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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 터키 방랑기 5 - 괴레메, 카파도키아 첫인사
at 2005-08-27 00:21:12 0 comment
에어컨이 버스의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놔 으슬으슬 돋는 소름에 잠깐잠깐 깨기를 반복했지만 나름대로 첫 야간버스는 깊은 잠을 제공하였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깼으니, 그것은 바로 너무나도 생생한 꿈 때문. 윗니가 쑤욱 빠지는 꿈이었는데 그 이가 빠지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해 어둠에 잠긴 도로를 달리는 버스안에 실제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는 약 1분 가까이 걸렸다.
이가 빠지는 꿈은 분명 주변의 누군가에게 안좋은 일이 생긴다는 해석이었던 것이 기억나 좀 불안하다. 내일은 한국에 전화를 해야겠다.
꿈에 놀라 한번 깨어나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더 춥게 느껴졌다. 배낭에 있는 무릎담요가 새삼 아쉽다.
점점 날은 밝아오고 버스안의 탑승객이 하나 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끝없는 황토빛의 평원, 낯선 지평선이 목적지가 가까워져 왔음을 느끼게 한다.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넓은 황야는 하늘을 더욱 넓게 만든다. 하늘은 이토록 넓고 큰 것이었음을 나는 이제서야 이 조그만 버스안에서 느끼고 있다.
아침 8시에 조금 못미친 시간에 괴레메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언덕을 내려가며 괴레메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 순간, 버스안에는 탄식이 흘렀다. 그토록 많은 사진을 보아왔음에도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정말 놀라웠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괴레메의 작은 오토갈에 내려 숙소를 찾다가 인터넷 까페에서 추천해준 트레블러스가 선셋포인트와 가깝고 친절하다길래 그쪽으로 정했다. 같은 버스에 탄 언니 두명도 트레블러스 펜션에 머물기로 했단다.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때만해도 이 언니들과 인연이 깊어질 줄은 몰랐지. 내일 밤 페티예로 가는 버스를 우선 예약하고나니 벌써 트레블러스에서 픽업차량이 나왔다. 언니 두명과 나까지 오늘의 아침 손님은 총 세명인가보다. 복학생 3인조는 SOS펜션에 예약을 해놨다기에 오토갈에서 바이바이. 뭐, 페티예 가는 버스에서 또 만나겠지만 말이다.
체크아웃 시간이 10시인 관계로 아직 방이 안빠져 식당에서 기다려야했다. 공짜로 차와 식사도 내준다. 소문대로 친절하다. 아이들도 귀엽고.
트레블러스는 괴레메의 가장 외곽 (그래봤자 중심에서 5분거리;;)에 있는 펜션으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싸고 친절하니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지. 게다가 선센포인트가 바로 뒤라 한적하고 위치도 좋다.
같이 도착한 언니들과 통성명을 한다. 초등학교부터 친구라는 두 언니 역시 휴가를 내서 터키를 방랑하고 있는 처지. 얘기를 나누다보니 나랑 일정이 똑같다. 어쩌면 좋은 동반자가 될지도.
오늘 하루를 혼자 힘으로 돌아다닐까 투어에 조인할까 고민하다가 트레블러스 사장님인 핫산에게 물어보니 오늘도 투어 조인이 가능하단다. 카파도키아는 일정이 빠듯하니 효율적인 코스를 선택하자. 그래, 그린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의 가장 외곽을 도는 투어코스로 이동거리가 총 250km에 달한다. 약간 지루하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 유명한 지하도시인 데린쿠유를 가는데다가 으흐랄라 계곡까지 포함되어 있어 이 두 곳만 해도 보람찰 것 같다.
점심포함 투어비용 40리라에 합의보고 당장 투어에 조인하기로.
아침을 서둘러 먹고 체크인도 하기전에 공동샤워실에서 몸만 씻었다. 체크인은 돌아와서 하지 뭐. 같이 온 언니 둘은 천천히 괴레메 주변을 둘러본단다.
9시 30분이 되니 그린투어를 위한 버스가 펜션앞에 도착했다. 오늘 같이 투어하는 멤버들은 어제 도착한 비단길 투어를 이용해 패키지 자유배낭여행을 온 팀이다. 서로 다 아는 사이에 혼자 끼어서 뻘쭘하다 싶었지만 역시나 동물적 적응력이라 괴레메를 벗어나기도 전에 친해졌다. 이런 성격, 정말이지 도움이 된다니까.
우리의 투어 가이드는 정말 엄청난 배둘레를 자랑하는 아저씨였다. 영어는 꽤나 잘하는데 혀가 짧고 발음이 심히 새는지라 알아듣기가 좀 힘들었지만 그 모습 자체로 재밌어서 맘에 들었다.
40분을 달려 처음 도착한 코스는 실크로드의 상인들의 숙소 겸 쉼터였던 캐러반 사라이. 작은 성채처럼 생겼는데 지금은 비둘기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작은 벽돌틈새에 비둘기들이 빼곡하다.
중국부터 시작된 실크로드의 긴 여정의 거의 마지막 쉼터랄까. 어릴 적 봤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보면서 그 여정을 그대로 밟아보리라 다짐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곳이 그 현장이란 말이지. 저곳에선 낙타가 쉬었을게고, 저 안쪽에서는 술과 함께 사막의 밤이 익어갔겠지. 따가운 햇살이 새삼스레 감동스럽다.

