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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보티 공연 후기
at 2006-05-27 09:17:36 0 comment

꿈만 같은 하루였다. 내한공연 발표가 있고서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처음에는 기다림이 꽤나 지루한거같이 느껴졌지만 어제의 감동은 순식간이었다. 2006년 투어중인 크리스 보티가 드디어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의 도쿄, 오사카, 나고야 블루노트에서 8일간의 대장정을 거치고서(18~25일) 어제 바로 또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했다. 소니뮤직으로 이적 이후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덩달아서 그의 투어일정도 상당히 빡빡해졌다. 당장 올해 공연 일정만 봐도 거의 200회 가까이 라이브를 뛰러 지구 한 바퀴를 도는거 같으니 말이다. 사실 재즈의 불모지인 한국에 그가 오리라고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던게 국내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연주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국내에도 많은 팬이 생겨났고 세계적으로는 케니 지 다음가는 최고의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으로 발돋움했다.
5시30분쯤에 집을 나서서 공연장인 올림픽홀로 향했다. 7시가 조금 안 되서 도착해보니 이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확실히 여성관객이 눈에 띄게 비중이 높았다. 뭐 스무스 재즈계의 귀공자로 불리는 사람인만큼 그만한 반응은 당연한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픈은 7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내부 사운드 체크 문제로 오픈 시간이 좀 지연됐고 공연 시작도 덩달아서 늦어져버렸다. 그렇게 지루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좌석에 앉아있는 순간 조명이 소등되면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무대 한 구석에서 주인공인 크리스 보티가 나오자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어느새 세션들이 자리를 잡고서 공연이 시작됐다. 한국에 동행한 세션으로는 빌리 차일즈(피아노), 마크 화이트필드(기타), 팀 라피바(베이스), 빌리 킬슨(드럼)이 함께했다. 그리고 장소가 홀 규모인만큼 무대가 잘 안 보이는 뒤쪽의 관객을 위해 프로젝터를 좌우로 두대씩 설치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의외로 프로젝터가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껴졌다. 사실 라이브라는게 그야말로 집에서 스테레오로는 느낄수 없는 라이브에서만의 살아있는 연주와 무대의 주인공들과의 한 자리에서 분위기를 같이 나누는게 중요한거지 얼굴을 보러 오는건 아니지 않는가?(얼굴이라면 공연후의 사인회도 있었으니) 누군가가 라이브에서 프로젝터로 공연을 감상하는거라면 차라리 DVD로 보는게 낮다는 말을 했었는데 어제 그 말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을 느꼈고 또 오히려 공연 자체에만 몰입하는데 의외의 방해요소중 하나로 작용했다. 그럼 어제 무대에서 선보였던 곡중 알고있거나 또 기억나는 곡들만 몇개 적어보자면...
When I Fall In Love
What'll I Do
Cinema Paradiso
One For My Baby
A Thousand Kisses Deep
Good Morning Heartache
Flamenco Sketches
공연씩이나 갔다오기는 했지만 사실 그의 앨범을 가지고 있고 또 들어본 것이라곤 When I Fall In Love 이 앨범 한장이 전부라서 처음 듣는곡도 많았고 그나마 그의 해설이 아니었으면 무슨 곡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뻔한것도 꽤나 많았다. 게다가 공연시간 자체도 90분정도 된거 같았으니 그렇게 많은 곡을 연주하진 못했다. 다만 어제 공연에서 한가지 인상깊었던것이라면 재즈에서 중요시 여겨지는 요소중 하나인 임프로비제이션, 즉흥연주를 현장에서 처음으로 봤다는 것이다. 특히 이때 즉흥연주에서 가장 빛을 발한 연주자들이라면 역시 기타의 마이크 화이트필드와 드럼의 빌리 킬슨이었을것이다. 마이크 화이트필드의 신들린 기타솔로와 빌리 킬슨의 디테일함과 파워풀함을 동시에 겸비한 드러밍에서는 관객들이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또 그의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것이 몇몇 곡마다 연주에 들어가기 앞서 그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것이 참 좋았다. 물론 영어로 했으니 100% 이해를 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국인이라는걸 감안해준건지 제법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발음해줘서 꽤나 고마웠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반으로 꼽히는 앨범인 'Kind Of Blue'의 수록곡인 'Flamenco Sketches'라던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명곡 'Cinema Paradiso', 필자가 목요일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리퀘스트를 신청해서 이날 더욱 감동이 깊었던 'What'll I Do'등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그의 연주덕분에 공연관람에도 많이 도움이 됐고 모르고 지나칠 뻔한 곡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특히 마일스 데이비스의 커버같은 경우 정말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그게 무슨곡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멋진 무대매너. 