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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 <12>
at 2005-08-25 09:54:24 0 comment
11편에서 계속.
4막은 헤다가 원고를 태운 날 저녁이다. 테스만의 앓던 고모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그녀를 간호하던 다른 고모(1막에 등장했던 그 고모)가 헤다의 집에 소식도 알릴 겸 잠시 방문한 상태다.
소문난 미인에 좋은 가문 출신의 헤다지만 그녀의 내면은 사실은 공허함과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명한 장군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나 그녀는 아버지의 직업도 명성도 이어받을 수 없는 여자의 몸이었다. 테아를 멍청한 여자라고 비웃으면서도 사실은 그녀가 가진 창조력과 뢰브보르그에게 발휘한 영향력을 질투했다. 그러나 테아에게서 뢰브보르그와 원고를 빼앗음으로써 드디어 남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서본 그녀는 1막에서보다 좀 더 안정적인 인간이 되어 있다. 테스만이 고모님의 임종을 같이 지키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만해도 추하고 역겨운 건 질색이라고 손사래를 치던 그녀는 자진해서 테스만의 고모에게 장례일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없냐고 묻는다. 고모는 고마워하면서도 당신은 이런 일에 손쓸 것 없다고 사양하는데 이것은 고모가 원래 자기보다 나은 집안 출신인 헤다를 떠받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다가 임신중임을 눈치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모가 퇴장하고 좀 얼빠진 듯한 테스만이 들어온다. 가깝던 친척이 죽었으니 큰 일이라면 큰 일이 생긴 셈이지만 죽은 고모는 이미 오래 앓던 사람이라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고 그래서 테스만이 그만큼 정신이 없어 보이는 건 좀 묘한 일이다. 헤다가 그 점을 지적하자 테스만은 자신이 고모의 죽음 말고도 다른 문제에 신경쓰고 있었음을 말한다.
테스만: 고모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만은 아니야. 에일러트 때문에 걱정이 되서 그래.
헤다: 또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테스만: 오늘 오후에 그 친구에게 가서 내가 원고는 잘 보관하고 있으니까 염려말라고 전하려고 했거든.
헤다: 그런데요? 그 사람을 못봤어요?
테스만: 못봤어. 숙소에 없더라고. 그러다 엘브스테드 부인을 만났는데 에일러트가 오늘 아침 일찍 우리집에 왔었다며.
헤다: 네, 당신이 나가자마자 왔어요.
테스만: 그리고 그 친구가 원고를 찢어버렸다고 말했다는데, 어?
헤다: 네, 그런 말을 했어요.
테스만: 어휴, 그 친구 완전히 정신이 나갔네. 에일러트 손에 원고를 쥐어주진 않았지, 헤다?
헤다: 아니요. 주지 않았어요.
테스만: 그래도 우리가 원고를 갖고 있다는 얘기는 했지?
헤다: 아니요. 당신은 엘브스테드 부인에게 그 얘길 했어요?
테스만: 아니, 안했어. 하지만 에일러트에게는 얘기해주지 그랬어. 그 친구가 절망한 나머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면 어쩔려고! 원고 도로 줘, 헤다. 내가 그거 갖고 그 친구에게 얼른 가볼테니까. 원고 어디다 뒀어?
헤다: (움직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원고 여기 없어요.
테스만: 여기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헤다: 태워버렸어요. 몽땅.
테스만: 태워버렸다고! 에일러트의 원고를 태워버렸다고!
헤다: 그렇게 소리지르지 말아요. 하녀가 듣겠어요.
테스만: 태우다니! 맙소사, 아냐, 안돼, 그럴 리가!
헤다: 그랬어요.
테스만: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 헤다! 습득물에 대한 법을 어긴 거리고! 생각해봐! 정 모르겠으면 판사님에게라도 물어봐.
헤다: 판사님이든 누구에게든 이 얘기는 안꺼내는 게 가장 현명할걸요.
테스만: 하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거야? 대체 뭐에 씌여서? 대답해봐! 어?
헤다: (보일락말락하는 미소를 참으며) 난 당신을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예르겐.
테스만: 날 생각해서!
헤다: 당신 오늘 아침 집에 와서 그랬잖아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원고를 읽어줬을 때 –
테스만: 그 때 그래서?
헤다: 그 원고 때문에 그 사람에게 질투가 느껴졌다고 하셨잖아요.
테스만: 세상에, 그건 그냥 해본 소리였어.
