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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유감(현실도피 ?)
at 2005-09-14 16:50:33 2 comment
'창작' 또는 '만들기'나 '창작물'이 현실도피가 되어버리지는 않나?
나는 오래전부터 설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물론 나에겐 지금도 이런, 저런 재미있는 세계와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잘라 말할 수는 없었겠지만, 소위 '창작(사실 '창작'이라고 부르기도 껄끄러워 '만들기'라고 부를만한 것이지만)'이라는 것을 할 때 현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심을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현실과 환상의 질적 차이와 그 간격이 화두가 된다. 그리고 이 현실과 환상의 차이와 간격은 창작이 자칫하면 현실도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가 어렸을적에 만든 것들, 십여년전, 또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생각했었던 것들을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 당시에는 현실에서 한참 벗어나, 단순히 즐거운 상상의 세계속에 빠져들어갔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재의 내 시각으로 당시의 '창작'을 바라보면, 그 것은 사실상 현실도피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것으로 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의 '창작'이란 것은 단지 형태로 보았을 때만 유사할 뿐이지 보다 깊은 의미로 보았을 때에 현재의 내가(또는 어른들) 만들고 있는 것에 담긴 어른의 현실도피와는 결코 같지 않았었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의 시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현실이란 그들의 키 만큼이나 제한된 시아를 갖기 마련이다. 이러한 제한을 감안할 때 어린시절의 창작물들이 지금 볼 때(성인들이 볼 때)엔 마치 단순한 망상이나 현실도피처럼 보일 지라도, 실제로는 오히려 순수하게 현실을 반영한 창작물 이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현실을 외곡해서 볼 줄 모른다. 반면 성인들은 사실상 모든것을 외곡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늘어난 시아와 통찰력은 오히려 사실을 이리 저리 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서 사용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도록 만들곤 한다.
현실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창작이나 창작활동은 당연히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며, 창작활동이나 이를 행하는 창작자, 소비자, 나가아서 그 창작물 자체가 문자 그대로 현실 도피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아이러니 하게도 어린이들이 만든 창작물보다 충분한 현실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쪽이 오히려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에 대한 어떠한 도움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http://shinysmile.egloos.com/ by WindFish 2005.9.14
나는 오래전부터 설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물론 나에겐 지금도 이런, 저런 재미있는 세계와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잘라 말할 수는 없었겠지만, 소위 '창작(사실 '창작'이라고 부르기도 껄끄러워 '만들기'라고 부를만한 것이지만)'이라는 것을 할 때 현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심을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현실과 환상의 질적 차이와 그 간격이 화두가 된다. 그리고 이 현실과 환상의 차이와 간격은 창작이 자칫하면 현실도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내가 어렸을적에 만든 것들, 십여년전, 또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생각했었던 것들을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그러면 당시에는 현실에서 한참 벗어나, 단순히 즐거운 상상의 세계속에 빠져들어갔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재의 내 시각으로 당시의 '창작'을 바라보면, 그 것은 사실상 현실도피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것으로 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의 '창작'이란 것은 단지 형태로 보았을 때만 유사할 뿐이지 보다 깊은 의미로 보았을 때에 현재의 내가(또는 어른들) 만들고 있는 것에 담긴 어른의 현실도피와는 결코 같지 않았었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의 시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현실이란 그들의 키 만큼이나 제한된 시아를 갖기 마련이다. 이러한 제한을 감안할 때 어린시절의 창작물들이 지금 볼 때(성인들이 볼 때)엔 마치 단순한 망상이나 현실도피처럼 보일 지라도, 실제로는 오히려 순수하게 현실을 반영한 창작물 이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현실을 외곡해서 볼 줄 모른다. 반면 성인들은 사실상 모든것을 외곡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늘어난 시아와 통찰력은 오히려 사실을 이리 저리 피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서 사용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도록 만들곤 한다.
현실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는 창작이나 창작활동은 당연히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며, 창작활동이나 이를 행하는 창작자, 소비자, 나가아서 그 창작물 자체가 문자 그대로 현실 도피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아이러니 하게도 어린이들이 만든 창작물보다 충분한 현실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쪽이 오히려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에 대한 어떠한 도움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http://shinysmile.egloos.com/ by WindFish 2005.9.14




2006-08-10 10:59 #
2006-08-13 16:54 #
일단 아주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어린시절에는 할 수 있는 다른 즐거움을 포기하고(예컨데 친구들과 논다든지 하는) 판타지 설정놀이를 했었고, 그건 명백히 즐거움의 수단이 되어줬습니다. 즐거운 일이 되었기에 삶의 충전수단도 되어 줄 수 있었고, 이건 현실의 삶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꽤 효과적인 유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쓰는 판타지 소설, 혹은 설정같은 것들은 다른 즐거움을 대신해서 했다기보다는, 사실상 할 수 있는게 그런것 뿐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어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이든 설정이든 이것이 즐겁기 때문에 한다기보다는, 달리 현실적으로 다른 할만한 것이 없었기에 이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