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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로봇과 캐릭터성에 관하여
at 2005-04-23 04:44:04 0 comment
원래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rgc83님의 'SF로서의 거대로봇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청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그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이 될지는 몰라도 일단 제가 평소에 거대로봇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가지고 몇 마디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하시는 'SF적 관점에서의 거대로봇물'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별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SF로서의 거대로봇물'에 대해 말씀하시는 다른 분들의 말이나 글로 미루어 볼때, 대부분 그런 분들의 입장은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물'을 부정하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씀드리는 기준도 대충 그런 쪽이 될 것 같군요.
예를 들면, 에일리언 2나 매트릭스 레볼루션 등에 나오는 인간형 기계들과, '마징가 Z'나 '건담'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제 입장에서 이들을 구분해주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형의 거대한 기계에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부여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서양과 동양의 감성만의 차이는 아니지요. 비록 합작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서구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트랜스포머' 시리즈 역시 엄연히 '캐릭터'로서 확립된 거대로봇물이고, '파워레인저' 시리즈의 '메가조드'가 먹혔던 것만 봐도, 서구인들이 딱히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은 완전히 '장르'의 차이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앞에서 든 작품들의 예도 있겠지만,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없는 순수한 인간형 기계가 잠시 얼굴을 비칠 뿐이거나, 설사 등장이 좀 많다고는 해도 역시 '캐릭터'로서의 취급이 거의 없는 메카닉 액션물이라면, 이것을 '거대로봇물'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작품 중에서 거기에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역시 '마크로스'나 '보톰즈'겠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두 작품은 특히 'SF로서의 거대로봇'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서 평이 꽤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마크로스'를 비롯한 일련의 시리즈는 '로보텍'으로서 서구에서도 인기가 높지요. 마찬가지로 '로보텍'으로 분류되는 서전크로스나 모스피다 역시, 작품 상에서 로봇이 '캐릭터'로서 취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리얼로봇' 계열과는 거의 무관하지요. 실제로 리얼로봇의 시조라고 말해지는 '건담' 시리즈를 시작으로 하여, '단바인', '엘가임', '레이즈너', '드래구너' 등의 대부분의 리얼로봇 중에서는 로봇 그 자체도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러한 캐릭터성의 유무에 있어서 정말 아슬아슬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패트레이버'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주역 로봇인 잉그램은 세계관이나 메카닉 자체만을 보면 그다지 캐릭터로서의 느낌이 없지만, 연출에 따라서는 캐릭터성이 충분히 살아날 수도 있죠.
실제로 같은 '패트레이버' 작품이라고 해도,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정말 캐릭터 로봇으로서의 활약을 보여줄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편리한 도구로, 극단적일때는 단순한 배경만으로도 끝날 만큼 이 '잉그램'의 속성은 길로 다양합니다. 전 그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드는 편이지만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리얼로봇물' 장르의 특징이 바로 '캐릭터성'과 '도구적 합리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앞서 말한 'SF로서의 거대로봇'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대개 'SF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 또는 미래에 실현가능한 유사과학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부분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속성은 '캐릭터성'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요.
일단 인간형 기계를 '도구'로서만 볼 때, 그 도구로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느정도 과학이나 유사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불가결 합니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가 아닌 이상, 일단 작품상 비중있게 들어가는 '도구'가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것이라면 적어도 시리어스한 SF 작품으로서 성립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겠죠.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에어울프'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에어울프라는 헬리콥터의 정체는 약간 발전된 과학기술이 들어간 미래형 전투헬기일 뿐이지만, 그 황당하리만치 막강한 파괴력과 압도적인 전투능력, 그리고 매회 반복되는 전형적인 히어로물로서의 패턴 덕분에, 이쪽은 로봇도 아니면서도 충분히 '캐릭터'가 되어 있지요.