헤다: 어쨌거나요. 난 누군가 당신의 앞길을 막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테스만: (의심과 기쁨 속에서 갈피를 못잡으면서) 헤다, 그게 사실이야! 그래 하지만, 하지만 –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내 생각을 해준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봐!
테스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자 헤다는 그를 홀릴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여태까지의 헤다는 임신이라는 것에 끔찍한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 그녀 쪽에서 임신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이렇게 다정하게 변한 것은 아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단순한 테스만은 이 수법에 홀라당 넘어가 불쌍한 친구 생각은 잠시 잊고 뛸듯이 기뻐한다. 게다가 헤다가 그를 처음으로 퍼스트 네임인 예르겐으로 불러준 것이다.
그 때 엘브스테드 부인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엘브스테드 부인: 헤다, 갑자기 또 찾아와서 미안해.
헤다: 무슨 일이 생겼어, 테아?
테스만: 뢰브보르그에게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그에게 나쁜 일이 닥쳤을까봐 걱정이 되어 죽겠어요.
헤다: 아, 그런 걱정을 해?
테스만: 맙소사, 아니, 아니, 왜 그런 걱정을 하게 되셨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제가 막 그 사람 숙소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오늘 그 사람에 대해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어요.
테스만: 네, 저도 소문은 들었죠. 하지만 그 친구 저녁 모임 후 곧장 숙소로 돌아가서 자리에 누웠을 겁니다.
헤다: 숙소에서 사람들이 무슨 얘길 했는데?
엘브스테드 부인: 제대로 된 얘기는 못들었어. 그 사람들도 자세한 건 모르던가 아니면 - . 나를 보고는 그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조용해지더라고. 차마 대놓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
테스만: 잘못 들으셨길 빌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 게 확실해요. 그리고 병원이라든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테스만: 병원이라고요!
헤다: 아니, 그럴리가!
엘브스테드 부인: 그 얘길 듣고는 겁이 덜컥 났어. 그리고는 그 사람 방 쪽으로 가서 그 사람을 찾았어.
헤다: 남들 다 보는 데서 대놓고 그 사람을 찾았다고, 테아!
엘브스테드 부인: 그렇잖음 어떡해? 모른 채로 있는 게 더 참기 힘들고 괴로우니까.
테스만: 그런데 그 친구를 못만났나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못 만났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저한테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고요. 그 사람이 어제 오후 이후로는 숙소로 돌아온 적이 없다고만 했어요.
테스만: 어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엘브스테드 부인: 그 사람한테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요. 다른 식으로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테스만: 헤다, 내가 시내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면 어떨까?
헤다: 아니, 아니, 이 일에는 끼어들지 말아요.
이 때 브라크 판사가 들어와 인사한다. 테스만은 처음에는 브라크가 자기 고모 사망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하러 온거라고 생각하지만 브라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테스만: 고모님 소식 말고도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브라크: 그렇다네.
헤다: (긴장해서) 뭔가 나쁜 일이군요, 판사님?
브라크: 그렇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요, 테스만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일이군요!
브라크: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뭔가 소식을 - ?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전 몰라요, 하지만 –
테스만: 어서 말이나 해보게.
브라크: 좋습니다. 불행히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가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현재 가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엥ㄹ브스테드 부인: 아아 하나님, 하나님!
테스만: 병원에! 게다가 가망이 없다고!
헤다: (저도 모르게) 이렇게나 빨리!
엘브스테드 부인: 우리는 싸운 채로 헤어졌어, 헤다!
헤다: 하지만 테아 –
엘브스테드 부인: 그 사람에게 가야겠어! 아직 살아 있을 때 만나야 해!
브라크: 소용 없습니다, 부인. 아무도 면회가 안됩니다.
엘브스테드 부인: 그럼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라도 이야기해 주세요!
테스만: 설마 자해한 건 아니겠지! 헤?
헤다: 아니요, 자기 손으로 한 걸 거예요, 틀림없어요.
테스만: 헤다, 당신 어떻게 그런 - !
브라크: (헤다를 주의깊게 보다가) 테스만 부인의 추측이 맞습니다.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그런 끔찍한 일이!
테스만: 자기 손으로! 생각해봐!
헤다: 자기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군요!
브라크: 그 말도 맞습니다, 테스만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진정하려 애쓰며)언제 벌어진 일인가요, 판사님?
브라크: 오늘 오후였습니다. 세 시와 네 시 사이요.
테스만: 하지만 대체 어디서 그런 짓을 저질렀나? 헤?
