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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타다오의 불운 - 쓰게 요시하루
at 2009-01-13 08:09:00 1 comment

쓰게 타다오의 불운(つげ忠男の不運)
글 : 쓰게 요시하루(つげ義春)
1988年 2月, 北冬書房刊『つげ忠男読本』에 전문 게재
1988年 2月, 北冬書房刊『つげ忠男読本』에 전문 게재
쇼분샤(晶文社) 발행 쓰게 타다오 작품집『(콩고물 가게의 할머니)きなこ屋のばあさん』에 내가 해설을 썼을 때, 쓰게 타다오의 데뷔작이 어떤 작품이었는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쓰게 타다오를 데뷔시켰던 것은 나였기 때문에 당연히 첫번째 작품이나 시작등을 보고, 그 재능을 인정해서 출판사에 소개했을 텐데, 30년전이었기 때문에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당시 오오츠카 (大塚)에 살고 있던 곳에 원고를 보여주기 위해 타다오가 찾아왔던 것 같은데, 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어떤 조각상)ある彫像」이라는 작품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최초의 작품이었던 것 같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콩고물 가게의 할머니)きなこ屋のばあさん』가 나오자 마자 『(바쿠)ばく』에서 쓰게 타다오특집호를 펴냈다. 거기에 타카노 슌조( 高野慎三)씨가 작성한 <쓰게 타다오 작품 리스트>가 게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면 타다오의 데뷔작은「(회전권총)回転拳銃」소화34년1) 6월(미로10호(迷路十号))로 되어 있었다.「(어떤 조각상)ある彫像」은 7번째 작품이었다. 나는 타다오의 작품은 더 반응이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재능을 인정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어쩐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타카노씨의 리스트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데뷔작을 구지 확인할 필요 역시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 글을 쓰게 되면서, 다시 타다오에 관한 화제를 찾기 위해서, 나는 사오일 대본시대를 회상하고 있었다. 타다오의 작품 리스트를 반복해서 본다던지, 나 스스로 추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을까 해서, 내 작품 리스트도 꺼내서 타다오의 것과 조합을 해 본다던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회전권총)回転拳銃」이 게재되었던『迷路』10호에, 나는「(수갑)手錠」이라는 작품을 싣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잊혀졌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서, 타다오의 첫 원고를 보았을 때를 간신히 떠올렸다.
『迷路』10호에 내가「(수갑)手錠」을 그렸을 무렵은, 스미다구(墨田区) 긴시쵸(錦糸町)에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 어느날 타다오가 나타났다. 그 하숙에 내가 넘어 온 것은 소화32년. 타다오가 찾아 온 것은 2년이 경과한 34년1)의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타다오는 만화를 그려왔다면서, 신문지에 싸갖고 온 원고를 꺼내 보였다. 나는 조금 놀랐다. 어느새 타다오가 만화를 그리게 되었단 말인가, 우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던가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에 머물던 무렵에, 때때로 먹선 작업(黒ベタ)을 돕게 하고 있었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 등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았고, 만화 낙서같은 것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집을 나오던 시기에 타다오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혈액 은행에 근무하게 되어, 회사에 다니면서 만화를 그렸으리라. 나는 그 원고를, 즉 타다오의 처녀작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꽤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현재시점에서 보면 그림은 서투른 편이지만, 스토리에 심리적 음영이 있어서, 활극물뿐이었던 당시의 대본 만화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원고는 반정도는 펜작업이 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연필 초안인 채로였다. 마무리를 하기 전에 한 번 나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온 것이라 생각되지만, 언제나 과묵했던 타다오는, 만화가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것도 그려보았지만서도...(こんなもの描いてみたんだけど・・・・・・)" 라고,
약간 겁먹고 있는 모습. 내심은 만화가가 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도 그런 내색은 보이지 않는다. 마침 그때 나는『迷路』의 마감이 다가오고, 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원고 나에게 주지 않겠어?(この原稿オレにくれないか)"
나는 뭔가 물건을 넘겨받는 기분으로 말했다.
