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다 가블러 마지막회
at 2005-08-25 10:57:53 1 comment
12편에서 계속.
헤다: 아, 판사님 –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의 행위는 정말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나요.
브라크: 자유라고 하셨습니까, 헤다 부인? 그 사람은 이제 자유를 얻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헤다: 제 말은 저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거예요. 아직도 이 세상에는 용기와 자유 의지로 이런 행위를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제겐 해방감을 줘요. 그의 행위 속에는 아름다움마저 깃들어 있어요.
브라크: (미소짓는다) 흠, 친애하는 헤다 부인 –
헤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알아요. 판사님이야 현실적인 인간이시죠, 누구처럼.
브라크: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에일러트 뢰브보르그는 부인이 인정하시는 것보다 부인께 더 큰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까?
헤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어요. 다만 에일러트 뢰브보르그가 삶을 자기 식대로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만 말해두지요. 그리고 이제는 이 아름답고 위대한 행위를 해냈어요. 이렇게 일찍 삶의 족쇄를 깨버릴 힘과 용기를 가졌던 거예요.
브라크: 미안합니다만, 헤다 부인, 부인의 이 아름다운 망상을 깨야 겠습니다.
헤다: 망상이라고요?
브라크: 어차피 곧 진실을 알게되실 테니까요.
헤다: 무슨 진실울요?
브라크: 그는 자기 손으로 쏜 게 아닙니다.
헤다: 자기 손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요!
브라크: 아닙니다.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사건은 제가 설명한 것과는 사실은 다릅니다.
헤다: (긴장해서) 뭔가 감추신 게 있나요? 왜죠?
브라크: 가엾은 엘브스테드 부인에게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어 좀 꾸며냈습니다.
헤다: 뭘 꾸며내셨지요?
브라크: 첫째로, 그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헤다: 병원에서요?
브라크: 네, 그리고 중간에 의식을 되찾지도 못했습니다.
헤다: 그리고 뭘 더 숨기셨어요?
브라크: 사건은 그의 숙소에서 벌어진 게 아닙니다.
헤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잖아요.
브라크: 그렇진 않습니다. 뢰브보르그가 총에 맞은 채 발견 된 건 디아나 양의 거처에서였습니다.
헤다: 사실일 리 없어요, 판사님! 그가 오늘 또 그 곳에 갔다니요!
브라크: 그는 오늘 오후에 그 곳에 갔습니다. 빼앗긴 것을 도로 찾으러 갔다던가 실종된 자식이니 뭐니 그런 횡설수설을 했다는군요.
헤다: 아 – 그 일이군요-
브라크: 처음에는 원고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는 그가 자기 손으로 찢어버렸다고 하니 아마 지갑 얘기인가 봅니다.
헤다: 그렇겠네요. 그리고 거기서 발견되었다고요.
브라크: 네, 거기서였습니다. 가슴 주머니에서 발사된 권총이 발견되었습니다. 실랑이 중 잘못 발사된 총알에 맞은 겁니다.
헤다: 가슴에 맞은 거지요, 네.
브라크: 아니오, 맞은 건 하반신이었습니다.
브라크가 하반신이라고 표현한 부위는 남자를 가격했을 때 가장 통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그 부위인데 예전에 읽었던 한국어 판본에는 엄하게도 <하복부>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하일트의 대학 시절 연극 학회에서 이 작품을 상연하겠다고 작품 분석 하고 있을 때 바구니 속의 유일한 수탉처럼 그 자리의 유일한 남자였던 지도 교수님은 이런 화두를 남기셨다. „뢰브보르그가 하복부에 총을 맞았다는데 그게 사실은 어디일지 한 번 생각해보게.“ 우리는 모두 그게 어딜지 짐작했으나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내가 뢰브보르그 역이긴 했어도 그건 내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헤다에게 총 받고 나간 후로는 대사는 커녕 출연 한 장면 없었으므로 그냥 무대 뒤에 멀거니 서서 내 친구 형식주의 브라크가 헤다 역의 동료에게 내 죽음을 어떻게 전하는지나 쳐다보았다.
브라크가 하반신이라고 뭉뚱그려 한 표현을 헤다는 즉각 알아들었다.
헤다: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기까지 하다고요! 아아, 나와 관련 있는 일은 모두 저주라도 붙은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저속한 걸로 변해버려요.
브라크: 저속한 일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헤다 부인.
헤다: 뭐지요?
