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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at 2007-12-02 03:50:49 0 comment

저라는 인간은 비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적부터 너무 강해서 오히려 느낌을 지워버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왠만한 비는 맞는것을 더 즐겼으니 말 다했지요. 가끔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집에 우산을 두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온몸에 내리는 약한 가랑비를 맞으면 전 꽤나 행복해했습니다.
통계수업이 있는 교실에서 다음 수업으로 가는 길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식당을 지나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다른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조금 오르는 길이지요. 문으로 가기까지는 조금 걸어야 하기에 요즘처럼 추운날에는 혼자 걸을때는 식당길을 훨씬 애용합니다만, 오늘은 그 길을 내버려 두고 혼자서 문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갑작스러우면서도 조용한 비는 오래간만이었고, 그 차가움이나 고독함이 다른 비에 비해서 순도높았기때문에, 그 때문이라도 비를 맞고 싶었지요. 방금 교실에서 나와서 한껏 덥혀진 몸에 차가운 비가 가볍게 두드리자 곧 시원해졌습니다. 약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을 걸으면서 저는 약간 모자르게 비를 맞았습니다.
다음 수업은 12학년에 대부분 여행을 떠나서 자습이었습니다. 저 역시 12학년이지만 저번에 받은 낮은 점수의 SAT가 마음에 걸려 여행을 취소하고 학교에 남았습니다. 배정된 책상에 앉은 저는 검은색 바인더 사이에 끼워둔 노트를 꺼내 뒷장을 펼쳐 이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그속에 담아둔 가난하고 모자른 시어를 꺼내 적어달라고 제게 말을 걸었지만, 그것들은 꺼내기위해 필요한 열쇠와도 같은 시작의 시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래간만에 약간 긴 글을 쓰기 시작헀습니다.
어찌보면 저에게 비를 맞는다는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에 가까운 일입니다. 비를 맞다보면 차분해지고, 시를 쓰고 싶고, 어울리지않는 로맨틱한 생각 몇개를 떠오르게 해줍니다. 어제 저녁에 한가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해 제게 엄청난 후유증을 던져 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가 남긴 후유증인지 이런 빗속에서는 사랑들이 조그맣게 싹틀것이라고, 그러나 그것들은, 그 조그맣고 아름다운 사랑들은 전부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리움으로 아름답게 남아서 이 비와 함께 어딘가에서 고독을 품으며 자라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뒤이어 따라왔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라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도서관으로 옮기고 자리에 앉기 전에 창밖을 바라보니 비는 올때처럼 아무런 표식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그쳐있었습니다. 공기는 여전히 그 톡특한 차가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비는 왠지 다시 내릴것 같지는 않습니다.
입고있는 스웨터가 몸을 따뜻하게 덥혀줍니다. 도서관에 있는 삼면이 막힌 나무책상은 적당히 차갑습니다. 그 책상위에 노트를 올려두고 몸을 잔뜩 웅크린채 여전히 저는 이 글을 적어내려가지요. 비 때문에 시작한 이 글은 비가 그쳣으니 이만 끝내야 하지요.
겨울비가 한동안 다시오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밖의 날씨는 점점 차가워지니까 이제 곧 이곳에서도 눈을 볼 수 있겠지요. 눈이 많이 내려서 학교가 임시휴교령을 내렷으면 하는게 저의 자그마한 현재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기를 바랍니다.
모든것과 어우러져 사라지는 비가 모든것을 덮어 최후에는 주위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소거하는 눈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꽤나 아이러니한 꿈이지만 말이죠.
2007년 11월 29일
비가 잠깐 내린 점심 전에
은혈의 륜/리렌시아/김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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