- 실크로드의 상인대신 이제는 비둘기의 집 -

- 옛날의 낙타는, 저 성채를 보면 감동스러웠겠지 -

- 길 위의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한 얼마나 외로운가 -
캐러반 사라이를 지나 또 20분을 달린다. 작은 미니버스안의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창밖의 풍경조차 너무나 새롭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지평선이 얼마나 낯선 풍경인지 새삼스럽게 알게된다. 순도 100퍼센트의 햇살과 건조한 날씨 덕에 하늘은 깊숙히 푸르다. 내 카메라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파란색을 보여주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는데 더없이 뿌듯하다.

- 화살표가 있는 풍경, 지/평/선 -
다음에 우리가 내린 곳은 스타워즈의 촬영지로도 알려져있는 으흐랄라 계곡의 끝부분이었다.
카파도키아하면 떠오르는 그것. 괴상하게 생긴 절벽산과 그 안을 깎고 파내어 만든 집들과 도시와 교회. 그 괴상한 풍경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다.
여지없이 귀여운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를 처음 반겼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 뒤로 무른 사암의 산과 절벽을 파내어 만든 교회와 마을이 보인다. 이곳은 식품 저장고였고 저곳은 방이었고 하는 설명이 어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셔터 누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구인이 사는 곳과는 백만광년쯤 떨어져있지만 여기도 여지없이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있다.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상 스타워즈의 촬영지는 이곳이 아니다. 스타워즈는 튀니지에서 촬영했지. 그치만 이곳은 분명 '은하계' 에 속하는 곳이었다. 멀더와 스컬리와 외계인을 만나서 '헬로우' 인사를 건내도 전혀 이상할 곳이 없는 그런 곳.

- 시간이 순차대로 쌓여있다.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전봇대 -

- 유난히 카메라를 좋아했던 귀여운 형제 -

- 자연의 손, 그 안을 파놓은 사람의 흔적 -

- 지금도 누군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

- 붉은 대문 -
힘겹게 좁은 문들을 헤치고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버스는 이제 으흐랄라 계곡으로 출발한단다. 으흐랄라 밸리라니 이름도 요상하여라. 누군가 그랜드 캐년을 보고 감동한 자, 카파도키아를 보지 못했다 이야기했었는데 카파도키아의 계곡은 정말 굉장하다. 어찌하면 저런 모습이 될까 궁금증이 일기도 전에 그저 눈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으흐랄라 계곡의 모습을 감상하며 여기서부터 한시간 트래킹이다. 개울이 흐르는 길을 따라 계곡을 걷는다. 운동화 아래로 밟히는 흙은 부드럽고 물소리는 명랑하며 내 옆으로 보이는 동굴도시는 검은 숨을 내뿜는다. 그리고 햇살은 더없이 따갑다. 하늘은 여지껏 보지 못한 색으로 푸르다.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기독교인들의 동굴교회에 들어가 천정의 벽화를 감상한다. 서툰 솜씨로 그려놓은 예수는 어찌나 친근한지 그 어떤 명화에서 보는 예수님보다 다정했다. 비록 내 종교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종교인들이 존경스럽다 생각한다. 예수든 부처든 알라든 그 신이 실제 존재하든 안하든 그것에 상관없이 그 믿음만으로 신성성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종교의 실체가 아닐까.
슬슬 목이 마르고 배가고파져오고 발이 약간 피곤해질 즈음, 멀리 보이는 레스토랑. 다들 '밥이다!' 소리지르며 계곡물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 차곡차곡 앉는다. 트래킹 후의 점심은 어찌나 달콤한 휴식인지.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달콤한 휴식에 멜로디를 더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릴 무냐와 빠냐가 생각나 귀여운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영리한 그 녀석이 내 무릎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야옹야옹 거리면서 카메라 끈을 물어뜯고 손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집으로 데려가고만 싶었다. 아이고 이쁜 것,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 으흐랄라 밸리, 파란 하늘 아래 -