브라크: 어디냐고? 그야 자기 숙소였겠지.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 아까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제가 그 사람 숙소는 다녀갔어요.
브라크: 그러면 어디 다른 곳이었겠군요. 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저 그가 그 후 발견되었다는 것만 알지요. 음 – 가슴을 쐈더군요.
엥ㄹ브스테드 부인: 이게 무슨 끔찍한 일인지! 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되다니!
헤다: (브라크에게) 가슴을 쐈다구요?
브라크: 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헤다: 관자놀이가 아니라요?
브라크: 가슴을 쐈습니다, 테스만 부인.
헤다: 네, 네, 가슴도 괜찮아요.
브라크: 뭐라구요, 부인?
헤다: 아, 아무 것도 아니예요.
테스만: 그리고 치명상이었던 건가? 어?
브라크: 치명상이었네. 아마 지금쯤 숨을 거두었을 거야.
엘브스테드 부인: 네, 네, 저도 예감했어요! 그는 죽었어요! 죽었어요! 아아, 헤다 - !
테스만: 하지만 자네 어디서 이 얘길 다 들었나?
브라크: 경찰을 통해서 들었어.
헤다: (큰소리로) 드디어 누군가는 해냈군요.
테스만: (경악하며) 세상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헤다!
헤다: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브라크: 흠, 테스만 부인 –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헤다, 어떻게 이걸 아름다운 일이라고 부를 수가 있어!
헤다: 에일러트 뢰브보르그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인생의 결산을 낸 거예요.해야 할 일을 해낼 용기가 있었던 거지요.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마. 그 사람은 그저 미쳐서 그런 거야!
테스만: 절망해서 한 거지!
헤다: 아니예요. 난 확신해요.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 그는 미쳤던 거야! 그리고 우리 원고를 찢은 것도 미쳐서였어.
브라크: 원고요? 그걸 찢었단 말입니까?
엘브스테드 부인: 네, 어제 밤에 찢었다고 했어요.
테스만: (낮게 속삭인다) 헤다, 우린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어.
브라크: 흠, 이상한 일이군요.
테스만: 이런 식으로 에일러트가 세상을 뜨다니! 게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오랫동안 기릴 저작조차 남기지 못하고 –
엘브스테드 부인: 아, 하지만 원고는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테스만: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만 –
엘브스테드 부인: 결국엔 될 거예요, 테스만 씨.
테스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엘브스테드 부인: (가방을 뒤지며) 여기요, 보세요. 저는 그 사람이 제게 원고 내용을 받아쓰게 할 때 사용했던 메모지들을 버리지 않았어요.
헤다: (한발짝 다가서며) 아-!
테스만: 그걸 보관하고 계셨군요, 엘브스테드 부인!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여기 있어요. 여기로 떠나올 때도 챙겨왔지요. 그래서 제 가방 속에 남아있어요.
테스만: 어디 한 번 봅시다!
엘브스테드 부인: 하지만 엉망으로 뒤섞여 있는 상태예요.
테스만: 그래도 글씨만 알아볼 수 있으면 다시 정리할 수 있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네, 어찌 되었든 시도는 해보아요.
테스만: 가능할 겁니다! 가능해야 해요! 이 일에 제 평생이라도 바치겠습니다.
헤다: 예르겐 당신이요? 평생을 바쳐요?
테스만: 어, 그러니까, 바칠 수 있는 시간은 다 바치겠다고. 내 연구 활동은 좀 미뤄두지. 헤다, 이해하지? 어? 이건 내가 에일러트의 추억을 위해 진 빚이야.
헤다: 그럴지도 모르죠.
테스만: 자, 함께 이 일에 착수합시다, 엘브스테드 부인. 이미 벌어진 일을 붙들고 슬퍼하는 건 소용없어요. 우리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일을 해내야 해요.
엘브스테드 부인: 네, 네, 테스만 씨, 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거예요.
테스만: 이리 오십시오. 당장 메모를 살펴봅시다. 어디 앉을까요? 여기? 아니, 저기 안쪽 방이 낫겠습니다! 실례하겠네, 판사! 이리 오세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 하나님, 우리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은 뒷방으로 옮겨가고 헤다와 브라크 판사만이 남아있다.
<마지막 회에 계속>
4막은 헤다가 원고를 태운 날 저녁이다. 테스만의 앓던 고모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그녀를 간호하던 다른 고모(1막에 등장했던 그 고모)가 헤다의 집에 소식도 알릴 겸 잠시 방문한 상태다.