"좋아, 이런 거라도 괜찮다면(いいよ、こんなんでいいのかな)"
타다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 그 원고가 『迷路』10호에 내 이름으로 발표한「(수갑)手錠」이었다. 절반정도 펜작업이 되어 있었던 나머지 부분은, 타다오의 초안을 그대로 내가 펜작업을 했을 뿐이다. 타다오는 급히 다른 작품에 착수했고, 그것이 바로「(회전권총)回転拳銃」이었다.
「(회전권총)回転拳銃」은 별책부록같은, 본지의 절반크기의 8페이지로, 실질적으로는 4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페이지 수도 제한되었고 마감 제한도 있었기 때문에 별로 권할만하지는 않았다. 기념해야 할 데뷔작으로서는 조금 품격이 떨어졌다.「(수갑)手錠」이 타다오의 첫 작품인 것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보통 그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타카노씨가 손을 댔던 리스트에 실수가 없고「(회전권총)回転拳銃」이전에 작품이 없다고 하면, 그 이후의 경위는 아마 내 추억대로일 것이다. 타다오 자신이 그것을 잊고 있을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확실히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나를 걱정해서인지 지금까지 입에 올린 적도 없고 드러낸 적도 없는 타다오는, 아마도 "아, 그런 일이 있었나? 벌써 잊었어.(う~ん、そんなことあったかなァ、もう忘れたよ)", 라고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오오츠카로 옮긴 것은, K2)라고 하는 여자와 동거하기 위해서였는데, 암연구소 뒤편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10년전에 아내가 암연구소에 입원했을 때,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데리고, 오오츠카 역에서 암연구소까지 쓸쓸한 기분으로 몇 번인가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암연구소 앞 조금 떨어진 골목 안의 아파트에 1.5평(다다미3장 정도)의 아파트를 빌려, 타다오와 함께 만화를 그렸던 것이다.
암연구소 뒤쪽의 방으로부터 도보로 10분 정도, 그 1.5평의 작업실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떤 K녀와 별거를 하기 위해 빌린 것으로, 그 당시의 일을 그린 것이「(치코)チーコ」였다. 별거를 했다고 해도 K녀는 매일같이 들이닥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본가가 빈집같이 되어서 별거의 의미는 없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질금질금해서, 이 K녀를 시작으로 언제나 여자한테 괴롭힘을 당해 왔다. 상당히 여자운이 없는 편이다.
가난 타계를 위해 타다오와 팀을 이뤄 양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이용했던 그 1.5평의 방에서 타다오가 친가(카츠시카구 아오토(葛飾区青戸)에 다녀오게 된 것은, 35년의 여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향의 햇빛이 비치는 창에는 커텐도 없고, 직사광선을 차단하기 위해 창은 꼭 닫은 데다가 선풍기도 없고, 차 한잔 마시지 않고 (그리고보면 타다오는 도시락을 싸왔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위에 나른해지면서도, 점잖은 타다오는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와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 나는 K녀와의 사이가 험악해 졌고, 타다오와는 농담을 나눌 수 없는 정도로 초췌해졌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일은 어느정도 기억하고 있어도, 그 때 타다오의 일은 신경써 줄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타다오는 나와의 공동제작에 기대를 걸고 회사도 그만 둔 상태였다. 나로서는 스토리 작업도 타다오와 함께라면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런 상담조차 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K녀와의 말썽으로 혼란스러워서, 스토리 만들기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우니 일도 하지 못한 채 "내일은 오지 않아도 좋아(明日はこなくていいよ)" 라고, 타다오를 쉬게 했다. 이삼일 후에 또 다시 "내일은 오지 않아도 좋아". 사오일 있다가는 "2, 3일정도 쉬어도 좋아" 라고 하는 그런 상태였다.
