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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作] 엄마를 부탁해
at 2009-06-04 00:01:51 0 comment
엄마를 부탁해저자 : 신경숙
출판사 : 창작과 비평사
책소개 : 섬세하고 깊은 성찰, 따뜻한 시선의 작가 신경숙이 절정의 기량으로 풀어낸 엄마 이야기, 엄마를 통해서 생각하는 가족 이야기, 가장 큰 사랑 이야기. 세상 모든 사람은 엄마의 자식, 우리 모두에겐 나만의 엄마가 있다. 때로 좋기도 밉기도 고맙기도 원망스럽기도 한, 그러나 굳건한 땅처럼 분명하고 단단한 엄마. 어느날, 그 엄마를 잃어버린다. 나이 들고 몸도 성치 않은 엄마를. 서울 사는 자식들 편하라고 아버지 생신을 치르러 시골집에서 올라오던 길,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 손을 놓친 찰나, 엄마는 꿈처럼 사라진다. 전단지를 돌리고 인터넷 광고를 하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 온 식구가 사방을 헤매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가족들은 비로소 가장 낯익은 존재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공기처럼 물처럼 대지처럼 자신과 함께 있어준 엄마의 무게를, 엄마의 빈 자리를 통해 확인한다. 엄마의 모든 소망과 꿈을 먹고 자란 큰아들, 친구처럼 의지하며 무람없던 큰딸, 자식 기르는 기쁨을 알게 해준 작은딸, 평생 살림의 책임을 떠안기며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 들이, 엄마의 부재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아프게 쏟아낸다. 이야기 속에서 식구들은 각자 자기만의 엄마를 추억하고, 그 속에서 조금씩 낯설지만 진정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해간다. 하나의 사람으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꿈과 소망을 안고 웃고 울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생명을 낳고 힘을 다해 키워낸 사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다른 사랑을 마음으로만 품은 한 사람,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엄마는 끝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과연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했을까. 어딘가에서 엄마는 온전히 존재할까. 우리 가슴속에 잠자는 가장 깊은 사랑을 일깨우며 진짜 감동을 전해주는 귀한 소설. 오늘, 우리 엄마가 그리워진다!(출처:알라딘)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 들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책이란 세계는 무궁무진하구나."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책을 다 읽고나서 재차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언제부터 손에 들고 다녔냐고 묻는 사람이 혹 있다면(그야말로 독서 분야) 그건 아마 초등학교 때 읽기 시작한 해리포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상상력과 그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힘을 보고난 후부터는 책 읽는 것이 그다지 강요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뭐, 편식은 심하지만요.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아니 항상 소설을 읽으면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판타지면 판타지스러운 실현감이 다가오도록, 휴머니즘 소설이면 인간의 진솔한 마음을 현실감 있게 전달해주는 소설, 책의 힘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책 편식이 심한 저는 일단 추리, 살인, 죽음 등을 다룬 자극적이 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카타르시스인걸 까요. 어쨌든 주로 무거운 쪽 소설을 즐겨 읽는 저로썬 다른 의미에 무거운 소설을 접하는 것이 쉽지는 안했습니다. 하지만 과외 선생님의 적극적인 추천과 인터넷의 수많은 감상평들 중 몇 개를 읽어보고는 읽자고 결정지었습니다. 그런데 밤에는 읽지 말라는 어떤 분이 올려놓으셨던 감상평을 왜 전 무시했을까요. 책장을 넘기는 동시에 복 바쳐오는 감정과 눈물 콸콸! 친구와 카페에 앉아 레모네이드 마시면서 읽다가 큰일 날뻔했습니다.
신경숙이란 작가는 보충교재에서 몇 번 접한 소설의 일부분 뿐이었는데,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제 책장에 꽂혀있는 소설과는 달리 아주 부드럽고 조심 조심, 그러나 그 여파는 타 소설들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크게 의미를 주었습니다. 흔히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작살!이라던가 짱! 이란 느낌이랄까요? 두서는 여기까지만 재잘대는 감상글이나 주절거리기 시작하겠습니다.
00. '아빠를 부탁해'의 부재
- 대체 어디에 있소!
아이들이 밥을 먹고 쏜살같이 뛰어나간 뒤에 당신은,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은, 혼자 남은 당신은, 빈집의 마루에 다리를 뻗은 채 소리를 팩 내질렀다. 아내가 사라진 뒤부터 늘 목에까지 차오르던 울음 대신이었다. 아들 앞에서 딸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던 분노인지 뭔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어느날 문득 보다 나는 집 안에서 세탁기도 못 돌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어먹는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쏜살같이 뛰어나간 뒤에 당신은,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은, 혼자 남은 당신은, 빈집의 마루에 다리를 뻗은 채 소리를 팩 내질렀다. 아내가 사라진 뒤부터 늘 목에까지 차오르던 울음 대신이었다. 아들 앞에서 딸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던 분노인지 뭔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나, 왔네 아버지 독백 中
"어느날 문득 보다 나는 집 안에서 세탁기도 못 돌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어먹는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ebs 지식채널 '56점짜리 인생' 中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던 생각은 어릴 적 결코 대답할 수 없었던(더러 대답하는 인간들도 보였지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란 질문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뭐 저런 무식한 질문이 다있나 싶지만 언뜻 보면 엄청 난감하고 미묘한 질문이죠.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종류는 대체적으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다 좋아!"거나 은근슬쩍 답을 회피하여 화제를 돌리려는 경우이지요. 더러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건 아직 판단능력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경우라고 치겠습니다. 하여튼 "둘다 좋아!"라 답한 경우의 아이는 정말 치우올곧게 성장한 것이며 대답을 회피하려는 경우는 아이가 참 영악하다는 것이죠. 아이를 참 잘 키우겁니다.