소문난 미인에 좋은 가문 출신의 헤다지만 그녀의 내면은 사실은 공허함과 열등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명한 장군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나 그녀는 아버지의 직업도 명성도 이어받을 수 없는 여자의 몸이었다. 테아를 멍청한 여자라고 비웃으면서도 사실은 그녀가 가진 창조력과 뢰브보르그에게 발휘한 영향력을 질투했다. 그러나 테아에게서 뢰브보르그와 원고를 빼앗음으로써 드디어 남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서본 그녀는 1막에서보다 좀 더 안정적인 인간이 되어 있다. 테스만이 고모님의 임종을 같이 지키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만해도 추하고 역겨운 건 질색이라고 손사래를 치던 그녀는 자진해서 테스만의 고모에게 장례일에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없냐고 묻는다. 고모는 고마워하면서도 당신은 이런 일에 손쓸 것 없다고 사양하는데 이것은 고모가 원래 자기보다 나은 집안 출신인 헤다를 떠받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다가 임신중임을 눈치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모가 퇴장하고 좀 얼빠진 듯한 테스만이 들어온다. 가깝던 친척이 죽었으니 큰 일이라면 큰 일이 생긴 셈이지만 죽은 고모는 이미 오래 앓던 사람이라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고 그래서 테스만이 그만큼 정신이 없어 보이는 건 좀 묘한 일이다. 헤다가 그 점을 지적하자 테스만은 자신이 고모의 죽음 말고도 다른 문제에 신경쓰고 있었음을 말한다.
테스만: 고모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만은 아니야. 에일러트 때문에 걱정이 되서 그래.
헤다: 또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테스만: 오늘 오후에 그 친구에게 가서 내가 원고는 잘 보관하고 있으니까 염려말라고 전하려고 했거든.
헤다: 그런데요? 그 사람을 못봤어요?
테스만: 못봤어. 숙소에 없더라고. 그러다 엘브스테드 부인을 만났는데 에일러트가 오늘 아침 일찍 우리집에 왔었다며.
헤다: 네, 당신이 나가자마자 왔어요.
테스만: 그리고 그 친구가 원고를 찢어버렸다고 말했다는데, 어?
헤다: 네, 그런 말을 했어요.
테스만: 어휴, 그 친구 완전히 정신이 나갔네. 에일러트 손에 원고를 쥐어주진 않았지, 헤다?
헤다: 아니요. 주지 않았어요.
테스만: 그래도 우리가 원고를 갖고 있다는 얘기는 했지?
헤다: 아니요. 당신은 엘브스테드 부인에게 그 얘길 했어요?
테스만: 아니, 안했어. 하지만 에일러트에게는 얘기해주지 그랬어. 그 친구가 절망한 나머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면 어쩔려고! 원고 도로 줘, 헤다. 내가 그거 갖고 그 친구에게 얼른 가볼테니까. 원고 어디다 뒀어?
헤다: (움직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원고 여기 없어요.
테스만: 여기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헤다: 태워버렸어요. 몽땅.
테스만: 태워버렸다고! 에일러트의 원고를 태워버렸다고!
헤다: 그렇게 소리지르지 말아요. 하녀가 듣겠어요.
테스만: 태우다니! 맙소사, 아냐, 안돼, 그럴 리가!
헤다: 그랬어요.
테스만: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 헤다! 습득물에 대한 법을 어긴 거리고! 생각해봐! 정 모르겠으면 판사님에게라도 물어봐.
헤다: 판사님이든 누구에게든 이 얘기는 안꺼내는 게 가장 현명할걸요.
테스만: 하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거야? 대체 뭐에 씌여서? 대답해봐! 어?
헤다: (보일락말락하는 미소를 참으며) 난 당신을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예르겐.
테스만: 날 생각해서!
헤다: 당신 오늘 아침 집에 와서 그랬잖아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원고를 읽어줬을 때 –
테스만: 그 때 그래서?
헤다: 그 원고 때문에 그 사람에게 질투가 느껴졌다고 하셨잖아요.
테스만: 세상에, 그건 그냥 해본 소리였어.
헤다: 어쨌거나요. 난 누군가 당신의 앞길을 막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테스만: (의심과 기쁨 속에서 갈피를 못잡으면서) 헤다, 그게 사실이야! 그래 하지만, 하지만 –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내 생각을 해준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봐!
