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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세계, 그리고 거대로봇
at 2005-02-22 18:29:26 0 comment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생겨난 하나의 사조로서 '세카이계'(원어대로 세카이카이라고도 하지요)라는 사조가 있습니다. 세카이는 일본어로 세계라는 뜻이죠. 굳이 우리말로 풀이하면 '세계물'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요. 이 사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개인의 내면의 문제와, 세계의 존망에 대한 문제가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세계관을 다룬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대부분의 인간이라는 것은 '세계' 앞에서는 그야말로 미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지요. 특히나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기 십상인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죽든, 죽지 않든, 세계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요.
정말 한 개인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자리까지 오르려면, 엄청난 재능과 운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간단한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거대로봇에 타는' 것이었지요. 정말 '마징가 Z'처럼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그 개인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대치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소위 '슈퍼로봇물'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세계의 수호자나 인류의 수호자가 됨으로써 '세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됩니다. 이후 거대로봇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병기로서 취급되는 '리얼로봇'이 등장한 이후에도 그러한 사조는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리얼로봇 전성기라고 불리운 시기에 발표된 대부분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들은 여전히 '세계'와 대등한 존재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과거의 슈퍼로봇물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재의 세계를 '지키려는' 존재임에 비해 리얼로봇물의 주인공들은 대개 세계를 '바꾸려는' 입장에 선다는 것이 차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초창기 슈퍼로봇의 경우 '우리가 사는 세계'와 유사한 세계관에서 활약하는 이야기가 많았던데 비해, 리얼로봇의 경우는 현실 세계 이상으로 모순으로 가득찬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그람도, 자붕글도, 단바인도, 보톰즈도, 그리고 엘가임에 이르기까지 비록 로봇 한대의 전투력은 세계를 변혁시키는데 이르지 못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동료'들과 함께 작은 '사회'를 구축함으로써 개인에서 세계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다란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과 그 동료들의 활약은 결국 세계 전체에 대해 의미심장한 변화를 이끌어내지요.
이러한 사조는, 일본에서는 이미 먼 옛날에 좌절되어버린 학생운동이나 기타 사회운동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가진 애니메이터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쪽을 파고 들면 일본 사회의 '미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전공투라던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것이 바로 'Z 건담'입니다. 그나마 전작인 '건담'에서 보여주었던 인류의 각성과 혁신의 가능성마저 정면으로 부인해버린 Z 건담은, 결국 세계 앞에서 한 인간의 투쟁이란 얼마나 무기력한가에 대해 정면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죠. 이쪽은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의 '가상의 혁명'을 제시하기 보다는, 감독 자신의 현실적인 좌절까지 반영된 철저한 '미완의 혁명'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토미노 건담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미완의 혁명'과 함께 '세계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역습의 샤아'에서 기적의 힘으로 인류를 구한 아무로의 희생마저, 결국 세계를 바꾸지는 못하지요. 아마 샤아의 액시즈 낙하가 그대로 성공했어도 마찬가지였겠습니다만...
이후에도 물론 세계를 구하는 로봇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위치는 어딘가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왜소해지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세계'와 맞먹는 강력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주인공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보다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주인공들이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실제 사회에서든, 아니면 '전장' 에서든 간에 '인간관계'로 대표되는 '사회'를 중시하는 작품들도 줄어들기 시작하지요.