타다오와의 작업이 단편 한 작품과『(닌자비첩)忍者秘帖』전4권중 3권까지였다. 나의 유일한 대장편인『(닌자비첩)忍者秘帖』이 그렇게 하잘것 없는 작품이 된 것은, 타다오에게 줄 급료 지불에 쫓겨서 차분히 구상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었고, 하루에 몇 장을 그리고 나면 다음날 그릴 분량의 스토리를 생각하는 상태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그릴 스토리가 없으면 타다오를 쉬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쉬게 하고만 있으니 둘 다 수입이 들어오지 않았다. 3개월 정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 시기 타다오는, 나가이 카쯔이치(長井勝一)씨의 산요샤(三洋社)에서 단편 2작품3)을 발표하고 있다. 그것은 나와 헤어진 후 이후의 작품이었을까? 내가 나가이씨를 소개한 기억도 없기 때문에, 혼자서 팔려 간 것일까? 작품 리스트를 보면, 35년의 그 두 작품을 끝으로 타다오의 대본 시대는 끝나 있다. 어디에도 원고가 팔리지 않고 불러주는 데도 없어서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타다오의 원고를 들고 찾아 온 적도 있지만, 머지않아 결국 타다오는 원래의 회사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나도 K녀와 헤어져 긴시쵸(錦糸町)의 원래의 하숙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5, 6년이 지나고 나는 쵸시(調布)로 옮겼다. 그 5, 6년동안 타다오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음악이나 문학을 하고 있었던 것은 그 시기였을까. 쵸시에 찾아 왔던 것도 한번 정도 였다. 이제는 만화를 포기했는지 다시 시작하고 싶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43년4)에 사쿠라이 쇼우이치(桜井昌一)씨의 東考社에서 「(벌레)むし」5)를 갑자기 그리게 되었다. 나에게 상담했었다면『(가로)ガロ』를 소개했을 텐데 왜 東考社에 투고한 것일까. 아마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형을 신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むし」는 아직 신출내기였던 이케가미 료이치(池上遼一)의 단행본『(하얀 액체)白い液体』권말에 부록으로 실려 표지도 이름도 실리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데뷔작을 나에게 횡령당하고 재기하면서 또 다시 불운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나『ガロ』에「(언덕 위의 빈센트・반・고흐)丘の上でビンセント・ヴァン・ゴッホは」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컴백한 것은 당시 ガロ 편집장을 하고 있던 타카노 슌조(高野慎三)씨의 노력때문이었다. 나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44년부터『ガロ』에 정력적으로 그려낸 타다오와 교대하는 것 처럼 휴필한 나는, 그 시기 신주쿠의 十二社에서 1년간 살고 있었다. 거기에 타다오가 찾아 온 것도 한번 뿐이었다. 그 때도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생활에 관한 것이나 서로에 관한 것에 일절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편이었기에, 그 즈음 타다오에게 아기가 생긴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떤 변화가 생겨도 서로 보고하지 못했던 것은 상대방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겠지만, 타다오에게 있어서 신뢰할 수 없는 형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다오가 만화만으로 생활이 가능해 진 것은『ガロ』에서의 3년간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47년의 여름이었던가 가을이었던가, 『ガロ』의 원고료가 체불되었다면서 나에게 돈을 빌려간 적이 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은 것은, 철물점 직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고료 지불이 조금 지연된 것만으로도 바로 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집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깨죽깨죽 쓰고 있자면 끝이 없지만, 나는 타다오에게 뭔가 폐만 끼쳤지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타다오의 만화가로서의 경력이 불운했던 것은, 지금에서 생각하면 데뷔 때 나로 인해서 결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다오에 대한 것을 쓸려고 해도 거의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도, 내성적이고 남을 돌아보지 않는 나의 편협한 성격때문인 것이다. 그것이 타다오에게까지 파급되었다면, 내 존재 자체가 쓰게 타다오의 불운의 원흉이 되었다고 생각되어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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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注 1) 1959년. 당시 월간 「(미로)迷路」의 편집장은 쓰게 요시하루 본인이었다.
譯注 2) 코케시(コケシ)라 불리던 여성. 긴시쵸(錦糸町)역 부근의 찻집 부르봉(ブルボン)에서 만난 여성이다.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상황이었는데, 그녀의 저금으로 오오츠카(大塚)의 아파트로 이사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수입이 없으니 생활고는 여전했다. 동거 2년째에 그녀의 저금도 떨어지고 집세가 1개월 밀리더니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되고 동거생활도 그렇게 어이없게도 끝이 나게 된다.
譯注 3)「殺し屋志願」(黒い影・別冊 1960年 7月), 「近藤勇の立場」(忍風9 1960年 9月)
譯注 4) 1968년.
譯注 5)「むし」(白い液体, 1968年 5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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