- 햇살은 새삼 축복이다, 따갑긴 해도 -

- 서툰 솜씨, 깊은 믿음 -

- 길이 좋아서 마냥 걸었어 -

- 지금은 비어버린, 옛날의 도시 -

- 지금도 사랑받고 잘 자라고 있겠지? -

- 반밖에 못먹었지만 그래도 배불렀던 피자 -
푸성귀가 잔뜩 얹혀진 피자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니 미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갈 곳은 고대하던 지하도시 데린쿠유다. 40여분을 더 달린다. 트래킹에서 힘을 뺀데다가 점심까지 먹어서 슬슬 기분좋은 졸음이 온다. 덜컹거리며 깊고 짧은 잠에 빠져들기를 세번쯤 반복하니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주차장에 차가 멈췄다. 다왔나보다.
배불뚝이 가이드 아저씨가 티켓을 나눠주는 티켓을 받아 지하로 내려가니 서늘한 기운이 살갗에 닿는다. 설명에 의하면 밖의 온도는 36도정도이지만 이 안의 기온은 13도 정도란다. 데린쿠유는 총 지하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공개된 것은 지하 5층까지.
식품 저장고니 거실이니 주방이니 또한 시체 보관소니 층층마다 각각의 기능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도시이다. 적들의 침입을 피해 최대 6개월까지 이 지하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데린쿠유는 지하로 내려갈수록 길이 좁아져 거의 무릎을 꿇고 기어가다시피 해야 했다. 폐쇄공포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절하고 말 그런 구조. 다들 낑낑거리며 열심히 지하여행을 감내했다.
햇빛을 6개월동안이나 보지 못한다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이 거대한 지하도시에 감탄하기에 앞서, 나는 먼저 햇빛을 그리워했다.

- 햇빛이 그리워지는 지하도시 -
축축하고 답답한 공기에 다른 일행보다 먼저 데린쿠유를 빠져나왔다. 컴컴한 지하에서 빠져나와 본 하늘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워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붉은 파라솔의 위에 펼쳐진 하늘은 뜨겁고 멋졌다.

- Colorful. 터키 여행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

- 어느 곳에서나 양탄자를 팔고있다 -

- 지금은 비어버린, 낡은 건물 -
데린쿠유를 떠나 들른 곳은 '이것은 투어입니다' 를 증명하기 위한 순서로 도자기 공장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차를 대접하고 물건도 파는 그런 순서. 그래도 전혀 강요하는 것은 없이 색색의 멋진 도자기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같이 습한 날씨에는 터키의 도자기처럼 선명하고 밝은 색상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어쩜 저렿게 선명한 하늘의 빛깔일까. 오묘한 우리의 청자도 좋지만 좀더 발랄하고 서민적으로 보이는 이곳의 도자기도 매력적이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다 구경하고 판매하는 그릇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장이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 아저씨가 오늘 들어야 할 '뷰티풀' 을 모두 말해줬다. 네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근데 어쩌나. 아저씨랑 찍은 사진은 여지없이 흔들려버렸구만요.