브라크: 그가 가지고 있던 권총이요 –
헤다: (숨을 멈추고) 그 권총이 어찌 되었단 건가요!
브라크: 그건 훔친 권총이 틀림없습니다.
헤다: 훔쳤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그는 훔치지 않았어요!
브라크: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훔친 게 틀림없어요. 쉿!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이 뒷방에서 일어나 거실로 돌아온다.
테스만: (양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헤다, 저긴 너무 어두워서 일을 못하겠어, 생각해봐!
헤다: 네, 생각하고 있어요.
테스만: 우리가 당신 책상을 써도 될까? 헤?
헤다: 그러세요. 아니, 기다려요! 책상을 치워드릴게요.
테스만: 그럴 필요 없어, 헤다. 공간은 충분한걸.
헤다: 아니요, 아니요. 먼저 치우고 이것들은 피아노 위로 옮길게요. 자!
헤다는 책꽂이 아래 보관되어 있던 권총 상자를 악보로 안보이게 싸서 뒷방에다 옮겨놓는다.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은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헤다는 물러선다.
헤다: (엘브스테드 부인 의자 뒤에 서서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자, 테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기념 사업은 잘 되어 가?
엘브스테드 부인: 아, 이것들을 알아보고 정리하는 건 정말 힘들어.
테스만: 해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걸 정리하는 건 제 특기인 걸요.
그랬다. 창의력이나 깊은 사고력은 없는 테스만이었지만 오랫동안의 사료 강독으로 단련된 사학도로서 <남이 쓴 걸 읽고 정리하는 것>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테스만은 일에 빠져들고 헤다는 브라크 쪽으로 돌아온다.
헤다: (속삭이며) 권총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셨죠?
브라크: (낮은 목소리로) 훔친 총인 게 분명하다고요.
헤다: 왜 훔쳤다는 건가요?
브라크: 왜냐면 다른 설명들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헤다 부인.
헤다: 그래요.
브라크: 뢰브보르그는 오늘 아침 여기를 다녀갔지요.?
헤다: 네.
브라크: 그와 단 둘이 계셨습니까?
헤다: 네, 얼마 동안 같이 있었어요.
브라크: 그를 두고 방 안을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헤다: 아니요.
브라크: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이라도 나가 계신 적이 없으셨습니까?
헤다: 네, 아마 잠깐 정도는 나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현관 쪽이었던가.
브라크: 그 때 권총 상자를 어디다 두셨지요?
헤다: 저기에 –
브라크: 자, 헤다 부인?
헤다: 저기 책상 위에 놓여있었어요.
브라크: 그 후 권총이 둘 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지 확인하셨습니까?
헤다: 아니요.
브라크: 어차피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뢰브보르그가 지니고 있던 권총을 저는 직접 봤습니다. 그리고 즉각 알아봤지요. 예전에도 보았고 어제도 본 권총이니까요.
헤다: 그 총을 갖고 계세요?
브라크: 아니요, 경찰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헤다: 왜 경찰이 권총을 가져갔지요?
브라크: 권총의 소유주를 알아내기 위해서요.
헤다: 소유자가 발각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브라크: (그녀 쪽으로 몸을 숙이고 속삭인다) 아니요, 헤다 가블러. 내가 입을 다물기만 하면 알려지지 않을 겁니다.
헤다: (꺼리듯 그를 쳐다보며) 그리고 판사님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러면요?
브라크: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도 권총을 도둑맞으셨다고 변명하실 순 있을 겁니다.
헤다: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브라크: (미소짓는다) 그런 말 흔히들 하지만 정말 실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헤다: 권총이 훔친 게 아니고 또 원 소유자가 발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브라크: 네, 헤다, 그러면 스캔들이 벌어지겠지요.
헤다: 스캔들!
브라크: 네, 당신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스캔들 말입니다. 당신은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디아나 양과 같이요. 그녀도 사건에 대해 진술해야 하거든요. 오발이었는지 고의적인 살해였는지. 그가 그녀를 위협하려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는지, 발사는 그 후에 되었는지, 혹은 그녀가 권총을 그의 손에서 빼앗아다 그를 쏘고 권총을 도로 그의 주머니 속에다 넣었는지.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대단한 여자거든요, 이 디아나 양이란 사람.
헤다: 하지만 이 역겨운 사건은 나랑 상관없어요
브라크: 상관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셔야 해요. 왜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에게 권총을 주었는가? 그리고 권총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떤 사실을 새로 끌어낼 수 있는가?
