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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태권브이를 위해 필요한 것
at 2005-05-09 12:56:00 0 comment

한때 잠시 불어닥쳤던 태권브이 부활 붐에 편승해서, 지금까지 몇 가지의 태권브이 부활 프로젝트가 생겨났다가는 사라지고, 또 생겨났다가는 사라지고는 했지만, 그것들을 보면서 많은 분들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것은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과연 태권브이를 제대로 부활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전의 태권브이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겠지요. 사실 어떤 작품이던지 리메이크를 만들고자 하면 예전 작품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이해가 기본 중의 기본일텐데, 불행히도 태권브이 리메이크 계획에 있어서는 이미 이 단계에서부터 뭔가 잘못된 물건들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일단, 원형이 되는 구 태권브이 삼부작부터가 현재 완전 복원이 되어있지 못하고, 이후에 만들어진 태권브이들이 상업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많은 부분 포기했던 것도 현재 뚜렷한 '태권브이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지 못한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태권브이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바로 '태권도를 하는 로봇'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태권브이의 정체성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태권도라고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습니다만, 태권도가 곧 태권브이의 정체성 그 자체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전의 태권브이 부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이 '태권도'를 최우선적으로 놓고 진행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 결과물 중에서는, 하드웨어적으로 로보트 태권브이와의 유사점을 거의 찾기가 힘든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태권도를 하는 로봇이라고 해서 태권브이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결과적으로 태권브이의 정체성을 더욱 약화시켰다고 하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슈퍼 태권브이를 비롯하여 일본의 로봇에 머리부분만 태권브이처럼 바꾼 로봇들이 태권브이의 이름을 달고 태권도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태권브이로 받아들여 줬으니까요.
바로 그러한 역사때문에,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태권브이에 대해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그 독특한 머리부분과 태권도 밖에는 없는 상태입다. 문제는, 신 태권브이의 기획을 내세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머리부분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조차도 부정하려고 했다는 것이지요.
확실히 태권브이의 입 부분이 마징가 계열과 약간 닮아있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태권브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머신 블래스터'나 '대공마룡 가이킹' 등을 생각하면 그정도의 유사성은 사실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수많은 태권브이의 하드웨어적 정체성이 바로 그 머리부분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머리부분의 변경은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라 보여집니다.
일부 디자이너들은 '보다 한국적'이라는 기치아래 상투 형상이라던가 기타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들을 시도하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적어도 태권브이가 태권브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리 부분의 기본 실루엣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몸체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디자이너들은 태권도 특유의 유연한 움직임을 위해 에반게리온같은 생체적 라인이나, 메카닉으로서의 리얼리티 도입을 위해 건담처럼 관절 구동축이 분명한 형상의 디자인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로 움직이는 태권브이 로봇이 아니라, 그 옛날의 태권브이의 재미를 그대로 가진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과거의 태권브이의 액션을 보았을 때 거기에 위화감을 느낌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요? 사실 지금의 눈으로 보더라도, 실제 태권도의 움직임을 철저히 분석하여 만들어진 태권브이의 액션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값싼 광선효과에나 의존하면서 땅에는 발도 제대로 딛지 못하는 모 로봇 애니메이션의 고철들보다는 훨씬 낫지요.
그리고, 흔히 '구식'이라고 매도당하는 초대 태권브이의 그 투박한 몸매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태권브이보다 더 구식인 마징가나 겟타로보의 디자인조차도 제대로 그 특성을 살려내면서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하고 있는데, 태권브이의 경우에는 그냥 건담이 좋다면 건담, 에바가 좋다면 에바라는 식으로 최신 유행 디자인만을 적당히 갖다붙이려는 경향이 강했죠.
저는 오히려 이런 구태의연한 오피셜(?) 프로젝트 보다도, 오히려 아마추어들의 태권브이 디자인쪽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마징가와 겟타와는 또 다르게, 과거의 기본적인 컬러링과 실루엣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근접격투 전용 로봇이라는 태권브이의 특성을 더욱 발전시킨 좋은 디자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태권브이는, 불행하게도 마징가나 겟타 등 일본의 슈퍼로봇들 이상으로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거쳐왔던 역사가 있는 로봇입니다. 그만큼 새로운 태권브이를 만듦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정체성의 재확립이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직까지도 완결되지 못한 구 태권브이의 복원작업 완료와, 이를 바탕으로 한 태권브이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보급이 우선 필수적입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다시 확립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튼튼한 기반 위에서 새로운 태권브이의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시나리오 역시 무모하게 스타크래프트같은 현대 유행에 맞춘다던가, 한단고기같은 민족주의 환타지적 요소를 강조하는 것 보다는, 과거의 태권브이가 가지고 있었던 평화 애호의 정신과 소수자들의 아픔, 자기 희생의 미덕 등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당장 생각나는대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꺼내봤지만 아직은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많군요. 이글루스 가든용 글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작성된 글인 만큼, 이 글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도 많은 고찰과 토론이 오고 갔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저의 바람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할일: 로보트 태권브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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