뭐, '전격 Z 작전'에 등장하는 '나이트 2000=키트'같은 경우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미 충분히 '캐릭터'로서 취급될만 하지만, 똑같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다른 차들과 비교해서 단연 압도적인 고성능과, 여러가지 개성적인 기능, 그리고 영웅적인 활약을 보면 이미 훌륭한 '캐릭터'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앞서 예를 든 두 작품의 경우에도, 작품의 배경이 만일 현대가 아닌 미래세계라던가, 작품상의 비중이 별것 아니었던가 했을 경우에는 주역 메카닉이 과연 '캐릭터'로서의 개성을 얻을 수 있었는지가 의문스럽기는 합니다. 결국 작품 속에서의 '캐릭터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관과 연출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대부분의 '거대로봇물', 특히 '슈퍼로봇물'에 등장하는 주역 로봇들은 이러한 'SF적 합리성', 곧 도구적인 합리성 보다는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살리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징가 Z나 겟타로보를 보고 도구적인 합리성이나 기계적인 합리성을 논한다면, 이는 완전히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지요.
차라리 그럴바에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이나 간달프의 마법에 대한 과학적 설명 쪽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마징가 Z같은 물건들은 보다 순수한 '공상 환타지'적 엔터테인먼트로 즐겨야 하는 물건이지, 과학적인 잣대로 평가할 물건 자체가 아니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제가 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공상과학독본' 신봉자입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지금까지 등장한 여러가지 '공상' 작품들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그냥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흥미거리로서 등장했던 것인데(실제로 그 책에 실려있는 과학적 해석 중에서도 사실은 비과학적인 해석들이 몇몇 섞여있었죠) 그것을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여 '공상과학은 엉터리'라고 몰아붙이는 바보들 앞에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질 지경입니다.
어쨌든,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이 중요시해야 되는 부분은 과연 어떻게하면 '캐릭터'로서의 매력과 개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느냐 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강력한 내장무기나 변신, 합체, 필살기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때로는 앞서 말한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면을 살짝 변형시켜서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하신다는 분들의 메카닉을 보면, 이런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잘 살아있는 메카닉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품의 성격상 정말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필요한 메카닉의 경우에도, 그런 캐릭터성이 아예 없거나, 또는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캐릭터성이 부여된 경우도 적지 않더군요.
이는 우리나라의 메카닉 디자이너라는 분들의 취향 자체가, 처음부터 '기계'에 '캐릭터성'을 부여한다는 개념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캐릭터성이 필요없는 '도구로서의 인간형 기계'에는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거대로봇물'의 주역 로봇을 그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고 할까요.
그렇기에, 이러한 분들이 '억지로' 그리는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은 일단 모습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더라도 '캐릭터'로서의 특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눈에 확 들어오는 특징도 없고, 어디선가 본 듯 하면서도 어디서 봤는지는 잘 알아볼 수도 없는데다가 다른 로봇들과 무엇이 확연히 다른지에 대한 개성조차 찾아보기가 어렵죠.
하지만 그런 것은 메카닉 디자이너의 '잘못'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같은 디자이너 분들이 서구의 SF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기타 캐릭터성이 그다지 필요없는 순수한 메카 액션물(특히 게임 중에 이런 것들이 많죠)에 투입될 경우에는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실 만한 분들이니까요. 결국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메카 디자인 업계 자체의 문제점이랄까요.
한가지 다행한 점은,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분들 중에도 몇몇분은 메카닉 디자인에 있어서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일단 제가 알고 있는 한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기계만 그리시는 것이 아닌 인간 캐릭터의 파악이나 디자인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계시고, 이런 부분이 메카닉에도 충분히 반영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 개인 취향에 대해 물으신다면, 저는 양쪽 다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SF적인 관점'만을 잣대로 한 나머지 거대로봇의 캐릭터성을 근본부터 무시하면서 캐릭터적인 로봇에 대해 '비과학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상업적이다'라고 비난만 퍼부으시는 분들의 견해에는 전혀 동조하는 바가 없다는 점도 밝혀드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추가한다면, 제 개인적인 작품 취향이나 디자인 지향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입니다. 뭔가 써놓고보니 정말 중구난방에 뭘 말하고 싶었는지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일단 제가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written by 백금기사(lgaim.egloos.com)
먼저, 말씀하시는 'SF적 관점에서의 거대로봇물'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별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SF로서의 거대로봇물'에 대해 말씀하시는 다른 분들의 말이나 글로 미루어 볼때, 대부분 그런 분들의 입장은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물'을 부정하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씀드리는 기준도 대충 그런 쪽이 될 것 같군요.