- 저 아저씨, 짧은 다리로 참 잘도 돌렸다 -

- 발랄한 색색의 접시들 -

- 카파도키아의 흔한 풍경 -
이동거리가 길어서인지 벌써 5시가 넘어버렸다. 이제는 마지막 코스만 남겼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그 유명한 버섯바위가 있는 곳. 아직 햇살은 뜨겁고 버섯바위는 파란 하늘 아래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느낌은 '스머프 마을'. 사진으로 나를 유혹했던 바로 그 곳에 서있자니 한순간의 희열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이곳이 내가 원했던 그곳이라는 느낌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멀리서 들리는 관광객들의 말소리만 아니라면 온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곳은 이공간. 여기서 맞이하는 밤은 정말 낯설것만 같다.
귀여운 낙타와 당나귀를 지나 굴뚝같기도 하고 버섯같기도 하고 스머프 마을같기도 한 이곳의 사이사이를 걸었다. 여기와서 처음으로 혼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가. 감탄과 감동을 누구와 나누지 않고 온전히 혼자 간직할 수 있으니, 그 사실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했었지 아마.

- 파파 스머프는 어디계실까 -

- 낙타는 피곤해요 -

- 아빠의 표정이 어찌나 흐뭇한지 -

- 문득 발견한 사진찍는 나 -

- 한참을 저 V를 바라보고 있었어 -

- 스머프를 찾는 모험 -

- 우뚝 선 것은 멋지지만 좀 외로워 -

- 여기, 또한 외로운 당나귀 -

- 두번째로 맘에 드는 사진, 신의 장난 혹은 창의성 -
괴레메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하고도 뿌듯했다. 버스에서의 시간이 길어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다음엔 직접 차를 몰고 오래오래 머물기로 다짐한다.
미니버스가 숙소까지 데려다주지만 리라가 부족해 오토갈에 내렸다. 환적을 하고 천천히 괴레메 마을의 좁고 예쁜 길을 걸어 직접 숙소로 돌아간다. 언덕위에 있는지라 약간 힘들었지만 괴레메는 직접 구석구석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 카파도키아의 하일라이트를 작게 축소해 한 마을에 넣은 그런 곳. 모든 마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인사를 건내고 이방인에게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외계의 풍경을 눈에 넣고 동굴의 방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그런 마을이다.
좋구나 이곳. 한달은 아무 일 하지 않고 뒹굴어도 좋을만큼 멋지구나.

- 안녕, 꼬끼오 -

- 골목을 돌때마다 나타나는 풍경 -

- 나의 숙소, 트레블러스 펜션 -
숙소에 도착하고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처음 보는 내 방. 정말 정말 작은 동굴방이다. 침대 하나와 작은 양초가 방의 전부. 그치만 생각보다 눅눅하지 않고 창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여 너무 좋았다.

- 온전히 나만을 위한, 동굴 -
먼지가 뿌옇게 앉은 신발을 시원한 샌들로 갈아신고 바로 선셋포인트로 올라간다. 이미 해는 지기 시작하여 선셋 포인트에서 괴레메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을 때는 저 멀리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껏 28년을 살면서 봤던 멋진 석양 베스트 3에 꼽힐만한 붉은 빛이었다.
아담하고 신기하고 다정한 괴레메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화이트 밸리와 러브 밸리도 보인다. 바위에 앉아 맥주와 함께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맥주 한병을 챙겨간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저 멋진 붉은 빛에 시원한 맥주가 더해지니 이곳은 천국이로세.

- 괴레메 마을에 어둠이 내립니다 -

- 아름다움 붉은 빛 -

- 술 한잔 했지요 -

- 화이트 밸리에 깔리는 회색빛 -

- 이제 어두워지네요 -
슬쩍 어두워진 골목길은 아련한 빛을 띄었다. 맥주가 좀 더 마시고 싶어 그 길로 길을 따라 주욱 내려가 소프라 레스토랑에서 카파도키아식 고기요리를 벗삼아 에페스 맥주를 마신다.
기분좋은 피곤함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온다. 귓속을 파고들어 손을 까딱이게 만드는 뽕짝풍 터키음악이 유난히 즐겁다.
완전히 깜깜해진 길을 다시 거슬러 방으로 간다. 온종일 흘린 땀으로 끈적한 몸을 시원하게 씻고 침대에 엎드려 엽서를 쓴다. 엽서 그림은 이스탄불, 쓰는 곳은 괴레메, 부치는 곳은 어디가 될지 나도 모르겠다.
포근한 잠이 내려온다. 닭이 울때까지 자련다.

