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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내 막국수 투어를 다녀와서..
at 2005-11-17 22:14:13 4 comment
투어링(touring)이라고 하면 보통은 여행을 뜻하지만, 이쪽 바닥에서는 '바이크를 타고 여행 다니는 것'이란 의미가 더 크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소위 라이더라는 사람들이 '~~하러 어디 다녀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순 뻥이라는 거다. 이를테면 나는 오늘 막국수를 먹으러 둔내에 다녀왔다. 3만원 가량의 기름 값을 들여서 170km나 떨어진 곳에서 3500 원짜리 막국수-물론 싸고, 양 많고, 기가 막히게 맛있긴 하지만-를 먹고 왔단 거다. 웃기지 않는가. 3천5백 원을 위해 반나절과 그 8배에 가까운 돈을 쓰다니. 그저 바이크 타고 싶으니 그 핑계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는 것뿐이다.어찌되었건 나는 둔내 막국수 투어링을 다녀왔다.
지금부터는 매우 비상식적인 인간이 내 뱉는 헛소리들만 가득할 예정입니다. 부탁드리건데 평균적인 상식을 지니고 계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는 피해 가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기
말은 간단하지만, 사실 투어링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할리데이비슨 같은 크루저(cruiser)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며 다니는 것도 있을 것이고, R1 같은 Pure sports 머신을 타고 땅바닥만 보며 달리는 것도 훌륭한 투어링이 될 것이다.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는 청춘도 있을 것이고 로리 스타일의 귀여운 아가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그저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지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한가지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판단 기준은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점이다. 투어링이란 혼자가 아니라 무엇인가와 같이 즐기는 과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함께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물론 그 대상이 자연 경관이 될 것인지, 유유히 관조하는 삶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격렬하게 변화하는 머신과 노면의 상태가 될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평소의 나라면 이리저리 둘러 보며 적당히 경치도 둘러보고, 길도 즐기는 식의 투어링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심정이 복잡한 것도 있고 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타오르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 생각한 것은 미칠 듯이 울부짖는 바이크의 교성으로 머리 속을 채우고 싶다는 것 밖에 없었다. 물론 집을 나서기 전에는 Mp3를 챙겨갈 것인가로 잠시 고민하기도 하였지만, '아름다운 미녀와 하룻밤을 보내며 딴 생각을 하는 것은 큰 결례'라는 생각에 이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하길 공냉 2기통 엔진은 기온이 영상 10도 근처일 때가 가장 맛 난다고 했다. 나는 바이크 전문가도 항상 온도계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기에 몇 도가 가장 맛 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공냉 트윈의 오너로서는 지금 시즌이 가장 즐거운 시기라는 것 정도이다.
우선 배기음이 다르다.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시절의 배기음이 '부~웅'에 가깝다면 약간의 한기가 돌고 있는 지금 시즌의 배기음은 '붕' 또는 '방'에 가깝다. 물론 1초에도 몇 번씩이나 분출되는 배기가스의 소리가 그렇게 명료하게 들릴 리는 없다. 감정적인 차원의 이야기다. 그렇긴 해도 지금 씨즌엔 더욱 단단하게 조여진 소리가 난다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기온이 낮은 만큼 공기 밀도가 높아져서 자연 터보의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 시즌의 또 다른 이점 중 하나는, 스로틀 반응이 매우 탄력적이 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흔히들 throttle response가 crisp해진다고들 표현하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스로틀 반응이 '바삭해진다'고 해서는 역대 오역 리스트에나 오를 뿐이지 않을까. 여름엔 공냉 엔진이 더위에 처져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면, 기온이 떨어지는 시즌엔 스로틀 조작에 엔진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의 젓가슴과 허벅지가 예상 보다 썰렁한 방안 공기에 움츠려 들어 평소보다도 더욱 탄력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이점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시즌이다.