예를 들면, 에일리언 2나 매트릭스 레볼루션 등에 나오는 인간형 기계들과, '마징가 Z'나 '건담'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제 입장에서 이들을 구분해주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형의 거대한 기계에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부여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서양과 동양의 감성만의 차이는 아니지요. 비록 합작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서구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트랜스포머' 시리즈 역시 엄연히 '캐릭터'로서 확립된 거대로봇물이고, '파워레인저' 시리즈의 '메가조드'가 먹혔던 것만 봐도, 서구인들이 딱히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은 완전히 '장르'의 차이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앞에서 든 작품들의 예도 있겠지만,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없는 순수한 인간형 기계가 잠시 얼굴을 비칠 뿐이거나, 설사 등장이 좀 많다고는 해도 역시 '캐릭터'로서의 취급이 거의 없는 메카닉 액션물이라면, 이것을 '거대로봇물'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작품 중에서 거기에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역시 '마크로스'나 '보톰즈'겠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두 작품은 특히 'SF로서의 거대로봇'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서 평이 꽤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마크로스'를 비롯한 일련의 시리즈는 '로보텍'으로서 서구에서도 인기가 높지요. 마찬가지로 '로보텍'으로 분류되는 서전크로스나 모스피다 역시, 작품 상에서 로봇이 '캐릭터'로서 취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리얼로봇' 계열과는 거의 무관하지요. 실제로 리얼로봇의 시조라고 말해지는 '건담' 시리즈를 시작으로 하여, '단바인', '엘가임', '레이즈너', '드래구너' 등의 대부분의 리얼로봇 중에서는 로봇 그 자체도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이러한 캐릭터성의 유무에 있어서 정말 아슬아슬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패트레이버'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주역 로봇인 잉그램은 세계관이나 메카닉 자체만을 보면 그다지 캐릭터로서의 느낌이 없지만, 연출에 따라서는 캐릭터성이 충분히 살아날 수도 있죠.
실제로 같은 '패트레이버' 작품이라고 해도,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정말 캐릭터 로봇으로서의 활약을 보여줄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편리한 도구로, 극단적일때는 단순한 배경만으로도 끝날 만큼 이 '잉그램'의 속성은 길로 다양합니다. 전 그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드는 편이지만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리얼로봇물' 장르의 특징이 바로 '캐릭터성'과 '도구적 합리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앞서 말한 'SF로서의 거대로봇'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대개 'SF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 또는 미래에 실현가능한 유사과학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부분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속성은 '캐릭터성'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요.
일단 인간형 기계를 '도구'로서만 볼 때, 그 도구로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느정도 과학이나 유사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득력이 필요불가결 합니다. 도라에몽의 비밀도구가 아닌 이상, 일단 작품상 비중있게 들어가는 '도구'가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것이라면 적어도 시리어스한 SF 작품으로서 성립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겠죠.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에어울프'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에어울프라는 헬리콥터의 정체는 약간 발전된 과학기술이 들어간 미래형 전투헬기일 뿐이지만, 그 황당하리만치 막강한 파괴력과 압도적인 전투능력, 그리고 매회 반복되는 전형적인 히어로물로서의 패턴 덕분에, 이쪽은 로봇도 아니면서도 충분히 '캐릭터'가 되어 있지요.