오늘 공연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되지만 어제도 그의 돌발행위(?)덕분에 많은 여성관객들의 가슴이 꽤나 아팠을것이다. 공연 중간쯤에서 난데없이 무대에서 내려와서 플로어석에 있는 한 여성관객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연주를 선사하자 공연장에 있던 모든 여성관객들의 질투어린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단 그뿐인가? 메인 세트가 끝나자 관중들의 환호가 계속 이어지니 당연히 보란듯이 앵콜무대를 위해 그가 나오자 몇몇 흥분한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뛰어나갔는데 여기서 정말 압권이었던게 그런 열광적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더니 'Come on!' 하면서 관객들을 오히려 도발(?)하는 그의 자태에는 정말 할말을 잃었다.(그리고 얼마 안 있어 플로어석의 관객들은 모조리 무대앞으로 뛰어나갔고 스탠드에 있던 관객들 몇명도 세이프티 라인을 뛰어넘어서 돌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밖에 그의 mc에서 묻어나는 유머감각과 관객친화력은 과연 대단할뿐이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 사인회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3월달에 혼다 마사토 공연때 한번 뒤통수를 맞은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어쩌면 사인 이벤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CD를 챙겨서 나섰는데 역시나 공연중 mc에서 본인 스스로 공연후 사인회를 한다는 멘트에 심중에 미소를 띄우며 공연후 재빨리 나와서 사인행렬에 끼어들었다. 얼마 후 나오는 크리스 보티와 그의 밴드 세션에 다시 한번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댔고 사인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제법 앞에 있었기에 금방 받을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저도 모르게 긴장해버린 탓에 그가 'How are you?' 하며 공연소감을 묻는데 말이 후딱 튀어나오질 못했다.;; 그렇게 엉겁결에 사인만 받고 악수를 하고서 어느새 세션들과 일일히 악수하며 사인을 하니 순식간에 다섯명의 사인이 모두 모였는데 이래저래 아쉬움이 좀 많이 남았다. 특히 디카가 없어서 그와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한 덕에 다른 관객들이 그와 함께 사이좋게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는 여러모로 부럽기만 했다.(여담이지만 역시나 크리스 보티의 댄디함에 수많은 여성관객들이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면 좋은 말은 이제 다 했으니 뒷담화도 좀 해야될거 같다. 우선 기획사의 처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던게 공연준비에 너무 소흘한게 아니었나 싶었다. 공연장은 약4천석짜리 규모의 홀인데 오픈을 공연시작 약30분전에서야 한 덕분에 공연이 시작하고도 뒤늦게 입장하는 사람들로 약간의 어수선함때문에 약간 짜증이 치밀었다. 사운드 셋팅에도 문제가 있는 덕분에 공연시간이 한참이나 지연되는 등 거슬리는 요소가 제법 있었다. 한편 관객들의 에티켓 문제도 심각했는데 공연중에 핸드폰을 들춰보는 사람들 덕분에 시선에 거슬렸고(극장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문자가 도착하는 신호음까지 나기도 했다. 또 화장실은 미리 갔다올것이지 왜 그렇게 다들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공연중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것인지 차분해야 될 공연에 어수선한 순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사진과 녹취문제. 사실 필자도 이런 말할 입장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도대체 초상권에 대한 개념들이 왜 이리도 없는것인가? 물론 앵콜에서의 플래쉬 연발은 그래도 오히려 본인이 즐기는거 같았으니 상관 없다 치더라도 공연중에 난데없이 번쩍번쩍 거리는 플래쉬는 단순히 신경이 거슬리는걸 떠나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을 졸였다. 실제로 전에 혼다 마사토 공연에서도 몇몇 개념없는 카메라 플래쉬 덕분에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낸적이 있었기에 행여나 죄없는 나머지 관객한테도 미운털 박혀서 다시는 안 오겠다고 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으니. 그나마 찍은건 별 수 없으니 부디 온라인상으로 유출하는 치명적인 짓거리는 삼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에 개인적인 불만을 좀 표하긴 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우리나라에 크리스 보티 그가 와서 공연을 했다는거 자체에 너무나도 고마웠을 따름이고 이런 멋진 공연을 보게되서 필자 역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아까 전자에서 언급한대로 당황한덕분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버벅거렸던게 너무나도 아쉬웠는데 부디 올해 공연에서 좋은 인상만 한가득 가지고 가서 다음 투어에서도 꼭 우리나라에 다시 찾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면 그때에는 반드시 여러 아쉬웠던 요소들을 충족시켜서 어제의 감동을 배로 느낄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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