그런 가운데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에반게리온입니다. 이 에반게리온에서는 간만에 '세계'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주인공인 신지 자신은 그 문제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어가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실은 세계의 운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거대로봇'의 힘만으로 세계와 대등하고자 했던 마징가 Z의 코우지 이상으로 리얼하게 묘사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거대로봇' 조차 일종의 소품으로 전락하게 되고, 주인공 신지 자신의 내면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열쇠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고, 개인이 파악하는 세계는 개인의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이러한 '주관적'인 세계관은 결국 더 이상 '거대로봇'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세카이계'로 명명된 많은 작품들은, 이렇듯 개인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표리일체라고 하는 '주관적' 세계관을 충실히 보여줍니다. 거대로봇과 같은 '상상 속의 객관적 물리력'은 이제 그 존재 가치를 잃어가고, 사람들은 굳이 '거대한 힘'을 동경하지 않더라도 자기 내부의 가능성만으로도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한 현대의 매스미디어 문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TV나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는 전세계적인 동향이나 흐름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물론 간접적으로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겠지만, 그것을 피부로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리하여, 평범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세계는 자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지극히 좁은 세계와,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세계 전체의 시각으로 양극화됩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나도 커다란 공간에는 감히 평범한 개인이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에반게리온'이 히트한 것에는 실제로 이렇게 '개인'과 '세계'밖에 접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세계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과거 '9/11'이라고 하는 세계사에 남을 대사건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 한국의 언론보도들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얘기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미디어'란 어디까지나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뜻에 따라 진실을 가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알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주관적 세계관'이란 그 깊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뻔한 것입니다. 그나마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미디어가 떠먹여주는 정보대로 세계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또한, 한 개인의 내면세계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동등하게 파악하는 관점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나머지,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이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과정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카이계'에 심취한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세계의 진리이며 자신의 행동이 세계의 법칙이라고 하는 주관적인 세계관을 실제 세계에까지 적용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주관적인 세계관이 실제 존재하는 세계와 일치할 리가 없습니다. 어지간히 문제가 있는 감각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은 각각의 개인들도 그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음모론'이라던가, 아니면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묻혀져 버렸어야 할 설익은 계급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이미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채, 사람들의 '주관적인 세계'가 어째서 '현실의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도구적 목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또한 그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적인 박해와 파멸 뿐이지요. 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 사람들은 이마저도 스스로 무시하고, 또 거부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오타쿠, 히키코모리 같은 개념으로 직결되는 것이지요. 그들의 눈에는 '자기 자신'과 '세계'는 보이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 관계나 자신들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새로운 팩터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개인'과 '세계'를 접속시켜 줍니다. 익명성이라는 방패 아래에서 현실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세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실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이야 말로 진리이고, 자신의 행동이야말로 세상의 섭리라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인터넷 문화의 타락으로 직결되게 마련이지요. 어차피 '사회'도 모르고, '인간관계'에도 서투른 인간들이 모여봤자 제대로 된 '세계'가 만들어질 리가 없을테니까요.
솔직히, 이러한 분위기를 당장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점점 복잡화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활동영역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세계'의 정보들은 각각의 개인들에게 주관적 세계관만을 심어줄 뿐입니다. 정작 '사회' 속에서 개인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고, 이미 사회의 기득권을 쥔 계층들은 그런 사람들을 그다지 반기지도 않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TV나 인터넷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이 '모두 진실'내지는 '대부분 진실'이라고 믿는 우매함을 떨쳐버리는 방법일 것입니다. 또한,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이나 이론들을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서로 비교해보고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지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자기 주변의 세상들을 찬찬히 관찰해보고,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조금씩 키워나가게 된다면, 적어도 조금은 더 진짜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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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신력 고갈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도 제대로 써지기나 했는지 좀 의문이군요. (사실 언제나 그렇지만) 요 며칠간은 푹 쉬면서 이래저래 재충전도 해야 할 듯...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대부분의 인간이라는 것은 '세계' 앞에서는 그야말로 미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지요. 특히나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기 십상인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죽든, 죽지 않든, 세계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요.
정말 한 개인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자리까지 오르려면, 엄청난 재능과 운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는 간단한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거대로봇에 타는' 것이었지요. 정말 '마징가 Z'처럼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그 개인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대치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소위 '슈퍼로봇물'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세계의 수호자나 인류의 수호자가 됨으로써 '세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됩니다. 이후 거대로봇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병기로서 취급되는 '리얼로봇'이 등장한 이후에도 그러한 사조는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리얼로봇 전성기라고 불리운 시기에 발표된 대부분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들은 여전히 '세계'와 대등한 존재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과거의 슈퍼로봇물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재의 세계를 '지키려는' 존재임에 비해 리얼로봇물의 주인공들은 대개 세계를 '바꾸려는' 입장에 선다는 것이 차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초창기 슈퍼로봇의 경우 '우리가 사는 세계'와 유사한 세계관에서 활약하는 이야기가 많았던데 비해, 리얼로봇의 경우는 현실 세계 이상으로 모순으로 가득찬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그람도, 자붕글도, 단바인도, 보톰즈도, 그리고 엘가임에 이르기까지 비록 로봇 한대의 전투력은 세계를 변혁시키는데 이르지 못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동료'들과 함께 작은 '사회'를 구축함으로써 개인에서 세계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다란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인공들과 그 동료들의 활약은 결국 세계 전체에 대해 의미심장한 변화를 이끌어내지요.
이러한 사조는, 일본에서는 이미 먼 옛날에 좌절되어버린 학생운동이나 기타 사회운동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가진 애니메이터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쪽을 파고 들면 일본 사회의 '미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전공투라던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것이 바로 'Z 건담'입니다. 그나마 전작인 '건담'에서 보여주었던 인류의 각성과 혁신의 가능성마저 정면으로 부인해버린 Z 건담은, 결국 세계 앞에서 한 인간의 투쟁이란 얼마나 무기력한가에 대해 정면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죠. 이쪽은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의 '가상의 혁명'을 제시하기 보다는, 감독 자신의 현실적인 좌절까지 반영된 철저한 '미완의 혁명'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토미노 건담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미완의 혁명'과 함께 '세계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역습의 샤아'에서 기적의 힘으로 인류를 구한 아무로의 희생마저, 결국 세계를 바꾸지는 못하지요. 아마 샤아의 액시즈 낙하가 그대로 성공했어도 마찬가지였겠습니다만...