헤다: (고개를 떨군다) 사실이예요. 그 점에는 생각 못했어요.
브라크: 하지만 다행히도 저만 입을 다물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헤다: (그를 쳐다본다) 저는 당신 손아귀에 들어있는 거군요, 판사님. 통채로 당신 손에 맡겨진 몸이예요.
브라크: (더욱 낮게 속삭인다) 친애하는 헤다, 믿어도 됩니다, 그 점을 내가 악용하진 않을 겁니다.
헤다: 그럼에도 당신 손아귀에 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당신의 뜻대로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게. 자유롭지 못하게! 아니요, 그런 건 참을 수 없어요. 절대로.
브라크: (반쯤 비웃듯 그녀를 본다) 피할 수 없는 일에는 결국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헤다: (그 눈길을 맞받으며) 네, 그럴지도 모르죠.
헤다는 책상 쪽으로 간다.
헤다: (삐져나오는 미소를 참고 테스만의 어조를 흉내내며) 자, 잘 되어 가요, 예르겐? 헤?
테스만: 어휴, 몇 달은 걸릴 거 같아.
헤다: (계속 테스만 말투를 흉내내며) 생각해봐요! (엘브스테드 부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신기하지 않아, 테아? 예전에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와 함께 일하던 것과 똑같이 지금은 테스만하고 앉아있으니.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내가 헤다 남편에게도 그 사람처럼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헤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 될거야.
테스만: 그럼, 헤다. 부인과 앉아있자니 벌써 뭔가가 느껴지는걸. 당신은 판사님하고 계속 앉아있지 그래.
헤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테스만: 아니, 전혀 없어. (고개를 뒤로 돌리며) 앞으로도 헤다가 심심하지 않게 말상대를 해주겠나, 판사!
브라크: (헤다에게 시선을 던지며) 기꺼이 그러겠네.
헤다: 고마워요. 하지만 난 이제 피곤해요. 들어가서 소파에 좀 누워있겠어요.
테스만: 그렇게 해, 여보. 헤?
헤다는 뒷방으로 가 거실 쪽에서는 볼 수 없게 커튼을 친다. 잠시 조용하다 갑자기 거친 춤곡의 멜로디가 피아노에서 흘러나온다.
엘브스테드 부인: 우, 이게 무슨 소리람!
테스만: (문쪽으로 가며) 헤다, 오늘은 춤곡 같은 거 치지 말아줘! 고모님과 에일러트 생각을 해보라고!
헤다: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그리고 다른 고모님과 세상 사람들 생각도 하라는 거죠. 곧 그만둘 거예요.
그녀는 커튼을 도로 쳤다.
테스만: (책상으로 와서) 우리가 이 우울한 일에 매달리는 걸 보는 게 헤다에게는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제 고모님 댁으로 숙소를 옮기시면 어떨까요, 엘브스테드 부인. 그러면 제가 저녁때마다 찾아가겠습니다. 거기서 함께 작업을 하도록 하지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그게 좋겠어요.
헤다: (뒷방 쪽에서)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테스만. 하지만 나는 저녁 때마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죠?
테스만: (종이 뭉치를 넘기며) 판사님이 방문해 줄거야.
브라크: (기분 좋은 목소리로)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테스만 부인, 매일 밤 찾아뵙지요! 여기서 우리 둘이 유쾌하게 보낼 수 있을 겁니다!
헤다: (큰 소리로) 네, 그런 희망을 품고 계신 거죠? 바구니 속의 유일한 수탉이 되겠다는 –
그리고는 총소리가 울려퍼진다.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 브라크는 펄쩍 뛴다.
테스만: 아, 또 권총 가지고 장난을 하는군.
테스만은 커튼을 열어제치며 뛰어들어간다. 엘브스테드 부인도 따라들어간다. 헤다는 소파 위에 쓰러져 있다. 혼란에 찬 비명 소리가 들린다. 놀란 하녀가 오른 쪽에서 등장한다.
테스만: (브라크에게 외친다) 자살이야! 관자놀이를 쏘았어! 생각해 봐!
브라크: (반쯤 넋을 잃고 의자 위로 주저앉으며)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을 진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없어!
여러분, 희극은 끝났습니다, 박수를 칩시다.
헤다: 아, 판사님 –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의 행위는 정말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나요.