본제로 돌아가자면 이 소설의 경우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든?"이라고 물은 질문에 "엄마가 아빠보단 조금, 아주 조금 더 좋아."라고 대답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마 왜냐고 물으시는 분들은 없으시겠지요. 그도 그럴것이 책 제목부터가 엄마를 부탁해인걸요. 이처럼 엄마를 부탁해는 가족들을 위해 늘 희생적인 존재였던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들을 그려놓은 휴머니티 작품입니다. 늘 '─위해'라는 말 아래에서 포기하고 희생해야만 했던 한 여인의 인생을 자식들과 남편·아버지가 되짚어주지요.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있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작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희생적인 존재는 엄마뿐인가. 그건 분명 아버지도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눈물 닦아내며 치밀었던 생각이 한동안 떠나지를 않더군요.
사실 솔직한 심정만을 토로할 수 있는 기계같은 것, 거짓말 탐지기같은 것이 있다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에 "엄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그토록 붙어있길 원하듯 아이들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보다 많은 어머니 쪽을 택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전형적인 아버지는 돈을 벌기위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집안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냅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것을 택했음에도 아버지란 존재는 어딘지 모르게 소외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획일화된 가족형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머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한 존재는 아니죠.
엄마를 부탁해의 작중 인물 '남편˙아버지'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바라본 관점으로는 너무하기 그지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아픈 것을 못본척 눈감아버리고 심지어 바람이나 집을 나갔던 적도 있늘걸요. 아내가 실종된 후 그제서야 아내에게 잘 할걸, 신경써 줄걸이라 후회하는 모습이 어찌보면 개과천선하는 것과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아버지는 그 시대의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그려 놓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엄마가 주제인 만큼 그쪽으로 비중이 쏠려있긴 하지만 3번쨰 편에서 남편·아버지가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란 것을 남김없이,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본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시면 확연히 알 수 있을겁니다. 아내·엄마 실종 후 아무도 모른다, 미안하다 형철아 부분에서 자식들이 묘사해 놓은 아버지의 모습은 후회하고 있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의 회상 모습에서 보인 아버지의 행동들이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기 시작하면 결국 그의 존재는 희생보단 과거의 행적들, 어리석음을 깊게 후회하는 측면이 강하죠. 의미는 좀 다르지만 풍수지탄, 있을 떄 잘해, 개과천선 따위 말들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맞아! 맞는데 좀 더 다른 면이 있기도해~"라고 말해주는 것이 바로 나, 왔네편입니다.
자식 앞에서 단 한 번 눈물을 보인적 없는 우직함, 가장으로서의 무게, 짐들로 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욕구와 한 번의 도주 그리고 귀환. 박소녀가 남김없이 희생을 가족에게 퍼주었고, 도망치고 싶었던 욕구와 힘든 삶살이, 그리고 가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시나마의 안식처를 찾았던 엄마와 퍽 닮아있던 것이 '남편·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생각난 것은 작년 논리시간에 보았던 ebs 지식채널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때 '56점짜리 인생'을 보며 '아, 우리 아버지는….'라는 생각이 머리를 크게 휘갈겼었죠. 여느 집과 다름없이 저희 집도 집에서만은 아버지보단 어머니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평일에는 일을 한다고 나가있고, 주말에는 골프친다, 술마신다 나가있는 아버지와 늘 상 집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가정에 투자하고 있는 시간에 큰 차이를 보이는 대가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살갑게 다가오는 아버지를 귀찮다고 내쳐버립니다. 18살난 고등학생 딸에게 이것 저것 해달라고 애교 피우는 아버지에게 나도모르게 막대한다고 할까(…) 그쪽 방면엔 워낙 표현력이 떨어지고...
56점짜리 인생을 보고나서 어찌되었건 저의 무심한 행동 하나 하나가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에 조그마한 생채기라도 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이 엄습해왔습니다. 저는 결코 아버지를 돈을 벌어오는 기계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없어!라고 당당히 외치겠지만, 글쎄요, 아버지는 어떻게 느낄까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요.
말하지 않아서 전달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감정들. 그런 감정들을 너무나도 진솔하게 표현해 놓았던 신경숙 작가님이 다시 한 번 펜을 잡아 아빠를 부탁해를 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망상아닌 망상을 해버렸습니다. 이른바 부탁해 시리즈라던가(…)
* 여기까지 입니다.(06/03)
* 혹시 아버지를 부탁해는 '감 자먹는 사람들'인 겁니까? 아니, 아직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어서 서둘러 구해서 전편을 다 읽어봐야겠네요. 오호호호호호호호;;
* 이글루스 가든 - 좋은 책 함께 나눠 읽기.
할일: 책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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