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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과 근친 교배의 비극
at 2005-03-13 01:17:01 0 comment

이번에 얘기하려는 것은 요즘 말이 많은 '데스티니 건담'입니다. 이전의 프리덤 건담 때도 나왔던 얘기입니다만, 이번의 데스티니 건담 역시 예전의 건담들에게서 가져온 이런저런 모티브를 조합했다는 점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지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정작 문제되는 점은 바로 이전부터 지적되어왔던 건담끼리의 근친 교배가 서서히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프라모델 판매량을 보면 'SEED'의 건담 프라모델 중 스트라이크 건담은 많이 팔렸지만 다른 건담들은 판매고가 영 시원치 않았다고 하지요. 반다이는 결국 스트라이크를 MG를 거쳐 PG로까지 발매함으로써 최대한 단물을 뽑아먹으려 했고, 어느정도는 그 성과를 뽑은 모양입니다. 하긴, 스트라이크는 애초에 오오카와라씨 디자인도 아니었고 그래도 SEED쪽 건담 중에서는 제일 나은 편이었죠.
사실 예전의 '건담'의 전성 시대때는, 여러가지 이종 교배가 성행했었습니다. 당장 'Z 건담'만 해도, Z 건담 자체가 이미 발키리나 엘가임 등 그때까지 나왔던 다른 로봇들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MS 들 역시 그때까지 등장했던 많은 로봇 디자인의 장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었지요.
그것이 '역습의 샤아'로 가면 다시 원점회귀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여러가지 이종 교배로 인해 만들어진 다양한 가능성 위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그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동안 받아들였던 수많은 새로운 요소들이 건담 본래의 장점을 더욱 빛나게 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면서 건담이 받아들일만한 독창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는 거대로봇물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도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의 등장한 용자로봇이나 기타 다른 슈퍼로봇들도 실질적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70~80년대에 완성된 포맷을 새롭게 재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나마 여러가지의 돌연변이적 가능성을 선보였던 G와 W의 디자인은 단지 '돌연변이'였을 뿐,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어놓을 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고, X에 있어서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지요. 이 시기에 나타난 변화는 사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결과라기 보다는 내부적인 파생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문제는 '턴 에이'입니다. 이쪽은... 애시당초 시드 미드라고 하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기존의 계보와는 거의 관계가 없었죠. 일단 참신하다는 면에서는 퍼스트 이후 이만한 디자인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불행히도 이 턴 에이와 턴 엑스 등 시드 미드의 MS 디자인 라인이 이후의 건담에 반영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역시 아무리 이종 교배라고는 해도 기본적인 코드가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태어난 SEED는, 그나마 최초의 5기는 어느정도의 '바리에이션'을 선보입니다만, 디자이너가 오오카와라씨 한 명으로 좁혀진 후는 그러한 다양성 조차 만들어내기 힘들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방법론이 바로 가장 손쉬운 방법인 '건담끼리의 근친교배' 였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여러가지 면에서 결코 좋은 결과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기존 디자인의 재활용이 계속된다는 것은 결국 근본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것과 직결됩니다. 또한, 기존 디자인들의 장점만을 따다 붙인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고도 생각되겠지만 그것이 서로 다른 계열도 아닌 같은 계열의 디자인일 경우에는, 그 부조화도 오히려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입니다.
서로 다른 계열의 디자인이 하나로 합쳐질 때는 물론 더 큰 부자연스러움이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한 디자인의 수정이나 조정이 이루어지게 마련이지요. 때로는 이 과정에서 디자인끼리의 '화학적 융합'이 일어나게 되어 전혀 새로운 물건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Z 건담인 것이지요.
하지만 비슷한 계열의 디자인을 합칠때는 구태여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져서 그다지 큰 수정이나 조정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래 디자인 소스의 특징은 보다 뚜렷하게 살아나게 되지만, '화학적 융합'을 거쳐서 보다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정착된 디자인과는 달리, '물리적 융합'에 그치는 경우는 마치 키메라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이 더욱 눈에 띄는 법입니다.
그나마 SEED의 디자인들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느정도 살아나는 이유는, 유능한 작화감독들이 이런 '물리적 융합'의 디자인에 어느정도 손을 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일어나는 '화학적 융합' 덕분에, 적어도 애니메이션 상에서의 SEED 건담들은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보이지요.
이번 데스티니 건담의 성패는 역시 작화감독들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봅니다만, 지금까지의 임펄스 건담의 연출로 보아하니 상당히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콘티 재활용이나 셀 재활용 등 이미 여러가지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프리덤 때 만큼의 퀄리티가 나올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듣자하니 프리덤의 후계기 이름이 가칭인 프리덤 II에서 델타 프리덤으로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군요. 이쪽은 아직 미확인 정보이고 디자인조차 확인하지 못해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역시나 이쪽도 건담끼리의 근친 교배 디자인의 산물이라면, 그 앞날은 정말로 걱정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사실... 오오카와라씨와 감독인 후쿠다가 한번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이종 교배'의 건담을 만들어낼 수는 있습니다. 당장 오오카와라씨는 보톰즈, 가리안, 용자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디자인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막말로 지금 당장 신형 건담의 가슴에 사자머리를 박아버릴 용기만 있다면 못할 짓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거대로 또 엽기소리를 듣기는 하겠지만, 지금도 일부 생각없는(용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용자물' 소리나 듣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대놓고 변신합체든 사자머리든 초필살기든 아무거나 좋으니 좀 새로운 것을 집어넣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디자이너 혼자의 독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죠. 사실 후쿠다 감독에게 그렇게까지 질러버릴 용기가 있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어차피, '빛의 날개'를 달고 '갓 핑거'를 쓰는 건담이 활개치는 세상인데, 그깟 용자 건담 좀 나오면 어떻습니까. 차라리 생체 유닛이라도 넣어서 에바 건담이 나오면 어떻습니까.
이젠 어디로 어떻게 질러도 좋은 디자인 소리는 듣기 힘들다면, 차라리 후대를 위해서라도 여러가지 가능성에 도전이라도 해보는 것이 그나마 크리에이터로서의 의지가 아니려나요. 하긴... 후쿠다처럼 적당한 인기요소나 버무려서 보신이나 추구하는 감독에게서 더이상 뭘 바라겠습니까만.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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