브라크: 자유라고 하셨습니까, 헤다 부인? 그 사람은 이제 자유를 얻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헤다: 제 말은 저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거예요. 아직도 이 세상에는 용기와 자유 의지로 이런 행위를 실현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제겐 해방감을 줘요. 그의 행위 속에는 아름다움마저 깃들어 있어요.
브라크: (미소짓는다) 흠, 친애하는 헤다 부인 –
헤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는 알아요. 판사님이야 현실적인 인간이시죠, 누구처럼.
브라크: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에일러트 뢰브보르그는 부인이 인정하시는 것보다 부인께 더 큰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까?
헤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어요. 다만 에일러트 뢰브보르그가 삶을 자기 식대로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만 말해두지요. 그리고 이제는 이 아름답고 위대한 행위를 해냈어요. 이렇게 일찍 삶의 족쇄를 깨버릴 힘과 용기를 가졌던 거예요.
브라크: 미안합니다만, 헤다 부인, 부인의 이 아름다운 망상을 깨야 겠습니다.
헤다: 망상이라고요?
브라크: 어차피 곧 진실을 알게되실 테니까요.
헤다: 무슨 진실울요?
브라크: 그는 자기 손으로 쏜 게 아닙니다.
헤다: 자기 손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요!
브라크: 아닙니다.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사건은 제가 설명한 것과는 사실은 다릅니다.
헤다: (긴장해서) 뭔가 감추신 게 있나요? 왜죠?
브라크: 가엾은 엘브스테드 부인에게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어 좀 꾸며냈습니다.
헤다: 뭘 꾸며내셨지요?
브라크: 첫째로, 그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헤다: 병원에서요?
브라크: 네, 그리고 중간에 의식을 되찾지도 못했습니다.
헤다: 그리고 뭘 더 숨기셨어요?
브라크: 사건은 그의 숙소에서 벌어진 게 아닙니다.
헤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잖아요.
브라크: 그렇진 않습니다. 뢰브보르그가 총에 맞은 채 발견 된 건 디아나 양의 거처에서였습니다.
헤다: 사실일 리 없어요, 판사님! 그가 오늘 또 그 곳에 갔다니요!
브라크: 그는 오늘 오후에 그 곳에 갔습니다. 빼앗긴 것을 도로 찾으러 갔다던가 실종된 자식이니 뭐니 그런 횡설수설을 했다는군요.
헤다: 아 – 그 일이군요-
브라크: 처음에는 원고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는 그가 자기 손으로 찢어버렸다고 하니 아마 지갑 얘기인가 봅니다.
헤다: 그렇겠네요. 그리고 거기서 발견되었다고요.
브라크: 네, 거기서였습니다. 가슴 주머니에서 발사된 권총이 발견되었습니다. 실랑이 중 잘못 발사된 총알에 맞은 겁니다.
헤다: 가슴에 맞은 거지요, 네.
브라크: 아니오, 맞은 건 하반신이었습니다.
브라크가 하반신이라고 표현한 부위는 남자를 가격했을 때 가장 통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그 부위인데 예전에 읽었던 한국어 판본에는 엄하게도 <하복부>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하일트의 대학 시절 연극 학회에서 이 작품을 상연하겠다고 작품 분석 하고 있을 때 바구니 속의 유일한 수탉처럼 그 자리의 유일한 남자였던 지도 교수님은 이런 화두를 남기셨다. „뢰브보르그가 하복부에 총을 맞았다는데 그게 사실은 어디일지 한 번 생각해보게.“ 우리는 모두 그게 어딜지 짐작했으나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내가 뢰브보르그 역이긴 했어도 그건 내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헤다에게 총 받고 나간 후로는 대사는 커녕 출연 한 장면 없었으므로 그냥 무대 뒤에 멀거니 서서 내 친구 형식주의 브라크가 헤다 역의 동료에게 내 죽음을 어떻게 전하는지나 쳐다보았다.
브라크가 하반신이라고 뭉뚱그려 한 표현을 헤다는 즉각 알아들었다.
헤다: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기까지 하다고요! 아아, 나와 관련 있는 일은 모두 저주라도 붙은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저속한 걸로 변해버려요.
브라크: 저속한 일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헤다 부인.
헤다: 뭐지요?
브라크: 그가 가지고 있던 권총이요 –
헤다: (숨을 멈추고) 그 권총이 어찌 되었단 건가요!
브라크: 그건 훔친 권총이 틀림없습니다.
헤다: 훔쳤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그는 훔치지 않았어요!