사족이지만 수냉 엔진에 비해 다양한 공냉 만의 표정을 즐기기 시작하면 공냉 엔진의 팬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긴 하지만 엔진의 선택 역시 취향의 문제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고 해서 주차장에서 잠자고 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불러내어 깨워본다. 날씨가 찬 것도 있지만 엔진 오일을 너무 과다하게 주입한 탓도 있어서 매우 귀찮은 듯한 인상을 보이며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역시나 배기음은 한없이 조여져 있다.
오늘은 과격하게 달릴 예정인 만큼 워커힐 앞에 도착할 때까지 회전수가 4천 rpm을 넘지 않도록 주의하며 충분히 예열을 하기로 했다. 나 역시 간만에 바이크에 오르는 것인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그녀를 부드럽게 다루기 위해 신경을 집중한다. 서로 서서히 달아 오르도록 주의하는 동안 벌써 주행 거리는 20km를 넘어 워커힐에 도착했다. 엔진 온도계도 그렇지만 엔진의 반응 역시 그녀가 충분히 달아 올랐다는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무리할 때가 아니다. 워커힐에서 구리로 가는 길목에는 좌 우로 굽어있는 와인딩 같지도 않은 코너가 몇 개 이어져 있는데, 웃기는 건 이곳에서 자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거다. 쓰러질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 쓰러지는 건, 다들 '서울 시내를 지나오느라 지금까지 쌓인 것 한번에 분출해 버리겠다'고 외치는 열혈 분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서로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되었는데 무리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양평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 들면서 엔진 회전수를 서서히 올려본다. 4천rpm을 넘어 4500까지 회전수를 올려도 그녀의 반응은 경쾌하기만 하다. 나와 그녀는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데, 교통량이 만만치 않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따듯한 아침 밥의 여유를 즐기며 아침부터 방영해대는 "American Chopper"를 보다가 예상보다 형편 없이 늦게 출발해 버린 내 게으름을 탓하는 수 밖에 없다. 올해 내내 나를 괴롭히는 가슴의 통증이 벌써 찾아오는 게 왠지 돌아갈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긴 해도 평일 오후에 경춘가도에 차량이 이렇게 많나? 트럭이나 승합차는 이해할 것 같다. 그런데 고급 외제차에 여자 태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뭔지..? 세상엔 나 같은 한량이 생각보다 많나 보다.
(매번 이름을 안다안다 하면서 여전히 그 이름을 모르겠는) 경춘가도상의 4개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지나 춘천을 벗어나기 시작하니 이제야 길이 조금 트이는 듯 싶다. 그녀를 슬슬 자극해 본다. RPM이 5천을 지나 6천 7천 순식간에 레드존으로 치닫고 있다. 그녀의 교성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니 그 톤 역시 높아져간다. 바야흐로 그녀도 절정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고, 나는 그녀의 반응에 자극되고 흥분되어 그녀를 더욱 괴롭히고만 싶어진다. 내 바이크에 장착된 머플러는 Laser라는 회사의 사제품인데 사일런서 내부에 프로펠러가 달려있다는 묘한 물건이다. 그 탓은 아니지만 여튼 4천500rpm 근처를 기점으로 소리의 특성이 크게 바뀐다.
배기음에 대해서라면 이런 경험이 있다. 2003년 태백 준용 서킷에서 벌어진 라이딩 스쿨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이 행사에는 여러 순서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프로 선수가 운전하는 자신의 바이크에 탠덤을 해본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의 코너였다. 스즈카 8내구 레이스의 현역 레이서인 강사가 운전하는 것이야 마찬가지였지만 친숙한 내 바이크인 만큼 CBR600RR(? 기억이..)을 탠덤 했을 때와는 다르게 많은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 가지 강렬하게 분했던 것만 빼면 말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테크닉의 소유자가 운전하는 만큼 그녀가 내 상상을 크게 벗어나며 코너를 날렵하게 클리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사는 처음 타보는 바이크에다가 덩치가 산만한 녀석을 탠덤했음에도 말이다. 정작 내가 분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내가 운전할 때와는 전혀 다른 교성을 내 지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 테크닉이 부족한 만큼 그녀를 절정으로 이끌지 못함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다룰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다른 소리를 내는 그녀를 귀로 확인하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 만은 아니었다. 매우 타이트한 코너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사는 풀스토틀로 질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레이스 세계의 사람에게 순정에 가까운, 그것도 BMW의 가속이라고 해 봐야 뻔한 수준일 테니 말이다.
