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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요시하루・옛날 옛적에.... - 쓰게 타다오
at 2009-01-12 22:39:00 1 comment
쓰게 타다오(つげ忠男)
1992년 文化の森刊『つげ義春初期単行本集』전문 게재
1992년 文化の森刊『つげ義春初期単行本集』전문 게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남는 방 하나가 있다.평상시에는 웬만해선 들여다 보지 않지만, 가끔 집에 나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가볼 때가 있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6첩정도의 서양식방(洋間)으로, 가구라고 해봐야, 북쪽 벽에 오래된 목제 책상이 들어가 있을 뿐인, 거의 텅 비어 있는 곳이다. 카페트도 깔지 않은 널마루 구석구석을 한 눈에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방이라는 것은, 왠지 이사가 버린 뒷모습 같아서 조금 쓸쓸하다. 달랑 하나 있는 책상은 쓰지않고 방치해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두근두근 가슴 한 쪽이 아련하다. 그립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고, 그 외에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매정하게 외면한다.
하지만 한 발짝 방을 나와 버리면 그건 금새 잊혀져 버리고 말지만...... 책상은 30년전, 형이 와사기쇼보(若木書房)1)에서 만화가로서 스타트를 끊었던 직후, 일부러 목수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원고료가 들어오면 꼭 그렇게 하려던 계획이었음에 틀림없다. 확실히 디자인은 형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다다미에 직접 앉는 작은 책상에서, 의자가 달린 널찍한 특별주문 책상으로.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맏형과 함께 일하러 나가서 가계를 도우면서도, 부지런히 만화를 그리고 있던 형이 마침내 프로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 증거였다.
단행본 1권 128페이지를 그려서 3만엔.
소화30년2)전후, 그 근방 작은 공장에서 중졸자의 초임은 기껏해야 3천엔이나 4천엔이던 무렵의 3만엔이다. 굉장한 수입을 형은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걸 가장 기뻐했던 것은 실은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계산해도, 매달은 무리라고 해도, 2개월에 한편씩만 완성해도 매달 1만5천엔이다.
"장남의 급료와 합하면, 우리집도 이걸로 안심이다."
어머니는 안도감을 절실히 느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형은 이후 거의 그 페이스로 순조롭게 책을 내가게 된다.
"형 책상에는 손대지마! 중요한 장사 도구니까말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가 2학년이던가 하던 무렵이었는데, 어머니는 종종 그렇게 말하셨다. 말하실 것도 없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반대로 어머니의 그 정도의 인식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형에게 있어서 책상은 단순한 장사 도구 이상의, 좀 더 신성한 굉장한 물건일 터였고, 나는 제법 중학생다운 철든 생각을, 그에 대해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형이 없을 때는 마음껏 점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별주문한 책상을 형이 사용한 것은 불과 1, 2년에 지나지 않아, 뒤에는 간단히 내 것이 되어 버렸다.
의부와의 사이가 안좋아져서, 형은 집을 나가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병약하고 일정학 직업을 갖지 못했던 두번째 남편이, 이것저것 알 수 없는 가내수공업으로 얻는 수입보다는 차남의 원고료에 생활을 의지하고 있던 어머니로서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이 집을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어디까지나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가난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러한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런대로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어쩔도리가 없는 것은, 성격이 화끈한 어머니와, 화를 잘내고 어딘가 미친 것 같은 면이 보이는 의부와의 사이에 대판 벌어지는 싸움이었다. 어딘가 이상하다 싶게 웃음이 오가다 10분쯤 지나면, 금새 굉장한 아비규환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전개가 너무 자주 있으면, 두분 사이에 어떤 정기적인 양상이 없으면 안되는 약속이라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곤 했을 뿐, 어느쪽으로 어떻게 머리를 굴려 봐도, 결코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질려버려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이런 부부는 어떻게 말해도 철저하게 안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형이 집을 나가려고 한 원인을 정확하게 찾는다면, 의부와의 불화 외에도 희노애락을 격렬하게 직설적으로 표출했던 어머니의 성격에 대한 혐오감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터이다.
결국 형은 원고료 일부를 집에 부쳐준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분가했지만, 왜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이 간단하게 책상을 놓고 갔는지 이유는 전혀 몰랐다. 어딘가 사용하기가 불편했거나, 특별하게 애착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맥빠진 기분으로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다고 하면 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 다음은 드문 드문 기억이 있을 뿐, 이어지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点としてならともかく、線として知るところはまるでない。)
이윽고,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혈액 은행에 취직했다. 그때는 이미 맏형도 집을 나가고 없었다. 두 형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차례였다.

잠시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 회사에서 도합 10년을 근무했고, 나는 이런 철저하게 방탕하고, 흥청거리는 결점들이 줄지어 있는 행렬을 계속해서 보게 된 것이다. 중졸의 신입 사원이 할 수 있었떤 일은, 사용한 채혈기구의 세척과 재생하는 곳의 일이 주업무로, 낮에는 문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일하고, 밤에는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면서, 형이 두고 간 책상에 들러 붙어서, 부지런히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형의 흔적을 고스란히 좇아가는 듯한 생활이었다.
이전보다 회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어머니와 의부의 활력넘치는 육탄전은 계속 되었다.
만화계는 "극화(劇画) 붐"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수많은 다크 커버의 극화잡지가 대본가게의 선반을 채우고 있었다. 서부극에 나오는 골드러쉬 같은 상황 속에서, 와사기쇼보(若木書房)에서 [미로(迷路)]를 실으면서 (만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조금 늦은게 아닌가 한다.
아마 개나 소나 되는 대로 뛰어드는 난장판에 대한 반발심과, 안이하게 '모방' 이나 '편승'을 하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게 아닐까. 하지만, 작가가 한권의 단행본도 팔지 못한 채 있어서야, 포부만 클 뿐 입만 아플 뿐이다.
