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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로봇과 완구
at 2005-04-19 22:52:33 1 comment

물론 그것은 저처럼 거대로봇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바람직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국내에서 보이는 반응 중에서는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의견들이 좀 섞여있길래, 결국 이렇게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쓰는 글은 단순히 저의 의견이라기 보다는, 나름대로 거대로봇을 좋아하고 거대로봇물을 여러가지로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의 신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일부의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의 골자는 바로 '완구를 전제로 한 로봇물은 좋지 않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인 타겟이 되는 것은 바로 '아쿠에리온', '에우레카' 그리고 '조이드' 입니다. 솔직히 'SEED Destiny'의 경우에는 오히려 프라모델 판촉에는 신경쓰지 않는 듯한 전개가 평가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아예 '반다이의 건프라 장사'에 대한 포기의 마음이 깔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없더군요.
자. 대놓고 말해봅시다. 완구를 전제로 한 로봇물이 왜 나쁩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드는 논거가, 처음부터 완구화를 고려한 디자인때문에 로봇의 디자인이나 액션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거대로봇물을 꽤나 본 사람은, 그런 논거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를 이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애니메이션의 로봇들이 완구에 맞춰서 움직임이 제한된다거나 하는 일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완구와 애니메이션의 관계가 확립된 거대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징가 Z' 시절부터 정말 액션에 필요하다면 관절 구조, 장갑 형상, 형상 비례 등의 물리적 법칙쯤은 간단히 무시해 왔습니다. 만일 정말 마징가 Z가 그 옛날에 나왔던 구식 초합금의 형상에 맞춰서 제작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거대로봇의 역사는 있을 수도 없었겠지요.
그리고 흔히 많이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스폰서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완구스러운 로봇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말은 진실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 스폰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해당 로봇 애니메이션 자체가 아예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차라리 어느정도 저예산으로 만들수 있고, 또한 애니메이션 자체의 판매수익이 바로 제작비 환수로 이어질 수 있는 OVA라고 하면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광고 수입이 없이는 도저히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한 장편 TV 시리즈라도 만들라치면 정말 스폰서의 도움이 없이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스폰서의 요망을 받아들여 완구의 기능을 우선시한 로봇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속출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그 대표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퍼스트 이후 애니메이션화된 모든 건담 시리즈는 결국 스폰서와의 타협을 통해서 태어난 산물인 것입니다.
뭐, 정 그런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애니메이션 제작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좀 더 노력해서 저예산의 OVA라도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계 전체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경향은 결국 애니메이터들 개개의 자기만족은 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흐름을 죽여버리고 만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완구화를 의식한 덕분에 충분한 예산과 TV로의 진출이 허락되어, 여러가지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이들 작품에 대해서 저는 정말 '구국의 결단'이라고까지 평하고 싶습니다. 이들 작품은 비록 여러가지 관련 상품화를 의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세계관이나 스토리는 상당히 참신한 부분이 많고, 메카닉 자체의 퀄리티도 충분히 우수한 편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최근 여러가지로 발전한 완구 기술에 의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잡한 변신합체와 미끈한 실루엣이 양립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제품들이 등장한 탓도 큽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준높은 변신합체 모델의 등장은, 애니메이션 속에서 보여지는 복잡한 '변형'에 자연스럽게 '리얼리티'를 부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폰서들이 제공하는 '안정된 예산'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서 이 안정된 예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실제로 창작 현장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궈본 사람이라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예산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고, 예산이 있으면 살고 예산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 애니메이션 업계의 사정일랑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보태준 것 하나도 없이 상업주의니, 완구위주니 하고 매도부터 해대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로봇물 보지 말고 그냥 딴걸 보라고. 그나마 OVA처럼 완구나 프라모델과는 관련없는 로봇물을 보겠다면, 제작진들에게 조금이라도 직접 수익이 돌아가도록 정식으로 댓가를 치르고(VOD라도) 보라고.
어쨌든, 좋은 물건을 제대로 댓가를 치르고 보는 사람에게 저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고, 어차피 제대로 댓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말이라도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생각입니다. 물론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댓가를 치룰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당연히 댓가를 치르는 것이 최선이겠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지름을 합리화하지 말지어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2005-10-11 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