매뉴얼 자동차나 바이크를 운전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쯤에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풀스로틀(풀악셀)이라는 것은 스로틀(악셀)을 무조건 돌린다(밟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무리하게 스로틀을 열어봐야 엄청난 노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엔진의 회전수와 상태를 느끼며 서서히 스로틀을 열어야만 풀 스로틀이라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라이딩이란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즐기는 것이지 강간하는 게 아니다. 혼자 들떠 무리하게 설쳐봐야 절정으로 치닫는 것 따윈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느끼며 풀스로틀로 질주 할 때의 감성(배기음이나 진동등을 포함한 심리상태로서의)이란 단순히 고회전으로 알짱거리고 있을 때의 그것과는 또 다른 세계이다.
준용 서킷의 코너와 코너간의 그 짧은 구간에서는 불가능했지만, 둔내행 고속 국도에서라면 나도 그 정도는 가능하다. 허리를 바짝 숙여 연료 탱크에 상체를 붙인 채로 레드존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며 그녀의 교성을 즐긴다. 배기음이 바뀐진 이미 예전이고 지금 나를 자극시키고 있는 건 엔진의 작동음이다. BMW R계열의 플랫트윈(Flat-twin:수평대항2기통, 통칭 박서엔진) 엔진은 매우 짧은 푸쉬로드(push-rod)를 가지고 있는 세미 OHV형식의 엔진인데 이 녀석은 고회전으로 돌렸을 때 들려오는 작동음이 정말로 절묘하다. BMW의 바이크들은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간에 절묘한 레벨로 적당하다는 게 큰 특징 중 하나인데, 엔진의 작동음도 일제 4기통의 신경질 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도 아니면서 잘잘잘잘거리며 사람을 적당히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내 사타구니 사이에서 그녀가 절정에 허덕이는 교성을 내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따라 짜릿하지만 할리의 그것처럼 지나치지 않은 '적당한' 떨림이 묻어 나온다.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내 손 바닥, 엉덩이, 허리, 허벅지, 발, 귀 그리고 심지어는 눈으로까지 느끼면서도 스로틀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의 몸부림에 도취되어 약간은 새디스트 적인 감성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와 함께 절정을 오르내리다 보니 약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R1150RS의 6단은 오버드라이브로 장거리 투어링에서의 연비 향상과 진동 절감의 용도로 사용되는 기어이다. 원래 용도 자체가 그렇다 보니 R1150RS의 출력으로는 6단을 레드존까지 밀어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그쯤 되면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빨라질 뿐더러 바이크의 힘도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 이후로는 더 이상 밀어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드존의 쾌감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정신을 집중하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연료 게이지가 눈에 띄게 팍팍 줄어드는 것도 무서워 6단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앞 뒤로 통행 차량 하나 없는 널찍하게 새로 닦인 도로를 한참 동안 달리고 나니, 방금 전까지의 고속 국도가 거짓으로 느껴질 정도로 한적한 시골 동네로 이어지더니 편도 1차선 국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길 앞에 있는 산만 통과하면 드디어 목적지인 둔내이다. 속도를 크게 줄이고 바이크를 좌우로 기울여 본다. 타이어가 충분히 열을 받아 끈적이고 있는 것이 엉덩이를 통해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스태미나와 힘으로 밀어 붙였다면 이제부터는 테크닉을 즐길 타이밍이다.