- 어둠이 내린 길 -
이가 빠지는 꿈은 분명 주변의 누군가에게 안좋은 일이 생긴다는 해석이었던 것이 기억나 좀 불안하다. 내일은 한국에 전화를 해야겠다.
꿈에 놀라 한번 깨어나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더 춥게 느껴졌다. 배낭에 있는 무릎담요가 새삼 아쉽다.
점점 날은 밝아오고 버스안의 탑승객이 하나 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끝없는 황토빛의 평원, 낯선 지평선이 목적지가 가까워져 왔음을 느끼게 한다.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넓은 황야는 하늘을 더욱 넓게 만든다. 하늘은 이토록 넓고 큰 것이었음을 나는 이제서야 이 조그만 버스안에서 느끼고 있다.
아침 8시에 조금 못미친 시간에 괴레메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언덕을 내려가며 괴레메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 순간, 버스안에는 탄식이 흘렀다. 그토록 많은 사진을 보아왔음에도 카파도키아의 풍경은 정말 놀라웠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괴레메의 작은 오토갈에 내려 숙소를 찾다가 인터넷 까페에서 추천해준 트레블러스가 선셋포인트와 가깝고 친절하다길래 그쪽으로 정했다. 같은 버스에 탄 언니 두명도 트레블러스 펜션에 머물기로 했단다.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때만해도 이 언니들과 인연이 깊어질 줄은 몰랐지. 내일 밤 페티예로 가는 버스를 우선 예약하고나니 벌써 트레블러스에서 픽업차량이 나왔다. 언니 두명과 나까지 오늘의 아침 손님은 총 세명인가보다. 복학생 3인조는 SOS펜션에 예약을 해놨다기에 오토갈에서 바이바이. 뭐, 페티예 가는 버스에서 또 만나겠지만 말이다.
체크아웃 시간이 10시인 관계로 아직 방이 안빠져 식당에서 기다려야했다. 공짜로 차와 식사도 내준다. 소문대로 친절하다. 아이들도 귀엽고.
트레블러스는 괴레메의 가장 외곽 (그래봤자 중심에서 5분거리;;)에 있는 펜션으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싸고 친절하니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지. 게다가 선센포인트가 바로 뒤라 한적하고 위치도 좋다.
같이 도착한 언니들과 통성명을 한다. 초등학교부터 친구라는 두 언니 역시 휴가를 내서 터키를 방랑하고 있는 처지. 얘기를 나누다보니 나랑 일정이 똑같다. 어쩌면 좋은 동반자가 될지도.
오늘 하루를 혼자 힘으로 돌아다닐까 투어에 조인할까 고민하다가 트레블러스 사장님인 핫산에게 물어보니 오늘도 투어 조인이 가능하단다. 카파도키아는 일정이 빠듯하니 효율적인 코스를 선택하자. 그래, 그린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린투어는 카파도키아의 가장 외곽을 도는 투어코스로 이동거리가 총 250km에 달한다. 약간 지루하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 유명한 지하도시인 데린쿠유를 가는데다가 으흐랄라 계곡까지 포함되어 있어 이 두 곳만 해도 보람찰 것 같다.
점심포함 투어비용 40리라에 합의보고 당장 투어에 조인하기로.
아침을 서둘러 먹고 체크인도 하기전에 공동샤워실에서 몸만 씻었다. 체크인은 돌아와서 하지 뭐. 같이 온 언니 둘은 천천히 괴레메 주변을 둘러본단다.
9시 30분이 되니 그린투어를 위한 버스가 펜션앞에 도착했다. 오늘 같이 투어하는 멤버들은 어제 도착한 비단길 투어를 이용해 패키지 자유배낭여행을 온 팀이다. 서로 다 아는 사이에 혼자 끼어서 뻘쭘하다 싶었지만 역시나 동물적 적응력이라 괴레메를 벗어나기도 전에 친해졌다. 이런 성격, 정말이지 도움이 된다니까.
우리의 투어 가이드는 정말 엄청난 배둘레를 자랑하는 아저씨였다. 영어는 꽤나 잘하는데 혀가 짧고 발음이 심히 새는지라 알아듣기가 좀 힘들었지만 그 모습 자체로 재밌어서 맘에 들었다.
40분을 달려 처음 도착한 코스는 실크로드의 상인들의 숙소 겸 쉼터였던 캐러반 사라이. 작은 성채처럼 생겼는데 지금은 비둘기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작은 벽돌틈새에 비둘기들이 빼곡하다.
중국부터 시작된 실크로드의 긴 여정의 거의 마지막 쉼터랄까. 어릴 적 봤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보면서 그 여정을 그대로 밟아보리라 다짐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곳이 그 현장이란 말이지. 저곳에선 낙타가 쉬었을게고, 저 안쪽에서는 술과 함께 사막의 밤이 익어갔겠지. 따가운 햇살이 새삼스레 감동스럽다.