테스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자 헤다는 그를 홀릴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여태까지의 헤다는 임신이라는 것에 끔찍한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 그녀 쪽에서 임신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이 이렇게 다정하게 변한 것은 아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단순한 테스만은 이 수법에 홀라당 넘어가 불쌍한 친구 생각은 잠시 잊고 뛸듯이 기뻐한다. 게다가 헤다가 그를 처음으로 퍼스트 네임인 예르겐으로 불러준 것이다.
그 때 엘브스테드 부인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들어온다.
엘브스테드 부인: 헤다, 갑자기 또 찾아와서 미안해.
헤다: 무슨 일이 생겼어, 테아?
테스만: 뢰브보르그에게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그에게 나쁜 일이 닥쳤을까봐 걱정이 되어 죽겠어요.
헤다: 아, 그런 걱정을 해?
테스만: 맙소사, 아니, 아니, 왜 그런 걱정을 하게 되셨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제가 막 그 사람 숙소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오늘 그 사람에 대해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어요.
테스만: 네, 저도 소문은 들었죠. 하지만 그 친구 저녁 모임 후 곧장 숙소로 돌아가서 자리에 누웠을 겁니다.
헤다: 숙소에서 사람들이 무슨 얘길 했는데?
엘브스테드 부인: 제대로 된 얘기는 못들었어. 그 사람들도 자세한 건 모르던가 아니면 - . 나를 보고는 그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조용해지더라고. 차마 대놓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어.
테스만: 잘못 들으셨길 빌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 게 확실해요. 그리고 병원이라든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테스만: 병원이라고요!
헤다: 아니, 그럴리가!
엘브스테드 부인: 그 얘길 듣고는 겁이 덜컥 났어. 그리고는 그 사람 방 쪽으로 가서 그 사람을 찾았어.
헤다: 남들 다 보는 데서 대놓고 그 사람을 찾았다고, 테아!
엘브스테드 부인: 그렇잖음 어떡해? 모른 채로 있는 게 더 참기 힘들고 괴로우니까.
테스만: 그런데 그 친구를 못만났나요? 헤?
엘브스테드 부인: 못 만났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저한테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고요. 그 사람이 어제 오후 이후로는 숙소로 돌아온 적이 없다고만 했어요.
테스만: 어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엘브스테드 부인: 그 사람한테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요. 다른 식으로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테스만: 헤다, 내가 시내에 가서 소식을 알아보면 어떨까?
헤다: 아니, 아니, 이 일에는 끼어들지 말아요.
이 때 브라크 판사가 들어와 인사한다. 테스만은 처음에는 브라크가 자기 고모 사망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하러 온거라고 생각하지만 브라크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테스만: 고모님 소식 말고도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브라크: 그렇다네.
헤다: (긴장해서) 뭔가 나쁜 일이군요, 판사님?
브라크: 그렇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요, 테스만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 일이군요!
브라크: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뭔가 소식을 - ?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전 몰라요, 하지만 –
테스만: 어서 말이나 해보게.
브라크: 좋습니다. 불행히도 에일러트 뢰브보르그가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현재 가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엥ㄹ브스테드 부인: 아아 하나님, 하나님!
테스만: 병원에! 게다가 가망이 없다고!
헤다: (저도 모르게) 이렇게나 빨리!
엘브스테드 부인: 우리는 싸운 채로 헤어졌어, 헤다!
헤다: 하지만 테아 –
엘브스테드 부인: 그 사람에게 가야겠어! 아직 살아 있을 때 만나야 해!
브라크: 소용 없습니다, 부인. 아무도 면회가 안됩니다.
엘브스테드 부인: 그럼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라도 이야기해 주세요!
테스만: 설마 자해한 건 아니겠지! 헤?
헤다: 아니요, 자기 손으로 한 걸 거예요, 틀림없어요.
테스만: 헤다, 당신 어떻게 그런 - !
브라크: (헤다를 주의깊게 보다가) 테스만 부인의 추측이 맞습니다.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그런 끔찍한 일이!
테스만: 자기 손으로! 생각해봐!
헤다: 자기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군요!
브라크: 그 말도 맞습니다, 테스만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진정하려 애쓰며)언제 벌어진 일인가요, 판사님?
브라크: 오늘 오후였습니다. 세 시와 네 시 사이요.
테스만: 하지만 대체 어디서 그런 짓을 저질렀나? 헤?
브라크: 어디냐고? 그야 자기 숙소였겠지.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 아까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제가 그 사람 숙소는 다녀갔어요.