브라크: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훔친 게 틀림없어요. 쉿!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이 뒷방에서 일어나 거실로 돌아온다.
테스만: (양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헤다, 저긴 너무 어두워서 일을 못하겠어, 생각해봐!
헤다: 네, 생각하고 있어요.
테스만: 우리가 당신 책상을 써도 될까? 헤?
헤다: 그러세요. 아니, 기다려요! 책상을 치워드릴게요.
테스만: 그럴 필요 없어, 헤다. 공간은 충분한걸.
헤다: 아니요, 아니요. 먼저 치우고 이것들은 피아노 위로 옮길게요. 자!
헤다는 책꽂이 아래 보관되어 있던 권총 상자를 악보로 안보이게 싸서 뒷방에다 옮겨놓는다.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은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헤다는 물러선다.
헤다: (엘브스테드 부인 의자 뒤에 서서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자, 테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기념 사업은 잘 되어 가?
엘브스테드 부인: 아, 이것들을 알아보고 정리하는 건 정말 힘들어.
테스만: 해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걸 정리하는 건 제 특기인 걸요.
그랬다. 창의력이나 깊은 사고력은 없는 테스만이었지만 오랫동안의 사료 강독으로 단련된 사학도로서 <남이 쓴 걸 읽고 정리하는 것>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테스만은 일에 빠져들고 헤다는 브라크 쪽으로 돌아온다.
헤다: (속삭이며) 권총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셨죠?
브라크: (낮은 목소리로) 훔친 총인 게 분명하다고요.
헤다: 왜 훔쳤다는 건가요?
브라크: 왜냐면 다른 설명들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헤다 부인.
헤다: 그래요.
브라크: 뢰브보르그는 오늘 아침 여기를 다녀갔지요.?
헤다: 네.
브라크: 그와 단 둘이 계셨습니까?
헤다: 네, 얼마 동안 같이 있었어요.
브라크: 그를 두고 방 안을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헤다: 아니요.
브라크: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잠깐이라도 나가 계신 적이 없으셨습니까?
헤다: 네, 아마 잠깐 정도는 나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현관 쪽이었던가.
브라크: 그 때 권총 상자를 어디다 두셨지요?
헤다: 저기에 –
브라크: 자, 헤다 부인?
헤다: 저기 책상 위에 놓여있었어요.
브라크: 그 후 권총이 둘 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지 확인하셨습니까?
헤다: 아니요.
브라크: 어차피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뢰브보르그가 지니고 있던 권총을 저는 직접 봤습니다. 그리고 즉각 알아봤지요. 예전에도 보았고 어제도 본 권총이니까요.
헤다: 그 총을 갖고 계세요?
브라크: 아니요, 경찰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헤다: 왜 경찰이 권총을 가져갔지요?
브라크: 권총의 소유주를 알아내기 위해서요.
헤다: 소유자가 발각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브라크: (그녀 쪽으로 몸을 숙이고 속삭인다) 아니요, 헤다 가블러. 내가 입을 다물기만 하면 알려지지 않을 겁니다.
헤다: (꺼리듯 그를 쳐다보며) 그리고 판사님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러면요?
브라크: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도 권총을 도둑맞으셨다고 변명하실 순 있을 겁니다.
헤다: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브라크: (미소짓는다) 그런 말 흔히들 하지만 정말 실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헤다: 권총이 훔친 게 아니고 또 원 소유자가 발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브라크: 네, 헤다, 그러면 스캔들이 벌어지겠지요.
헤다: 스캔들!
브라크: 네, 당신이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스캔들 말입니다. 당신은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디아나 양과 같이요. 그녀도 사건에 대해 진술해야 하거든요. 오발이었는지 고의적인 살해였는지. 그가 그녀를 위협하려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는지, 발사는 그 후에 되었는지, 혹은 그녀가 권총을 그의 손에서 빼앗아다 그를 쏘고 권총을 도로 그의 주머니 속에다 넣었는지.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대단한 여자거든요, 이 디아나 양이란 사람.
헤다: 하지만 이 역겨운 사건은 나랑 상관없어요
브라크: 상관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셔야 해요. 왜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에게 권총을 주었는가? 그리고 권총을 주었다는 점에서 어떤 사실을 새로 끌어낼 수 있는가?
헤다: (고개를 떨군다) 사실이예요. 그 점에는 생각 못했어요.
