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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at 2005-09-14 00:05:59 0 comment
내 동생.
어렸을 땐 나름대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 귀여운 짓 가득에
어딜 가나 사랑 독차지였다.
둘리처럼 터질 것 처럼 탱탱한 볼이란.
항상 사탕 먹고 있는 것 같을 정도로.
나랑 내 동생은 3살 터울.
그래서일까 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항상 모든
혜택을 누리곤 했다.
옷이든 뭐든 간에 나를 한 번 거치고..
동생에게로 넘어갔고
하다 못해 어떤 기회의 우선권조차 항상 내게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
서러워 할 만도 한데도
동생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항상 날 형 형 부르며
쫄랑쫄랑 잘도 따라 다녔다.
비록 어렸지만
그 때 난 참 영악했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한 일도,
내가 저지른 일도,항상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형이라고 믿고 따라다니는
어린 동생에게 죄다
떠넘기곤 했다.
..그래서 항상
혼나는 것도 동생이었고.
그리고..엄마에게 혼나고 나서
울면서 항상
달려오는 곳은..
바로 나였다.
6살이 되어
난 동네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나마 항상 붙어 다니던 형이
유치원에 가 버리고 나니
3살짜리 동생은 항상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동네 골목 친구들도
항상 형 뒤를 따라다니면서
어울렸었기에..
형이 없는 혼자서
갈 용기는 나지 않았었나 보다.
이런 놈도 형이라고..
참 지독히도 믿고 따랐다.
그 유치원에선 매일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유치원 원복 입고 노란 모자 쓰고
아침에 집 앞 퍼플러 앞에 서 있으면
셔틀버스가 와서 서고
날 태워가곤 했다.
항상 그렇게 시작하던 아침.
골목 어귀를 벗어나
어디론가 새로운 세상을
항상 맛보는 듯한 기분에
난 잠시 동생을
잊고 있었었던 것 같다.
항상 같이 놀아주고..
대신 혼나주던 동생.
항상 나로 인해
알게 모르게 기회를 잃던 동생.
어느 날 아침엔가
재잘재잘 떠들면서
유치원 선생님한테 인사하며
시끄럽게 차에 올라타는 나를
집 앞 문에 반쯤 몸을 숨긴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던..
키 조그마한 3살짜리
동생을 보게 된 날.
곧 버스가 출발했고
곧 시야에서
사라진 동생의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뭔가 모를 이상한 기분의
동생 얼굴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알 수 없는
아릿함도 함께
커져만 갔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유치원 모자랑 가방을
벗어 던지고 방에
들어가 TV를 켜려는데
갑자기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동생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 3살짜리 가분수형
신체구조로
열심히 뒤뚱거리면서.
그냥 무관심한채
TV채널 이리 저리 돌리다
딱히 맘에 맞는 채널을
찾지 못한 나.
동생이나 불러서
놀까 하는 생각에
그 때서야 동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동생을 찾았다 ..
라고 느껴지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이러했다.
아직까지도 손으로 그리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는..
이상하리만큼 영화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
내가 항상 서 있던
포플러 아래.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노을 아래서.
내 모자와 내 가방을
힘겹게 조그만 몸에 두른 내 동생이..
거기 그렇게 서서
아침에만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커서 바닥에
가방은 끌려 있고.
나름대로 뭔가 진지한
자세로 서 있지만
왠지 슬픈 조그마한 뒷모습.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그런 동생을 발견했다.
엄마에겐
그저 3살짜리의
철없는 행동으로만
보였나 보다.
엄만,
웃으면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려 했고 그 순간
얌전히 서 있던 동생은 막 발버둥을 치며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하신 엄마.
그리곤 동생은 다시
그 자리에 꿋꿋이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억지로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깨가 들썩들썩하는게
우는 것 같다.
.....그래도
꿋꿋하게 서 있다.
오지 않을 버스를
계속 기다리며..
6살때의 기억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모습..
동생의 조그만 등 뒤로
노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엄마는 동생 바로 뒤에서.
나는 집 안에서.
그리고 동생은
포플러 아래에서.
그렇게 모든 게
정지해 있다.
다음 날.
어김없이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옆에서 그저 좋아
싱글싱글거리고 있는
3살짜리 내 동생이
내 손 꼭 잡고 있다는 것..
이상하게도 꽉 잡고 있다.
행여나 내가 놓고
도망이라도 칠까봐
그러는지..
항상 함께 하던3살 터울의 형제는,
그렇게 형의 유치원 입학으로
잠시 이별을 했다가..
단 며칠만에
다시 함께 하게 된다.
1986. 여름의 어느 날...형제는 그렇게 자라난다.
EPILOGUE -
그 유치원은 최연소 제한 연령이 4살이었다.
따라서 3살인 내 동생은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유아원이 아니라 유치원이라며.
.하지만 울 엄마도 동생의 그 이상하게 길던 그림자에
뭔가 느끼신게 있었는지..반사정을 해서 결국 동생을 집어 넣으시는 기염을 토하신다.
(두렵다, 울 어무이. -_-;;)
그리고 포플러 아래에서 어두워 질때까지 동생은 울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버스를 기다렸다고 한다.-_-;;
이 똥고집..아직도 여전하다.-_-;;
* 2000년 나우누리에 끄적였던 글.
지겹게도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구나. :P
사진은 첫 등원(?) 역사적 순간을 쟁취해낸
동생의 위풍당당한 승리의 설레는 웃음.
그런 동생을 무사히끌고데리고 가야 한다는
나름 무거운 의무감에 살짝 긴장하고 있는 나.