「(미로)迷路」의 편집을 맡은 형은, 독단이었는지 추천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멤버 중 한 명으로 끼워 주었다. 일전에 형의 새 거처에 놀러갔을 때, 한번뿐이었지만 원고를 보여주었던 적이 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마도 헤매고 헤매다가 그런 판단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만화가가 되고자 했고, 곧, 회사를 그만 두었다.
8 페이지의 짧은 미스테리물을 2개, 불과 16 페이지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회사에서 받고 있던 급료보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도가 밝에 빛났다. 기분 좋게 매호를 그려냈다. 하지만,「迷路」의 매출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인기스타의 부재와 본격적인 미스터리 코믹 잡지를 목표로 한 나머지, 내용이 너무 수수한 경향이 있었다. 호수를 거듭하면서 부진은 한층 더 심해졌다.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형은 매호 인기극화가의 중편작품을 권두에 기용할 방침을 세웠다. 그렇다면, 페이지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누군가는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형은 머뭇거리면서, 그것을 나에게 통보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나도 그림이 서툴렀던 것이다. 지금과 같이 "헤타-우마"4) 같은 평가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속임수는 통하지 않았다. 형의 비호가 없었다면 벌써 해고되었을 터였다. 뭐, 되돌아갈 수 밖에, 되돌아가서 나는 다시 혈액 은행으로 돌아갔다.
결국, 그 후에도「迷路」의 형편은 호전되지 않고, 이름도「(일발)一発」라고 하는, 어쩐지 비정상적인 자포자기스러운 것으로 바뀌어서 결국 폐간되었다. 이것을 경계로 해서 형은 점차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틀렸을 수도 있다. 아무튼, 깊은 안개 속으로 한참 동안 형은 방황하게 되었다.
나는 단속적으로 만화를 그렸다. 공장에서 일하거나 요리 견습을 하거나 철물점 점원을 하는 사이사이에 만화를 그렸다. 그런 형편이 형 요시하루의 동향에 좌우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혹, 만화잡지에서 형이 일을 하게 되면, 나에게도 일이 들어왔고, 비호자가 쉴 참이면 나 역시 다른 누군가로 바뀔 뿐이었다.
「迷路」에서 시작해서, 「(인풍)忍風」「(가로)ガロ」「(바쿠)ばく」, 어느 것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남의 힘에 의존하는 존재방식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만화계를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예의 책상은 정돈되거나 먼지가 쌓이거나 했다.
결혼하고, 치바(千葉)의 流山에 옮겨 살게 되었을 때 부터 현재 까지, 나는 대여섯번 주거지를 바꾸었지만, 그 사이에 한 번 그 책상을 형에게 돌려주었던 적이 있다. 15~6년전, 나는 카미(カミ)씨와 함께 장사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오가기가 불편한 가게의 2층에 살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살고 있던 곳이 비게 되었다. 나는 내 전신(轉身)을 일단 형에게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어서, 그러한 사정까지 이야기했다.
"그러냐....(そうか・・・・・・)" 라고 형은 조금 생각보고는, "流山에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을까(流山に住んでみるのも面白いかな)", 라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형네 가족이 오는 날까지, 완전히 짐을 옮겼지만 책상만은 그대로 놔두었다. 거의 20년만이었는데, 돌려 준 쪽이나 돌려받은 쪽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 어딘가 모르게 구린 구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テレ臭い)
형이 그 집에서 산 것은 불과 일년남짓이었을까. 찾아오는 지인도 없고, 내가 살고 있던 곳과 가까웠지만 가게 일에 쫓겨서 좀처럼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지루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 것이 틀림없었다. 형은 다시 원래 살던 쵸시(調布)로 돌아오게 되었다.
"자, 가끔 놀러오라구(じゃあね、たまに遊びにおいでよ)"
이사가던 날, 형은 가게에 들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다음날, 무심코 빈 집에 가보니, 깨끗하게 청소된 방 구석에 책상만 달랑 남아 있었다. 아무말없이, 형은 또다시 그것을 남기고 갔던 것이다. 휑뎅그렁한 방안에서, 당분간 나는 멍하니 멈춰서 있었다.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그 책상은, 지금 우리집의 빈 방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채로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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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注 1) 쓰게 요시하루는 1954년에 도금공장에 근무하면서 여기저기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보냈고 [4コマ、一コマ]가 소년잡지에 실리기는 했지만, 1955년 18세의 나이로 若木書房를 통해서 실질적인 데뷔를 했다고 할 수 있다.
譯注 2) 1955년.
譯注 3) 1959년, 연재도 끊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자 쓰게 요시하루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필자인 동생이 일하던 혈액 은행에 피를 팔아 연명한다.
譯注 4) ヘタウマ(Heta-uma)는 10여년전 등장한 소위 '악취미 개그만화' 쟝르를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멋지다 마사루]의 우스타 쿄스케, [이나중 탁구부]의 후루야 미노루, [골때리는 연극부]의 유타카 타카하시, [천재 바카본]의 아카츠카 후지오 라던가 [개구장이 데카]의 야마가미 다츠히코 등을 들 수 있다. ヘタ는 下手 라는 뜻이고, ウマ는 上手라는 뜻으로 "일부러 초보자처럼 못그린 대가의 그림' 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특히 인물 묘사에 있어서 대충 그린 듯해서 서투른듯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런 식으로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면서 실제로는 그림 솜씨가 뛰어난 작가인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단순히 자신의 그림 실력이 떨어짐을 빗대어 말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이글루스 가든 - 쯔게 요시하루(つげ義春)를 읽자










2009-01-13 0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