- 실크로드의 상인대신 이제는 비둘기의 집 -

- 옛날의 낙타는, 저 성채를 보면 감동스러웠겠지 -

- 길 위의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또한 얼마나 외로운가 -
캐러반 사라이를 지나 또 20분을 달린다. 작은 미니버스안의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창밖의 풍경조차 너무나 새롭다. 지루할 틈이 없다. 지평선이 얼마나 낯선 풍경인지 새삼스럽게 알게된다. 순도 100퍼센트의 햇살과 건조한 날씨 덕에 하늘은 깊숙히 푸르다. 내 카메라가 이렇게 만족스러운 파란색을 보여주리라고는 기대도 못했는데 더없이 뿌듯하다.

- 화살표가 있는 풍경, 지/평/선 -
다음에 우리가 내린 곳은 스타워즈의 촬영지로도 알려져있는 으흐랄라 계곡의 끝부분이었다.
카파도키아하면 떠오르는 그것. 괴상하게 생긴 절벽산과 그 안을 깎고 파내어 만든 집들과 도시와 교회. 그 괴상한 풍경과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다.
여지없이 귀여운 아이들의 웃음이 우리를 처음 반겼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 뒤로 무른 사암의 산과 절벽을 파내어 만든 교회와 마을이 보인다. 이곳은 식품 저장고였고 저곳은 방이었고 하는 설명이 어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셔터 누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구인이 사는 곳과는 백만광년쯤 떨어져있지만 여기도 여지없이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있다.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상 스타워즈의 촬영지는 이곳이 아니다. 스타워즈는 튀니지에서 촬영했지. 그치만 이곳은 분명 '은하계' 에 속하는 곳이었다. 멀더와 스컬리와 외계인을 만나서 '헬로우' 인사를 건내도 전혀 이상할 곳이 없는 그런 곳.

- 시간이 순차대로 쌓여있다.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전봇대 -

- 유난히 카메라를 좋아했던 귀여운 형제 -

- 자연의 손, 그 안을 파놓은 사람의 흔적 -

- 지금도 누군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

- 붉은 대문 -
힘겹게 좁은 문들을 헤치고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버스는 이제 으흐랄라 계곡으로 출발한단다. 으흐랄라 밸리라니 이름도 요상하여라. 누군가 그랜드 캐년을 보고 감동한 자, 카파도키아를 보지 못했다 이야기했었는데 카파도키아의 계곡은 정말 굉장하다. 어찌하면 저런 모습이 될까 궁금증이 일기도 전에 그저 눈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으흐랄라 계곡의 모습을 감상하며 여기서부터 한시간 트래킹이다. 개울이 흐르는 길을 따라 계곡을 걷는다. 운동화 아래로 밟히는 흙은 부드럽고 물소리는 명랑하며 내 옆으로 보이는 동굴도시는 검은 숨을 내뿜는다. 그리고 햇살은 더없이 따갑다. 하늘은 여지껏 보지 못한 색으로 푸르다.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기독교인들의 동굴교회에 들어가 천정의 벽화를 감상한다. 서툰 솜씨로 그려놓은 예수는 어찌나 친근한지 그 어떤 명화에서 보는 예수님보다 다정했다. 비록 내 종교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종교인들이 존경스럽다 생각한다. 예수든 부처든 알라든 그 신이 실제 존재하든 안하든 그것에 상관없이 그 믿음만으로 신성성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종교의 실체가 아닐까.
슬슬 목이 마르고 배가고파져오고 발이 약간 피곤해질 즈음, 멀리 보이는 레스토랑. 다들 '밥이다!' 소리지르며 계곡물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 차곡차곡 앉는다. 트래킹 후의 점심은 어찌나 달콤한 휴식인지.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달콤한 휴식에 멜로디를 더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릴 무냐와 빠냐가 생각나 귀여운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더니 영리한 그 녀석이 내 무릎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야옹야옹 거리면서 카메라 끈을 물어뜯고 손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집으로 데려가고만 싶었다. 아이고 이쁜 것,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 으흐랄라 밸리, 파란 하늘 아래 -