둔내로 들어가기 직전 매우 타이트한 업힐이 계속 이어지는 산이 나타난다. 몇 번이나 왔다갔다한 길이기도 하고, 코스 구성도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비교적 맘껏 즐길 수 있다. 타이트한 우측 업힐 이후의 평지에서 좌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고속 코너가 반복되는 비교적 단순한 구성의 와인딩이다. 5단으로 달려오다 코너를 앞두고 브레이킹을 하며 기어를 4단, 3단, 2단으로 낮춘다. 브레이크를 놓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를 좌로 우로 눕히며 그에 맞춰 나도 체워를 바꿔간다. 엉덩이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내밀며 코너를 하나 하나 공략하기 시작한다. 우측 업힐 코너를 앞두고선 약간의 긴장과 함께 그녀의 숨소리가 잦아들다가 클리핑 포인트를 지나 코너를 탈출하기 시작하자 다시 자지러지기 시작한다. 다시 재빨리 그녀를 왼쪽으로 눕히며 좌측 고속 코너에 대비한다. 그녀가 우측으로 누웠다 다시 좌측으로 눕는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녀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멀리서 들렸다 한다. 한 없이 뱅킹 했을 때는 머리가 탱크에 근접하지만 그녀를 반대 방향으로 눕히기 위해 방향을 바꾸는 사이에는 머리가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짧지만 진한 시간을 즐기고 나니 드디어 목적지인 둔내에 도착했다. 나는 막국수를 먹고 그녀는 달궈진 몸을 식히며 1시간 가량의 휴식을 취한다. 앞에선 꽤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곳의 막국수는 정말 최고다. 특히 오늘은 무슨 생각인지 안 그래도 많은 양의 막국수를 그 1.5배는 주는 바람에 토하기 직전까지 막국수를 먹어야 하는 색다른 경험도 해보았다. -_-;


자.. 이젠 돌아가야 하는데.... 코속 투어링에서 와인딩까지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이 둔내 코스에도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돌아가는 길은 테크닉 코스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고속 코너를 지나오며 달아 오를 대로 달아 오른 상태로 테크닉 코너를 지나야 할 텐데, 11월의 찬 바람에 식어 버린 엔진과 타이어를 가지고 와인딩 그것도 다운힐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엔진이야 가는 동안 어떻게든 워밍업을 한다고 해도 타이어는 방법이 없어서, 대부분의 4륜차 운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인 바이크를 좌 우로 기울이며 직진하는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코너 전까지 타이어를 데우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_-;
다운힐에 도착하고 보니 타이어의 예열이 문제의 핵심이 아님을 오늘도 또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타이어의 그립력이 떨어지네 마네 하는 것은 순전히 핑계고, 언제나 쌩 초보인 나로서는 이런 타이트한 다운힐을 만족스럽게 공략할 실력이 없는 것일 뿐이다. 물론 조금 자기 옹호적인 발언을 해보자면, 예전에 타던 붉은혜성에 비해 지금의 하얀혜성이 코너에서의 기대치가 훨씬 높다. 바꿔 말하면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코너링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예전 보다 훨씬 더 잘 타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말이다. .... 인정한다. 순 핑계다. 100% 실력 부족.
예정 보단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로 돌아가는 평일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의 길은 예상대로 별로 막히지 않아 상쾌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린 없다. 그래서야 인생 재미가 없으니까.
평소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연료였음에도 고회전 위주의 주행을 해서 그런지 돌아가는 길 도중에 연료가 바닥나버렸다. 운전 초기에는 캐쉬백 때문에 SK를 주로 썼고 최근에는 언젠가 만든 회원 카드 때문에 현대 오일뱅크 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놈의 경춘가도 상행선에는 현대 오일 뱅크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시켜버렸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반대 차선에는 오일뱅크가 줄줄이 늘어섰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가는 길에는 오일뱅크가 매~~우 긴 구간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칼텍스만 지나고 다음에, 이번 SK만 지나고 다음엔 오일뱅크가 나타나겠지..라며 이번만 이번만을 외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주유소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연료 경고등이 켜진진 이후 30k를 넘어선지 오래라 드디어 이 무거운 녀석을 길바닥에서 끌어보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어버렸다.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R1150RS의 비상연료가 3L이니 50km을 채 못 갈 텐데 어쩌지.. 금방 주유소가 나타나지 않으면 질질 끌어야 하는 건가... 아.. 젠장 아까 적당히 SK에서 넣고 올 걸.. 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내가 예상한 한계치가 나타나기 전에 주유소가 나타났다. 그것도 오일뱅크가... 만쉐~ 'ㅁ'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쓰는 게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ㅅ- 이건 집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비상연료는 4L라고 한다. 안 쫄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스타일만 구겼잖아.