뭐, '전격 Z 작전'에 등장하는 '나이트 2000=키트'같은 경우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미 충분히 '캐릭터'로서 취급될만 하지만, 똑같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다른 차들과 비교해서 단연 압도적인 고성능과, 여러가지 개성적인 기능, 그리고 영웅적인 활약을 보면 이미 훌륭한 '캐릭터'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앞서 예를 든 두 작품의 경우에도, 작품의 배경이 만일 현대가 아닌 미래세계라던가, 작품상의 비중이 별것 아니었던가 했을 경우에는 주역 메카닉이 과연 '캐릭터'로서의 개성을 얻을 수 있었는지가 의문스럽기는 합니다. 결국 작품 속에서의 '캐릭터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관과 연출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대부분의 '거대로봇물', 특히 '슈퍼로봇물'에 등장하는 주역 로봇들은 이러한 'SF적 합리성', 곧 도구적인 합리성 보다는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살리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징가 Z나 겟타로보를 보고 도구적인 합리성이나 기계적인 합리성을 논한다면, 이는 완전히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지요.
차라리 그럴바에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우론이나 간달프의 마법에 대한 과학적 설명 쪽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마징가 Z같은 물건들은 보다 순수한 '공상 환타지'적 엔터테인먼트로 즐겨야 하는 물건이지, 과학적인 잣대로 평가할 물건 자체가 아니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제가 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공상과학독본' 신봉자입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지금까지 등장한 여러가지 '공상' 작품들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그냥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흥미거리로서 등장했던 것인데(실제로 그 책에 실려있는 과학적 해석 중에서도 사실은 비과학적인 해석들이 몇몇 섞여있었죠) 그것을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여 '공상과학은 엉터리'라고 몰아붙이는 바보들 앞에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질 지경입니다.
어쨌든,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이 중요시해야 되는 부분은 과연 어떻게하면 '캐릭터'로서의 매력과 개성을 최대한으로 살리느냐 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강력한 내장무기나 변신, 합체, 필살기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때로는 앞서 말한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면을 살짝 변형시켜서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메카닉 디자인을 하신다는 분들의 메카닉을 보면, 이런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잘 살아있는 메카닉을 찾아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품의 성격상 정말 '캐릭터'로서의 속성이 필요한 메카닉의 경우에도, 그런 캐릭터성이 아예 없거나, 또는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캐릭터성이 부여된 경우도 적지 않더군요.
이는 우리나라의 메카닉 디자이너라는 분들의 취향 자체가, 처음부터 '기계'에 '캐릭터성'을 부여한다는 개념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캐릭터성이 필요없는 '도구로서의 인간형 기계'에는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거대로봇물'의 주역 로봇을 그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고 할까요.
그렇기에, 이러한 분들이 '억지로' 그리는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은 일단 모습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더라도 '캐릭터'로서의 특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눈에 확 들어오는 특징도 없고, 어디선가 본 듯 하면서도 어디서 봤는지는 잘 알아볼 수도 없는데다가 다른 로봇들과 무엇이 확연히 다른지에 대한 개성조차 찾아보기가 어렵죠.
하지만 그런 것은 메카닉 디자이너의 '잘못'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같은 디자이너 분들이 서구의 SF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기타 캐릭터성이 그다지 필요없는 순수한 메카 액션물(특히 게임 중에 이런 것들이 많죠)에 투입될 경우에는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실 만한 분들이니까요. 결국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메카 디자인 업계 자체의 문제점이랄까요.
한가지 다행한 점은,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분들 중에도 몇몇분은 메카닉 디자인에 있어서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일단 제가 알고 있는 한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기계만 그리시는 것이 아닌 인간 캐릭터의 파악이나 디자인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계시고, 이런 부분이 메카닉에도 충분히 반영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 개인 취향에 대해 물으신다면, 저는 양쪽 다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SF적인 관점'만을 잣대로 한 나머지 거대로봇의 캐릭터성을 근본부터 무시하면서 캐릭터적인 로봇에 대해 '비과학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상업적이다'라고 비난만 퍼부으시는 분들의 견해에는 전혀 동조하는 바가 없다는 점도 밝혀드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추가한다면, 제 개인적인 작품 취향이나 디자인 지향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캐릭터로서의 거대로봇입니다. 뭔가 써놓고보니 정말 중구난방에 뭘 말하고 싶었는지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일단 제가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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