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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원숭이] 거미원숭이
at 2006-10-31 04:44:37 0 comment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56분. 방금 57분이 되었다.
한국에는 여든 일곱 명의 거미원숭이들이 살고 있는것으로 집계되었지만, 4339년 7월 21일 00시 34분을 기점으로 어떠한 거미원숭이도 생존의 징후를 표출하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잿빛 거미고양이 - 거미원숭이는 원숭이이지만, 거미원숭이에는 거미고양이도 있고, 거미강아지도 있다. 때로는 거미크로커다일도 발견된다고 한다 - 의 마지막 파아란 일기가 될지도 모른다.
4339년 7월 21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 날 이후로, 거미원숭이는 우주에서 사라진 것 일지도. 그러나 나는 좌변기에 남아있는 앞사람의 체온처럼 미적지근한, 거미원숭이들의 생존을 느낀다. 물론, 거미원숭이들의 생존이 씁쓸한 찝찝함처럼 느껴진다는 건 아니다. 그냥, 미적지근한, 흐지부지한, 그러나 아직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인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꽃이 피는것처럼.
일초 일초가 공간에서 소리없이 작렬하고, 잔향은 그 공간을 묵직하게 채운다.
산다는 것이 그랬다.
하루 하루 내 생명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뒤꿈치에 수은같은 광채를 매달고,
현재를 팔아 미래를 구하며, 똥을 싸고 밥을 먹는다.
앞사람의 체온이 남아있는 변기에 앉아서.
대동맥이 파열하도록 힘을 주고, 갈색의 우중충한 분비물을 뿜어내고 - 가끔 백두산같은 소리도 내며
그렇게 먹기 위해 배를 비우고, 빈 배를 채우고, 또 먹기 위해 변기에 앉고, 싸기 위해 밥상머리에 앉는다.
반나절 한나절을, 구리같은 내 여덟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돈으로 열 여섯 시간을 사고, 또 돈이 떨어져 여덟 시간을 파는,
어쩌면 이건 남는 장사다.
지루하고, 토나오고, 짜증나는 여덟 시간과 포근한 열 여섯 시간을 바꿀 수 있는것.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열 여섯 시간이 정말로 그렇게 따뜻했는지.
내 열 여섯 시간 중 여섯 시간은 잠을 잤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지루하다.
열 시간이 남았다.
그 중 세 시간은 밥을 먹었다. 싸기위해 먹는건 지루하다.
일곱 시간이 남았다.
그 중 두 시간은 이동했다. 2호선에 거미원숭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다른 종족과 몸을 부대끼는건 짜증난다.
다섯 시간이 남았다.
이미 적자다. 내가 지루하게 보낸 시간은 열 아홉 시간인데,
그 보상으로 얻은건 다섯 시간.
이미 손해다.
적자다.
산다는건 이런건가.
김국환씨는 수지맞는 장사랬는데.
거미고양이는 일한 시간만으로도 세 시간 무게의 적자를 봤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금 세 시간이면 얼마나 무거울까.
드디어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그거다.
거미고양이가, 아니 거미원숭이들이, 무엇보다 맑은 눈동자를 가진 거미원숭이들이,
잃어버린 세 시간 무게의 금덩어리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하고 있음이.
회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인간의 삶이,
세 시간씩 세 시간씩 하루 하루 쌓여가는 비중 19.3의 싯누런 덩어리들의 무게로 거미원숭이들을 짓누르기 때문이라고.
숨을 쉬기 힘든건 그것 때문이라고.
지금 이 시간- 새벽 4시 27분. 방금 28분이 되었다.
삼십 일 분의 무게를 가진 이 시간에 생각 해 본다.
그래. 거미원숭이는, 사람의 삶이 아니라 거미원숭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MIG(Men in Gray)가 쫒아와서 당신의 시간을 저축하라고,
만기 환급형 다보장 시간 보험이라고, 국민연금 관리공단처럼 현관을 틀어막고 서서
시간을 내놓으라고, 갹출제라 니가 안 내놓으면 다 죽는다고, 발로 문을 꽝꽝 차더라도.
거미원숭이는 거미원숭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거미고양이든, 거미강아지든, 거미크로커다일이든, 거미한치든.
거미원숭이의 삶은,
삶에서 거미원숭이를 찾아서 거미원숭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미원숭이의 공간에 데려오는 것.
거미원숭이의 머리로 글을 써서 거미원숭이의 꼬리로 글을 끝내는 것.
거미원숭이의 밥을 먹고, 거미원숭이의 잠을 자고, 거미원숭이의 숨을 쉬는 것.
그런게 아닐까.
그리하여, 오늘도 거미원숭이과의 거미고양이가 거미한치를 뜯으며 거미맥주를 먹었다.
이제껏 거미원숭이처럼 살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지금껏 스스로 인간을 흉내냄을 원망하며.
여지껏 인간에 갖혀있음을 조소하며.