어렸을 땐 나름대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 귀여운 짓 가득에
어딜 가나 사랑 독차지였다.
둘리처럼 터질 것 처럼 탱탱한 볼이란.
항상 사탕 먹고 있는 것 같을 정도로.
나랑 내 동생은 3살 터울.
그래서일까 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항상 모든
혜택을 누리곤 했다.
옷이든 뭐든 간에 나를 한 번 거치고..
동생에게로 넘어갔고
하다 못해 어떤 기회의 우선권조차 항상 내게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
서러워 할 만도 한데도
동생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항상 날 형 형 부르며
쫄랑쫄랑 잘도 따라 다녔다.
비록 어렸지만
그 때 난 참 영악했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한 일도,
내가 저지른 일도,항상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형이라고 믿고 따라다니는
어린 동생에게 죄다
떠넘기곤 했다.
..그래서 항상
혼나는 것도 동생이었고.
그리고..엄마에게 혼나고 나서
울면서 항상
달려오는 곳은..
바로 나였다.
6살이 되어
난 동네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나마 항상 붙어 다니던 형이
유치원에 가 버리고 나니
3살짜리 동생은 항상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동네 골목 친구들도
항상 형 뒤를 따라다니면서
어울렸었기에..
형이 없는 혼자서
갈 용기는 나지 않았었나 보다.
이런 놈도 형이라고..
참 지독히도 믿고 따랐다.
그 유치원에선 매일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유치원 원복 입고 노란 모자 쓰고
아침에 집 앞 퍼플러 앞에 서 있으면
셔틀버스가 와서 서고
날 태워가곤 했다.
항상 그렇게 시작하던 아침.
골목 어귀를 벗어나
어디론가 새로운 세상을
항상 맛보는 듯한 기분에
난 잠시 동생을
잊고 있었었던 것 같다.
항상 같이 놀아주고..
대신 혼나주던 동생.
항상 나로 인해
알게 모르게 기회를 잃던 동생.
어느 날 아침엔가
재잘재잘 떠들면서
유치원 선생님한테 인사하며
시끄럽게 차에 올라타는 나를
집 앞 문에 반쯤 몸을 숨긴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던..
키 조그마한 3살짜리
동생을 보게 된 날.
곧 버스가 출발했고
곧 시야에서
사라진 동생의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뭔가 모를 이상한 기분의
동생 얼굴은 계속 커져만 갔다.
알 수 없는
아릿함도 함께
커져만 갔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서
유치원 모자랑 가방을
벗어 던지고 방에
들어가 TV를 켜려는데
갑자기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동생이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 3살짜리 가분수형
신체구조로
열심히 뒤뚱거리면서.
그냥 무관심한채
TV채널 이리 저리 돌리다
딱히 맘에 맞는 채널을
찾지 못한 나.
동생이나 불러서
놀까 하는 생각에
그 때서야 동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동생을 찾았다 ..
라고 느껴지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이러했다.
아직까지도 손으로 그리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는..
이상하리만큼 영화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
내가 항상 서 있던
포플러 아래.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노을 아래서.
내 모자와 내 가방을
힘겹게 조그만 몸에 두른 내 동생이..
거기 그렇게 서서
아침에만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커서 바닥에
가방은 끌려 있고.
나름대로 뭔가 진지한
자세로 서 있지만
왠지 슬픈 조그마한 뒷모습.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그런 동생을 발견했다.
엄마에겐
그저 3살짜리의
철없는 행동으로만
보였나 보다.
엄만,
웃으면서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려 했고 그 순간
얌전히 서 있던 동생은 막 발버둥을 치며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황하신 엄마.
그리곤 동생은 다시
그 자리에 꿋꿋이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억지로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깨가 들썩들썩하는게
우는 것 같다.
.....그래도
꿋꿋하게 서 있다.
오지 않을 버스를
계속 기다리며..
6살때의 기억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모습..
동생의 조그만 등 뒤로
노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엄마는 동생 바로 뒤에서.
나는 집 안에서.
그리고 동생은
포플러 아래에서.
그렇게 모든 게
정지해 있다.
다음 날.
어김없이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여느 때와 다름 없이.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옆에서 그저 좋아
싱글싱글거리고 있는
3살짜리 내 동생이
내 손 꼭 잡고 있다는 것..
이상하게도 꽉 잡고 있다.
행여나 내가 놓고
도망이라도 칠까봐
그러는지..
항상 함께 하던3살 터울의 형제는,
그렇게 형의 유치원 입학으로
잠시 이별을 했다가..
단 며칠만에
다시 함께 하게 된다.
1986. 여름의 어느 날...형제는 그렇게 자라난다.
EPILOGUE -
그 유치원은 최연소 제한 연령이 4살이었다.
따라서 3살인 내 동생은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유아원이 아니라 유치원이라며.
.하지만 울 엄마도 동생의 그 이상하게 길던 그림자에
뭔가 느끼신게 있었는지..반사정을 해서 결국 동생을 집어 넣으시는 기염을 토하신다.
(두렵다, 울 어무이. -_-;;)
그리고 포플러 아래에서 어두워 질때까지 동생은 울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버스를 기다렸다고 한다.-_-;;
이 똥고집..아직도 여전하다.-_-;;
* 2000년 나우누리에 끄적였던 글.
지겹게도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구나. :P
사진은 첫 등원(?) 역사적 순간을 쟁취해낸
동생의 위풍당당한 승리의 설레는 웃음.
그런 동생을 무사히
나름 무거운 의무감에 살짝 긴장하고 있는 나.

할일: 이 사진엔 이런 사연이..
회원님이 남기신 덧글 하나가 가든에 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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