브라크: 그러면 어디 다른 곳이었겠군요. 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저 그가 그 후 발견되었다는 것만 알지요. 음 – 가슴을 쐈더군요.
엥ㄹ브스테드 부인: 이게 무슨 끔찍한 일인지! 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되다니!
헤다: (브라크에게) 가슴을 쐈다구요?
브라크: 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헤다: 관자놀이가 아니라요?
브라크: 가슴을 쐈습니다, 테스만 부인.
헤다: 네, 네, 가슴도 괜찮아요.
브라크: 뭐라구요, 부인?
헤다: 아, 아무 것도 아니예요.
테스만: 그리고 치명상이었던 건가? 어?
브라크: 치명상이었네. 아마 지금쯤 숨을 거두었을 거야.
엘브스테드 부인: 네, 네, 저도 예감했어요! 그는 죽었어요! 죽었어요! 아아, 헤다 - !
테스만: 하지만 자네 어디서 이 얘길 다 들었나?
브라크: 경찰을 통해서 들었어.
헤다: (큰소리로) 드디어 누군가는 해냈군요.
테스만: (경악하며) 세상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헤다!
헤다: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브라크: 흠, 테스만 부인 –
엘브스테드 부인: 아아, 헤다, 어떻게 이걸 아름다운 일이라고 부를 수가 있어!
헤다: 에일러트 뢰브보르그는 자기 손으로 자기 인생의 결산을 낸 거예요.해야 할 일을 해낼 용기가 있었던 거지요.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마. 그 사람은 그저 미쳐서 그런 거야!
테스만: 절망해서 한 거지!
헤다: 아니예요. 난 확신해요.
엘브스테드 부인: 아니, 그는 미쳤던 거야! 그리고 우리 원고를 찢은 것도 미쳐서였어.
브라크: 원고요? 그걸 찢었단 말입니까?
엘브스테드 부인: 네, 어제 밤에 찢었다고 했어요.
테스만: (낮게 속삭인다) 헤다, 우린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어.
브라크: 흠, 이상한 일이군요.
테스만: 이런 식으로 에일러트가 세상을 뜨다니! 게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오랫동안 기릴 저작조차 남기지 못하고 –
엘브스테드 부인: 아, 하지만 원고는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테스만: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만 –
엘브스테드 부인: 결국엔 될 거예요, 테스만 씨.
테스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엘브스테드 부인: (가방을 뒤지며) 여기요, 보세요. 저는 그 사람이 제게 원고 내용을 받아쓰게 할 때 사용했던 메모지들을 버리지 않았어요.
헤다: (한발짝 다가서며) 아-!
테스만: 그걸 보관하고 계셨군요, 엘브스테드 부인! 헤?
엘브스테드 부인: 네, 여기 있어요. 여기로 떠나올 때도 챙겨왔지요. 그래서 제 가방 속에 남아있어요.
테스만: 어디 한 번 봅시다!
엘브스테드 부인: 하지만 엉망으로 뒤섞여 있는 상태예요.
테스만: 그래도 글씨만 알아볼 수 있으면 다시 정리할 수 있어요.
엘브스테드 부인: 네, 어찌 되었든 시도는 해보아요.
테스만: 가능할 겁니다! 가능해야 해요! 이 일에 제 평생이라도 바치겠습니다.
헤다: 예르겐 당신이요? 평생을 바쳐요?
테스만: 어, 그러니까, 바칠 수 있는 시간은 다 바치겠다고. 내 연구 활동은 좀 미뤄두지. 헤다, 이해하지? 어? 이건 내가 에일러트의 추억을 위해 진 빚이야.
헤다: 그럴지도 모르죠.
테스만: 자, 함께 이 일에 착수합시다, 엘브스테드 부인. 이미 벌어진 일을 붙들고 슬퍼하는 건 소용없어요. 우리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일을 해내야 해요.
엘브스테드 부인: 네, 네, 테스만 씨, 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거예요.
테스만: 이리 오십시오. 당장 메모를 살펴봅시다. 어디 앉을까요? 여기? 아니, 저기 안쪽 방이 낫겠습니다! 실례하겠네, 판사! 이리 오세요, 엘브스테드 부인.
엘브스테드 부인: 아 하나님, 우리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테스만과 엘브스테드 부인은 뒷방으로 옮겨가고 헤다와 브라크 판사만이 남아있다.
<마지막 회에 계속>
할일: 시험 공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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