또한 거미원숭이가 30분만에 쓰여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에는 여든 일곱 명의 거미원숭이들이 살고 있는것으로 집계되었지만, 4339년 7월 21일 00시 34분을 기점으로 어떠한 거미원숭이도 생존의 징후를 표출하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잿빛 거미고양이 - 거미원숭이는 원숭이이지만, 거미원숭이에는 거미고양이도 있고, 거미강아지도 있다. 때로는 거미크로커다일도 발견된다고 한다 - 의 마지막 파아란 일기가 될지도 모른다.
4339년 7월 21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 날 이후로, 거미원숭이는 우주에서 사라진 것 일지도. 그러나 나는 좌변기에 남아있는 앞사람의 체온처럼 미적지근한, 거미원숭이들의 생존을 느낀다. 물론, 거미원숭이들의 생존이 씁쓸한 찝찝함처럼 느껴진다는 건 아니다. 그냥, 미적지근한, 흐지부지한, 그러나 아직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태인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꽃이 피는것처럼.
일초 일초가 공간에서 소리없이 작렬하고, 잔향은 그 공간을 묵직하게 채운다.
산다는 것이 그랬다.
하루 하루 내 생명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뒤꿈치에 수은같은 광채를 매달고,
현재를 팔아 미래를 구하며, 똥을 싸고 밥을 먹는다.
앞사람의 체온이 남아있는 변기에 앉아서.
대동맥이 파열하도록 힘을 주고, 갈색의 우중충한 분비물을 뿜어내고 - 가끔 백두산같은 소리도 내며
그렇게 먹기 위해 배를 비우고, 빈 배를 채우고, 또 먹기 위해 변기에 앉고, 싸기 위해 밥상머리에 앉는다.
반나절 한나절을, 구리같은 내 여덟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돈으로 열 여섯 시간을 사고, 또 돈이 떨어져 여덟 시간을 파는,
어쩌면 이건 남는 장사다.
지루하고, 토나오고, 짜증나는 여덟 시간과 포근한 열 여섯 시간을 바꿀 수 있는것.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열 여섯 시간이 정말로 그렇게 따뜻했는지.
내 열 여섯 시간 중 여섯 시간은 잠을 잤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지루하다.
열 시간이 남았다.
그 중 세 시간은 밥을 먹었다. 싸기위해 먹는건 지루하다.
일곱 시간이 남았다.
그 중 두 시간은 이동했다. 2호선에 거미원숭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다른 종족과 몸을 부대끼는건 짜증난다.
다섯 시간이 남았다.
이미 적자다. 내가 지루하게 보낸 시간은 열 아홉 시간인데,
그 보상으로 얻은건 다섯 시간.
이미 손해다.
적자다.
산다는건 이런건가.
김국환씨는 수지맞는 장사랬는데.
거미고양이는 일한 시간만으로도 세 시간 무게의 적자를 봤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금 세 시간이면 얼마나 무거울까.
드디어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그거다.
거미고양이가, 아니 거미원숭이들이, 무엇보다 맑은 눈동자를 가진 거미원숭이들이,
잃어버린 세 시간 무게의 금덩어리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하고 있음이.
회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인간의 삶이,
세 시간씩 세 시간씩 하루 하루 쌓여가는 비중 19.3의 싯누런 덩어리들의 무게로 거미원숭이들을 짓누르기 때문이라고.
숨을 쉬기 힘든건 그것 때문이라고.
지금 이 시간- 새벽 4시 27분. 방금 28분이 되었다.
삼십 일 분의 무게를 가진 이 시간에 생각 해 본다.
그래. 거미원숭이는, 사람의 삶이 아니라 거미원숭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MIG(Men in Gray)가 쫒아와서 당신의 시간을 저축하라고,
만기 환급형 다보장 시간 보험이라고, 국민연금 관리공단처럼 현관을 틀어막고 서서
시간을 내놓으라고, 갹출제라 니가 안 내놓으면 다 죽는다고, 발로 문을 꽝꽝 차더라도.
거미원숭이는 거미원숭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거미고양이든, 거미강아지든, 거미크로커다일이든, 거미한치든.
거미원숭이의 삶은,
삶에서 거미원숭이를 찾아서 거미원숭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미원숭이의 공간에 데려오는 것.
거미원숭이의 머리로 글을 써서 거미원숭이의 꼬리로 글을 끝내는 것.
거미원숭이의 밥을 먹고, 거미원숭이의 잠을 자고, 거미원숭이의 숨을 쉬는 것.
그런게 아닐까.
그리하여, 오늘도 거미원숭이과의 거미고양이가 거미한치를 뜯으며 거미맥주를 먹었다.
이제껏 거미원숭이처럼 살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지금껏 스스로 인간을 흉내냄을 원망하며.
여지껏 인간에 갖혀있음을 조소하며.
또한 거미원숭이가 30분만에 쓰여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며.
회원님이 남기신 덧글 하나가 가든에 꽃을 피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