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피는 고래.
at 2009-10-08 19:31:24 0 comment
김형경씨 장편소설. 세월 다 읽고 정말 좋아서 다른 소설까지 찾기에 이르렀다. 추석 때 집에서 다 읽을 요량으로 가벼워 보이는 소설을 고른건데 집에선 실컷 컴퓨터만 하다가 결국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거의 다 읽었다. 처용포. 고래잡이. 장포수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니은이는 따뜻한 어른이 되었을까.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자리에 앉
았다. 고작 노래 한 소절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노래가 사랑 노래이고 세상 모든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 생각했다. 대중 가요나 드라마가 늘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만날 사랑 타령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런데 아니었다. 이제보니 그것들은 사랑 이후의 이야기들 이었
다. 세상 모든 노래는 이별 노래고 세상 모든 이야기는 이별 이야
기라는 게 더 바른 정의 같았다.
사람 마음이 그리 질기다. 정도, 욕심도.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슬퍼하는 방법들을 가진 것 같았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보니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이상해지는 것 같다.
그 때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송진조차 상처난 소나무의 울음이었다.
청회색
처럼 숨막히는 슬픔, 주홍빛처럼 터져나갈 듯한 슬픔, 노란색처
럼 온몸에서 힘빠지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어떤 때는 슬픔이 바
람처럼 몸을 뚫고 지나가고 어떤 때는 햇살처럼 어깨로 쏟아진다
는 것을. 그것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식사를 끝낸 뒤 주방으로 들어가 씽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씻
었다. 할머니가 밥을 주었다, 가 아니라 내가 밥을 먹었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설거지도 내가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바위 그림이 왜 중요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또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게 나은지, 기억하는게 좋
은지.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 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흘러가 쌓이는 곳
내가 지금 두렵고 답답하다면 처음 혼자 서는 순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처음은 거듭 찾아올 것이다. 왕고래집
할머니를 보며 나는 또 한가지를 기억하기로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일들을 잘 맞을 준비를 하
기로. 몸 속에 작살을 꽂고 다니는 백사십살 먹은 고래한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래도 괜찮을 것이다.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상어에게는 상어가 사는 법이 있고, 고래에게는 고래가 사는 법이
있고.
허공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허공은 더러워지지도, 부서지지도,
시들지도 않을 것이다. 허공은 고요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을 것이
다. 무엇보다 허공은 멀리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한달에 책 5권씩 읽기
할일: 어떤 책을 읽었는지 말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