- 햇살은 새삼 축복이다, 따갑긴 해도 -

- 서툰 솜씨, 깊은 믿음 -

- 길이 좋아서 마냥 걸었어 -

- 지금은 비어버린, 옛날의 도시 -

- 지금도 사랑받고 잘 자라고 있겠지? -

- 반밖에 못먹었지만 그래도 배불렀던 피자 -
푸성귀가 잔뜩 얹혀진 피자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니 미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갈 곳은 고대하던 지하도시 데린쿠유다. 40여분을 더 달린다. 트래킹에서 힘을 뺀데다가 점심까지 먹어서 슬슬 기분좋은 졸음이 온다. 덜컹거리며 깊고 짧은 잠에 빠져들기를 세번쯤 반복하니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주차장에 차가 멈췄다. 다왔나보다.
배불뚝이 가이드 아저씨가 티켓을 나눠주는 티켓을 받아 지하로 내려가니 서늘한 기운이 살갗에 닿는다. 설명에 의하면 밖의 온도는 36도정도이지만 이 안의 기온은 13도 정도란다. 데린쿠유는 총 지하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공개된 것은 지하 5층까지.
식품 저장고니 거실이니 주방이니 또한 시체 보관소니 층층마다 각각의 기능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도시이다. 적들의 침입을 피해 최대 6개월까지 이 지하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데린쿠유는 지하로 내려갈수록 길이 좁아져 거의 무릎을 꿇고 기어가다시피 해야 했다. 폐쇄공포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절하고 말 그런 구조. 다들 낑낑거리며 열심히 지하여행을 감내했다.
햇빛을 6개월동안이나 보지 못한다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이 거대한 지하도시에 감탄하기에 앞서, 나는 먼저 햇빛을 그리워했다.

- 햇빛이 그리워지는 지하도시 -
축축하고 답답한 공기에 다른 일행보다 먼저 데린쿠유를 빠져나왔다. 컴컴한 지하에서 빠져나와 본 하늘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워 바로 카메라를 들었다. 붉은 파라솔의 위에 펼쳐진 하늘은 뜨겁고 멋졌다.

- Colorful. 터키 여행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

- 어느 곳에서나 양탄자를 팔고있다 -

- 지금은 비어버린, 낡은 건물 -
데린쿠유를 떠나 들른 곳은 '이것은 투어입니다' 를 증명하기 위한 순서로 도자기 공장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차를 대접하고 물건도 파는 그런 순서. 그래도 전혀 강요하는 것은 없이 색색의 멋진 도자기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같이 습한 날씨에는 터키의 도자기처럼 선명하고 밝은 색상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어쩜 저렿게 선명한 하늘의 빛깔일까. 오묘한 우리의 청자도 좋지만 좀더 발랄하고 서민적으로 보이는 이곳의 도자기도 매력적이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다 구경하고 판매하는 그릇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장이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 아저씨가 오늘 들어야 할 '뷰티풀' 을 모두 말해줬다. 네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근데 어쩌나. 아저씨랑 찍은 사진은 여지없이 흔들려버렸구만요.

