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눈깨비.
at 2007-12-30 23:57:14 0 comment
방학이라는 극단적인 자유를 앞에 두고 나는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선택을 했다. 바깥공기가 두려웠고 저 멀리서 바람이 실어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들만의 숨결을 내 피부에 맞닿는게 너무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방안에 꼭꼭 숨어들어가 내 자신을 가두었다.
"언제 자버렸지..."
나도 모르게 눈이 슬금 떠지면서 나는 다 죽어가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목감기 같으니- 혼자뿐이라는것을 알기에 자신이 어떻게 잠에 빠져들었는지 따위는 묻지않는다. 자신의 머리속에 기억이 나지 않으면 그건 죽은 이야기 일뿐 기억이라는것을 나는 잘 알고있었다. 안경이 그대로 코에 걸려있는걸 보니 아무래도 그냥 스르륵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다른 증거로 방의 불이 환하게 켜져있다. 머리 옆에는 검은색의 노트북 컴퓨터와 읽다가만 책이 몇권 놓여있었다.
"새벽 4시인데 지금 일어난건 좀 너무하군."
안경에 잔뜩 묻은 머릿기름을 안경용 손수건으로 훔쳐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른 시각이다. 뭐 학교를 다닐때는 12시에 잤다가 새벽 3시에도 일어나서 숙제를 하다가 다시 잠들고는 했으니 그다지 큰 일은 아니다. 단지 방학때 다시 이런식으로 일어났다는것이 조금 마음에 안들었다. 컴퓨터는 끈 기억이 없는데 꺼진걸 보니 과열해서 자동으로 꺼진건가. 그 증거로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는데 불만 들어올뿐 작동을 하지 않는다.
"이럴때는 그냥 식혀야지. 뭐 촉감상으로는 충분히 식은것 같지마는."
스위치를 밀어서 배터리를 노트북 본체에서 뽑아낸후 창문을 열고 본체와 배터리를 열어둔 창문에 세워두었다. 한 십분 정도면 충분히 식어서 다시 사용할수 있을테니 정신이나 차릴 생각으로 세수를 하러 방을 나섰다. 나서는 순간, 추위가 맨살을 드러낸 두 팔에 다가왔다. 확실히 방보다 추웠다. 어떻게 되먹은 집안이기에 방밖의 온도가 이모양이냐고 투덜대면서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열어둔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지금 나는 겨울의 한가운데 있다고 일깨워 주었다. 3일전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그래도 조금 따뜻했다. 작년과 같이 아무도 나에게 축하해 주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방학때만 되면 차가 없다는 핑계하에 항상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행동을 취해왔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서로 잘 지내시는 커플인 친구들은 지금쯤 뉴욕 한복판에서 닭살을 떨고있을까. 아니 지금은 새벽 4시지. 자고 있는게 훨씬 자연스럽다. 뉴욕을 생각하니 저번에 여행을 갔을때 봤던 야경이 떠올랐다. 관광을 하고 싶은 나와 쇼핑을 더욱 중요시하는 다른 세명은 단 하루 갈라져서 행동했고 나는 약간 다급하게 계획해둔 일정을 마무리 지을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라간 록펠러 센터의 전망대에서 나는 상당히 오래 머물렀다. 약 두시간 가량. 쓸쓸해서 울뻔 했지만 그곳에서 울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이제 충분히 식었겠군."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나는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일어나 노트북에 배터리를 꽃아넣었다. 책상위에 조심스레 올리고서 전원을 넣자 이번에는 위잉하는 거슬리는 소리를 내면서 화면에 윈도우즈 비스타의 로고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 시끄러운 소리 어떻게 좀 안되려나."
같은 옵션에 싼값을 자랑해서 산 H회사의 노트북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소리와 발열로 내 뒤통수를 쳤다. 익숙해진 소리와 익숙하게 튀어나오는 불평인 탓에 그렇게 한마디만 하고서 나는 비밀번호 스물한자리를 쳐내려 갔다. 기숙사내의 모든 컴퓨터를 통틀어서 가장 긴 비밀번호를 가진탓에 그걸 뚫어보고 싶은 놈들이 지금껏 한 열둘쯤 덤볐지만 결국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당연하지. 이건 영어이긴 한데 내가 만든 단어라서 말야. 사전을 뒤져봐도 소용이 없다고. 게다가 그런 단어 세개가 연결된거니까.
인터넷을 틀자 익숙한 창이 나타난다. 내 블로그. 이번 1월 16일이면 개설한지 2년쯤 되는 블로그다. 최근에는 방문자가 좀 늘어서 흡족해하고 있다. 링크에 추가시켜둔 블로거가 내가 자는 사이에 포스팅해둔 글을 빠짐없이 읽고서는 나는 인터넷을 껏다. 새벽 4시에 포스팅 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건 당연하니까- 내가 지금 새글쓰기 버튼 따위를 누를리가 없다. 옆에 둔 오렌지 주스를 한모금 마시고 나는 컴퓨터를 닫았다. 자동으로 절전모드에 들어가 더이상 소리를 내지 않자. 방안은 내 숨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아니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소리도 같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소음을 줄이려고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창문을 닫아내렸다. 새벽의 바람소리따위, 전혀 반갑지 않다. 비라면 모를까.