쪼그라든 맘을 달래며 주유를 하는데, 이곳의 서비스 마인드라는 게 느껴진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서울에서 출발하기 직전 들른 동네 주유소에서는 가솔린을 흘리지 않도록 주유건을 정성 것 다루는 게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였고, 급유구 내로 흐른 별로 중요치 않은 개솔린도 닦아 준다며 헝겊을 찾아 주유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녔었다. 그런데 이 곳은 주유건도 엉성하게 다루고, 그래서 개솔린이 차체에 묻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척 만척이다. 휴지를 물에 적셔 직접 정리하긴 했지만 기분이 영 그렇다. 입지 조건 하나 믿고 개기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불쾌한 주유소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도착했다. 시간은 절묘하게 러쉬아워 직전. 절망적일 정도는 아니지만, 슬슬 길이 밀리기 시작한다. 혼잡을 뚫고 천호를 지나 송파로 접어드는데 청년 둘이 탄 ZX100이 옆에서 눈에 들어온다. 특히 탠덤한 청춘 하나가 나를 의식하는지 계속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서울 시내에서는 빨리 달려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신호가 바뀌고 시그날 레이스에서는 내가 이기지만 다음 신호에 걸려 대기하고 있다 보면 ZX100이 또 은근 슬쩍 나타난다. 어쩌면 상대를 신경 쓰고 있는 건 그 쪽이 아니라 나 뿐인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니 쑥스럽다.
남부 순환도로에서 방배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 나는 어려서 굳이 이쪽으로 돌아가자고 부모님을 조를 정도로 이 길을 매우 좋아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다운힐의 매력을 알고 있던 걸까? (웃음) 지금은 예전에 비해 차들이 많아져서 예전만큼 상쾌한 기분이 들긴 어렵지만 나는 오늘도 이 길로 돌아가고 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진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자주 가던 작고 낡은 구멍가게에 왠지 정이 들어 더 가까운 곳을 놔두고도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그 내리막 길을 둘러 싼 환경은 많이도 변해왔지만 나는 여전히 이 길을 고집한다.
집에 도착하니 안도감과 함께 강렬한 화장실의 욕구가 몰려든다. 바이크를 타고 있으면 긴장하기 때문인지, 그런 욕구들을 잘 못 느끼게 되지만 바이크에서 내려 주차를 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 몰려드는 생리적인 현상에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보아하니 오늘도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추운 계절에 바이크를 타면 어쩔 수 없는 걸까.
화장실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지금까지 마비되어있던 다른 감성들도 돌아오기 시작한다. 오늘도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고, 출발 시부터 괴롭히던 가슴의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쾌감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다.
문뜩 오늘 내가 모든 것을 다 잊고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낸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링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우리네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불타 오르기는커녕 딴 생각이나 잔뜩 드는 투어링 따위가 기억에 오래 남는 즐거운 투어링일리가 없다. 진짜 투어링, 진짜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 ‘아시따노 조’의 조처럼 재만 남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타오를 수 있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짜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만족스런 투어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글루스 가든 - 모터사이클을 타자
할일: 라이더스 토크




2005-11-18 01:25 #
2005-11-18 11:39 #
더 추워지기 전에 투어 한번 갔다 와야 할텐데..2
2005-11-19 01:44 #
여튼 즐거운 투어셨나보네요...
빨랑 봄이 왔음 좋겠네용 ^^
2005-11-21 1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