- 저 아저씨, 짧은 다리로 참 잘도 돌렸다 -

- 발랄한 색색의 접시들 -

- 카파도키아의 흔한 풍경 -
이동거리가 길어서인지 벌써 5시가 넘어버렸다. 이제는 마지막 코스만 남겼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그 유명한 버섯바위가 있는 곳. 아직 햇살은 뜨겁고 버섯바위는 파란 하늘 아래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느낌은 '스머프 마을'. 사진으로 나를 유혹했던 바로 그 곳에 서있자니 한순간의 희열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이곳이 내가 원했던 그곳이라는 느낌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멀리서 들리는 관광객들의 말소리만 아니라면 온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곳은 이공간. 여기서 맞이하는 밤은 정말 낯설것만 같다.
귀여운 낙타와 당나귀를 지나 굴뚝같기도 하고 버섯같기도 하고 스머프 마을같기도 한 이곳의 사이사이를 걸었다. 여기와서 처음으로 혼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가. 감탄과 감동을 누구와 나누지 않고 온전히 혼자 간직할 수 있으니, 그 사실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했었지 아마.

- 파파 스머프는 어디계실까 -

- 낙타는 피곤해요 -

- 아빠의 표정이 어찌나 흐뭇한지 -

- 문득 발견한 사진찍는 나 -

- 한참을 저 V를 바라보고 있었어 -

- 스머프를 찾는 모험 -

- 우뚝 선 것은 멋지지만 좀 외로워 -

- 여기, 또한 외로운 당나귀 -

- 두번째로 맘에 드는 사진, 신의 장난 혹은 창의성 -
괴레메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하고도 뿌듯했다. 버스에서의 시간이 길어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다음엔 직접 차를 몰고 오래오래 머물기로 다짐한다.
미니버스가 숙소까지 데려다주지만 리라가 부족해 오토갈에 내렸다. 환적을 하고 천천히 괴레메 마을의 좁고 예쁜 길을 걸어 직접 숙소로 돌아간다. 언덕위에 있는지라 약간 힘들었지만 괴레메는 직접 구석구석 걸을만한 가치가 있다. 카파도키아의 하일라이트를 작게 축소해 한 마을에 넣은 그런 곳. 모든 마을 사람들이 친숙하게 인사를 건내고 이방인에게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외계의 풍경을 눈에 넣고 동굴의 방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그런 마을이다.
좋구나 이곳. 한달은 아무 일 하지 않고 뒹굴어도 좋을만큼 멋지구나.

- 안녕, 꼬끼오 -

- 골목을 돌때마다 나타나는 풍경 -

- 나의 숙소, 트레블러스 펜션 -
숙소에 도착하고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처음 보는 내 방. 정말 정말 작은 동굴방이다. 침대 하나와 작은 양초가 방의 전부. 그치만 생각보다 눅눅하지 않고 창아래로 마을이 내려다보여 너무 좋았다.

- 온전히 나만을 위한, 동굴 -
먼지가 뿌옇게 앉은 신발을 시원한 샌들로 갈아신고 바로 선셋포인트로 올라간다. 이미 해는 지기 시작하여 선셋 포인트에서 괴레메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을 때는 저 멀리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껏 28년을 살면서 봤던 멋진 석양 베스트 3에 꼽힐만한 붉은 빛이었다.
아담하고 신기하고 다정한 괴레메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화이트 밸리와 러브 밸리도 보인다. 바위에 앉아 맥주와 함께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맥주 한병을 챙겨간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저 멋진 붉은 빛에 시원한 맥주가 더해지니 이곳은 천국이로세.

- 괴레메 마을에 어둠이 내립니다 -

- 아름다움 붉은 빛 -

- 술 한잔 했지요 -

- 화이트 밸리에 깔리는 회색빛 -

- 이제 어두워지네요 -
슬쩍 어두워진 골목길은 아련한 빛을 띄었다. 맥주가 좀 더 마시고 싶어 그 길로 길을 따라 주욱 내려가 소프라 레스토랑에서 카파도키아식 고기요리를 벗삼아 에페스 맥주를 마신다.
기분좋은 피곤함이 발끝부터 타고 올라온다. 귓속을 파고들어 손을 까딱이게 만드는 뽕짝풍 터키음악이 유난히 즐겁다.
완전히 깜깜해진 길을 다시 거슬러 방으로 간다. 온종일 흘린 땀으로 끈적한 몸을 시원하게 씻고 침대에 엎드려 엽서를 쓴다. 엽서 그림은 이스탄불, 쓰는 곳은 괴레메, 부치는 곳은 어디가 될지 나도 모르겠다.
포근한 잠이 내려온다. 닭이 울때까지 자련다.

- 어둠이 내린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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