침대에 기어 올라가 비스듬히 앉자니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일단 1월 1일에 원서 접수 마감인 대학이 하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미 에세이라던지 다 작성해서 접수만 하면 되지만 여전히 짜증이 난다. 아니 그 좋다는 새해에 마감이면 어쩌자는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짜증을 팍냈다. 뭐 짜증낸다고 해결될 일이면 난 이미 하버드에 들어갔겠지 라고 스스로한테도 먹히지 않는 개그를 한뒤 넘어갔다. 사실 안 넘어 가는게 좋았을지도.
순간적으로 머리에는 그녀 생각이 가득 채워졌다.
비상사태다. 새벽부터 그쪽 관련 생각은 안하는게 좋다. 애써 머리를 휘저으면서 떨쳐내보려고 하지만 영 마음먹은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참 우스운 방식으로 만났는데 말이야.
2년전에 나는 영어도 모자라고 전체적으로 어딘가 부족한 인간이었다. 아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좀더 자유롭게 친구집에 놀러다녔고 가끔은 외박도 하곤 했다. 그러면서 친구의 초대로 한 일주일간 그 집에서 머문적이 있었다. 친구에게는 쌍둥이 형이 하나 있었는데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꽤나 친했다. 그녀석의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는 사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애에 관심이 없는 특이한 녀석이고, 그때는 아예 그런 생각을 안하고 사는 나날이 었기 때문에 그냥 피자 두조각 값을 내고 헤어졌다. 그 뒤로 내가 한국에 돌아갈때까지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 1년동안의 일들로 이곳에 오기전보다 꽤나 암울해진 분위기를 품고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학원을 하나 잡아두고 하질없이 빈둥거렸다. 가끔 떡볶이라던지 순대가 땡기면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검은 봉지를 들고 집에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그때 있던 유일한 행복은 아마 서점에 가는것이었을터였다. 나는 서점에 가서 귀퉁이에 앉아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들린 지하철의 와플상점에서 그녀를 만난건 나로써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삼류 영화라던지 로맨스 소설의 한가운데 끌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약간은 공포감에 젖기도 했다. 딸기크림을 바른 와플을 부탁하면서 고개를 들자 그녀의 얼굴이 보였고 둘은 서로 놀라서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휴대폰따위는 필요없다고 외치던 시절이기도 해서 나는 집 전화번호를 그녀는 내게 휴대폰 번호를 주었다. 와플 값을 치루고 약간 멍한상태에서 나는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한동안 연락은 없었다. 한 2주정도. 컴퓨터 옆에 붙여둔 메모지가 기억을 되살려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연락을 할 마음은 들지 않았고 그쪽도 그냥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판을 두드리고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었다.
그 뒤에 다시 지하철에서 만났을때는 참으로 당황했었다. 만원의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발견한 나는 주변의 경쟁상대라고는 나보다 한두살 많은 인간들이라는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던져서 자리를 차지했다. 멀리사는 친구를 만나고 오는길이라 꽤나 피곤했고 나는 곧 잠에 빠져 들었다.
[이번역은-]
익숙한 안내방송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내려야할 정거장에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안내방송은 지하철 입구와 승강장 사이의 폭이 넓다는 소리를 반복했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러면 승장장을 보수하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추슬렀다.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어떤 사람이 자리에 곧 앉았고 나는 꽤나 재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돌아봤다. 역시 아줌마였다. 뭐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기 전에 창문으로는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그녀였다. 와플상점에서 만났을때와는 다르게 잘 차려입고 있었다. 어디를 가려는건지 다녀오는건지야 모르지만.
[문이 열립니다.]
지하철의 방송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일단 나는 걸어나왔다. 안그랬으면 뒤쪽에서 날 떠미는 불쾌한 경험이나 하게 될테니까.
"안녕."
"안녕."
사람들이 전부 나오자, 그녀는 지하철로 들어가서 문앞에 섰다. 나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마주봤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리속에서는 '우연히 몇번만나면 필연이라는데 그게 몇번이더라?' 따위의 생각을 하고있었다.
"어디로 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소개팅을 했을때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이상한건 아니었다.
"아, 집.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이거든. 너는 어디로 가?"
"아 나는-"
그 순간 취익 소리를 내면서 지하철의 문이 닫혔다. 그녀는 입술을 몇번더 달싹이다가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그녀가 보이자 않을때까지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며칠전에 사둔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고 그뒤로 우리는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디링 하는 소리와 함께 인스턴트 메신저에 접속한 내게 누가 말을 걸어왔다. 주황색 불빛이 바탕화면의 바에서 반짝이면서 나에게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약하게 밝아진 창 밖에서는 어느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저 기묘한 것은 왠지 내 마음에 들었고 나는 한마디를 중얼거리며, 가슴에 새기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는 지금 나와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고있을까...."
이거요? 실화랑 허구랑 섞었어요. 실화인것도 꽤나 넣었습니다. 가령. 새벽 4시에 일어난거 (...)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할일: 무엇이든 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