브라크: 하지만 다행히도 저만 입을 다물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헤다: (그를 쳐다본다) 저는 당신 손아귀에 들어있는 거군요, 판사님. 통채로 당신 손에 맡겨진 몸이예요.
브라크: (더욱 낮게 속삭인다) 친애하는 헤다, 믿어도 됩니다, 그 점을 내가 악용하진 않을 겁니다.
헤다: 그럼에도 당신 손아귀에 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당신의 뜻대로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게. 자유롭지 못하게! 아니요, 그런 건 참을 수 없어요. 절대로.
브라크: (반쯤 비웃듯 그녀를 본다) 피할 수 없는 일에는 결국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헤다: (그 눈길을 맞받으며) 네, 그럴지도 모르죠.
헤다는 책상 쪽으로 간다.
헤다: (삐져나오는 미소를 참고 테스만의 어조를 흉내내며) 자, 잘 되어 가요, 예르겐? 헤?
테스만: 어휴, 몇 달은 걸릴 거 같아.
헤다: (계속 테스만 말투를 흉내내며) 생각해봐요! (엘브스테드 부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신기하지 않아, 테아? 예전에 에일러트 뢰브보르그와 함께 일하던 것과 똑같이 지금은 테스만하고 앉아있으니.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내가 헤다 남편에게도 그 사람처럼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면.
헤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 될거야.
테스만: 그럼, 헤다. 부인과 앉아있자니 벌써 뭔가가 느껴지는걸. 당신은 판사님하고 계속 앉아있지 그래.
헤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테스만: 아니, 전혀 없어. (고개를 뒤로 돌리며) 앞으로도 헤다가 심심하지 않게 말상대를 해주겠나, 판사!
브라크: (헤다에게 시선을 던지며) 기꺼이 그러겠네.
헤다: 고마워요. 하지만 난 이제 피곤해요. 들어가서 소파에 좀 누워있겠어요.
테스만: 그렇게 해, 여보. 헤?
헤다는 뒷방으로 가 거실 쪽에서는 볼 수 없게 커튼을 친다. 잠시 조용하다 갑자기 거친 춤곡의 멜로디가 피아노에서 흘러나온다.
엘브스테드 부인: 우, 이게 무슨 소리람!
테스만: (문쪽으로 가며) 헤다, 오늘은 춤곡 같은 거 치지 말아줘! 고모님과 에일러트 생각을 해보라고!
헤다: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그리고 다른 고모님과 세상 사람들 생각도 하라는 거죠. 곧 그만둘 거예요.
그녀는 커튼을 도로 쳤다.
테스만: (책상으로 와서) 우리가 이 우울한 일에 매달리는 걸 보는 게 헤다에게는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제 고모님 댁으로 숙소를 옮기시면 어떨까요, 엘브스테드 부인. 그러면 제가 저녁때마다 찾아가겠습니다. 거기서 함께 작업을 하도록 하지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그게 좋겠어요.
헤다: (뒷방 쪽에서)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테스만. 하지만 나는 저녁 때마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죠?
테스만: (종이 뭉치를 넘기며) 판사님이 방문해 줄거야.
브라크: (기분 좋은 목소리로)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테스만 부인, 매일 밤 찾아뵙지요! 여기서 우리 둘이 유쾌하게 보낼 수 있을 겁니다!
헤다: (큰 소리로) 네, 그런 희망을 품고 계신 거죠? 바구니 속의 유일한 수탉이 되겠다는 –
그리고는 총소리가 울려퍼진다.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 브라크는 펄쩍 뛴다.
테스만: 아, 또 권총 가지고 장난을 하는군.
테스만은 커튼을 열어제치며 뛰어들어간다. 엘브스테드 부인도 따라들어간다. 헤다는 소파 위에 쓰러져 있다. 혼란에 찬 비명 소리가 들린다. 놀란 하녀가 오른 쪽에서 등장한다.
테스만: (브라크에게 외친다) 자살이야! 관자놀이를 쏘았어! 생각해 봐!
브라크: (반쯤 넋을 잃고 의자 위로 주저앉으며)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을 진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없어!
여러분, 희극은 끝났습니다, 박수를 칩시다.
할일: 시험 공부도.



2007-06-02 01:14 #
겨우 미뤄진게 일주일인데 영어대본 읽기도 벅찬데 분석까지...ㅠ,ㅠ 그러던 중 발견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레포트 제 때 쓰자" 정말 가슴속을 파고 드는 말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