이후에도 물론 세계를 구하는 로봇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위치는 어딘가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왜소해지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세계'와 맞먹는 강력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주인공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보다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주인공들이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실제 사회에서든, 아니면 '전장' 에서든 간에 '인간관계'로 대표되는 '사회'를 중시하는 작품들도 줄어들기 시작하지요.
그런 가운데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에반게리온입니다. 이 에반게리온에서는 간만에 '세계'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주인공인 신지 자신은 그 문제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일상에서 부딪치며, 겪어가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실은 세계의 운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거대로봇'의 힘만으로 세계와 대등하고자 했던 마징가 Z의 코우지 이상으로 리얼하게 묘사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거대로봇' 조차 일종의 소품으로 전락하게 되고, 주인공 신지 자신의 내면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열쇠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고, 개인이 파악하는 세계는 개인의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이러한 '주관적'인 세계관은 결국 더 이상 '거대로봇'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세카이계'로 명명된 많은 작품들은, 이렇듯 개인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표리일체라고 하는 '주관적' 세계관을 충실히 보여줍니다. 거대로봇과 같은 '상상 속의 객관적 물리력'은 이제 그 존재 가치를 잃어가고, 사람들은 굳이 '거대한 힘'을 동경하지 않더라도 자기 내부의 가능성만으로도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발달한 현대의 매스미디어 문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TV나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는 전세계적인 동향이나 흐름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물론 간접적으로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겠지만, 그것을 피부로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리하여, 평범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세계는 자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지극히 좁은 세계와,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세계 전체의 시각으로 양극화됩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나도 커다란 공간에는 감히 평범한 개인이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에반게리온'이 히트한 것에는 실제로 이렇게 '개인'과 '세계'밖에 접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는 세계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냐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과거 '9/11'이라고 하는 세계사에 남을 대사건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 한국의 언론보도들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얘기들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미디어'란 어디까지나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뜻에 따라 진실을 가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알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주관적 세계관'이란 그 깊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뻔한 것입니다. 그나마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미디어가 떠먹여주는 정보대로 세계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또한, 한 개인의 내면세계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동등하게 파악하는 관점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나머지, 실제로 존재하는 '개인'이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과정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카이계'에 심취한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세계의 진리이며 자신의 행동이 세계의 법칙이라고 하는 주관적인 세계관을 실제 세계에까지 적용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주관적인 세계관이 실제 존재하는 세계와 일치할 리가 없습니다. 어지간히 문제가 있는 감각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은 각각의 개인들도 그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음모론'이라던가, 아니면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묻혀져 버렸어야 할 설익은 계급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이미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채, 사람들의 '주관적인 세계'가 어째서 '현실의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도구적 목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또한 그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적인 박해와 파멸 뿐이지요. 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 사람들은 이마저도 스스로 무시하고, 또 거부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오타쿠, 히키코모리 같은 개념으로 직결되는 것이지요. 그들의 눈에는 '자기 자신'과 '세계'는 보이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 관계나 자신들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새로운 팩터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개인'과 '세계'를 접속시켜 줍니다. 익명성이라는 방패 아래에서 현실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세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실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이야 말로 진리이고, 자신의 행동이야말로 세상의 섭리라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인터넷 문화의 타락으로 직결되게 마련이지요. 어차피 '사회'도 모르고, '인간관계'에도 서투른 인간들이 모여봤자 제대로 된 '세계'가 만들어질 리가 없을테니까요.
솔직히, 이러한 분위기를 당장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점점 복잡화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활동영역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세계'의 정보들은 각각의 개인들에게 주관적 세계관만을 심어줄 뿐입니다. 정작 '사회' 속에서 개인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고, 이미 사회의 기득권을 쥔 계층들은 그런 사람들을 그다지 반기지도 않습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TV나 인터넷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들이 '모두 진실'내지는 '대부분 진실'이라고 믿는 우매함을 떨쳐버리는 방법일 것입니다. 또한,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이나 이론들을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서로 비교해보고 의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지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자기 주변의 세상들을 찬찬히 관찰해보고,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조금씩 키워나가게 된다면, 적어도 조금은 더 진짜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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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신력 고갈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도 제대로 써지기나 했는지 좀 의문이군요. (사실 언제나 그렇지만) 요 며칠간은 푹 쉬면서 이래저래 재충전도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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