 고향집과 빈 사이의 차이가 별로 안느껴지거든.
한편 에쎈 버전보다 대략 구 년 전인 빈 초연 하일라이트 버전에서 피아의 노래를 들었을 때의 소감은 이랬다.
세상에 피아도 이렇게 노래를 못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빈 초연 동영상의 우베더러 흑역사 흑역사 하지 마시라. 빈 초연 당시에도 우베의 죽음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빈 초연 하일라이트 버전이나 에쎈 버전이나 우베의 죽음이 부르는 노래들은 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해석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그러나 피아의 엘리자베트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빈 초연 하일라이트 음반 Wie du에서의 엘리자베트는 소녀가 아니라 벌써 아들 잃은 나이 먹은 여자 같다. 이미 자기 운명에 체념해버린 것처럼 하나도 힘이 없다. 죽음이 엘리자베트를 보고 반하는 게 아니라 엘리자베트 쪽에서 죽을 때만 기다리는 것 같다. 노래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과 표현력의 문제다. 피아의 목청이야 빈 초연 때나 에쎈 때나 같은 목청이었을테니까.
반면 빈 초연 버전 막스는 정녕 걸물이다.(막스 역 가수들 이름은 못 외운다;;) 딸이야 다 죽어가든 말든 자기 혼자 즐거운 그 경박한 목소리라니. 엘리자베트들의 해석이 서로 다르듯 막스들도 서로 다른데 에쎈이나 빈 라이브 버전의 막스들은 별로 인상에 남지 않는 반면 빈 초연 하일라이트 버전의 무책임한 아빠 막스는 참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십주년 기념 콘서트 때 Wie du가 빠져버리고 Wie du의 선율을 차용한 다른 노래가 들어가버린 건 안타까웠다. 마이케의 엘리자베트가 이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듣고 싶었는데 말이지. 이 곡의 생명력은 막스와 엘리자베트 사이의 엇갈리는 긴장에서 빚어지는 거라서 가사가 변형되고 막스가 빠지면 설사 선율은 그대로라고 해도 전혀 다른 노래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글루스 가든 - 비영어권 뮤지컬에 버닝해보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